보통 부모가 살아계실 때와 부모가 계시지 않을 때 형제자매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예전에 형제자매가 많을 때에 가족관계와 요즘처럼 아이가 한 명이 있는 가족관계는 다르다. 지금 시점에서 보는 가족과 오래 전의 가족은 어떤 점이 다를까. 옛날 다가족이 살았을 때의 이야기가 동화로만 남은 것은 아니다. 예산을 가면 길 안쪽 붉은 비각 안에는 1497년에 세운 효제비가 서 있다. 살창 너머로 들여다보면 머릿돌을 인 길쭉한 비신이 어둑하게 서 있다.

예산 의좋은 형제의 안내판은 이 비석이 고려 사람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조선 성종 때 세워졌다고 적고 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좋은 음식으로 봉양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형이 어머니의 묘를 동생이 아버지의 묘를 지켰으며 삼년상을 마친 뒤에도 아침저녁으로 서로의 집을 오갔다는 기록이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함께가 아니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실록과 삼강행실도에 오른 실재의 형제가 오랜 시간을 지나며 누구나 아는 한 편의 동화가 된 것이다.

대흥으로 들어서는 길목 안내판에는 달팽이 한 마리가 느리게 기어가고 있다. 슬로시티의 표식이다. 그 옆으로 태극기와 예산군기 그리고 달팽이가 그려진 깃발이 나란히 바람에 흔들린다. 빠르게 지나가지 말라는 당부가 마을 입구에서부터 걸려 있는 셈이다. 평일 오전의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고 은행나무 한 그루만 초여름의 빛을 받아 가지를 넓게 벌리고 있는 것이 여유롭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에 둥근돌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돌마다 흑백의 옛 그림과 몇 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오래된 국어 교과서에서 떼어 온 듯한 삽화 속에서 한 사내가 볏단을 안고 논길을 걷는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다. 형은 동생의 살림을 걱정했고 동생은 형의 식구를 걱정했다. 추수가 끝난 밤마다 형은 동생의 낟가리에 몰래 볏단을 옮겨 두었고 같은 밤 동생도 형의 낟가리에 볏단을 가져다 놓았다.

아침이면 줄지 않은 자기 곡식을 보며 둘은 똑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어느 달 밝은 밤 볏단을 진 채 마주친 두 사람이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공원 가운데에는 그 밤의 한 장면이 청동으로 세워져 있다. 볏단을 안은 형과 지게를 진 동생이 서로를 향해 마주 서 있다. 조금 떨어진 광장에는 흰옷을 입은 두 형제가 손짓을 나누며 서 있다. 둘 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그 밤의 한가운데에 멈춰 선 모습이다.

비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흥동헌이 있다. 임성아문이라는 현판을 단 솟을대문을 지나면 예산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의 관아 건물이 너른 마당 위에 앉아 있다. 한때 이 마당에서 한 고을의 살림과 송사가 처리되었을 것이다. 마당 한쪽에는 임존성이라 새겨진 오래된 표석이 풀에 반쯤 묻혀 있다. 이 자리가 짊어진 시간이 한두 겹이 아니라는 것을 그 돌이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철저히 가족의 셈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이 볏단을 옮긴 이유는 동생의 식구가 늘었기 때문이고 동생이 볏단을 옮긴 이유는 형의 살림이 더 무겁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는 마음의 바탕에는 늘 상대의 식솔과 살림에 대한 헤아림이 있었다. 낟가리와 낟가리 사이를 오가던 그 밤의 다정함은 가족이라는 단위가 세상의 기본값이던 시절의 다정함이다.

지금은 그 기본값이 흔들린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점점 늘어 이제는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다. 옮길 낟가리도 옮겨 줄 상대의 식구도 처음부터 전제되지 않는 삶이 많아졌다. 효라는 말이 기대고 있던 여러 세대가 한집에 사는 구조도 이제는 흔하지 않다. 이런 시대에 효와 우애라는 오래된 말은 무엇을 가리킬 수 있을까.

손쉬운 결론은 옛날의 정이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쪽일 것이다. 그러나 형제의 이야기에서 정말 오래 남는 것은 혈육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주면서도 준 줄 모르게 하려던 마음 그리고 줄지 않는 곡식을 자기 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무엇 덕분이라 여기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 마음은 반드시 형과 동생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밤에 볏단을 옮기는 일은 이제 핏줄이 아닌 사람들 사이로 또는 얼굴을 잘 모르는 이웃과 이웃 사이로 옮겨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효가 부모를 향한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앞선 세대 전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더 넓은 물음으로 바뀌어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마을 입구의 달팽이가 다시 떠오른다. 느리게 가라는 그 표식은 빠르게 흩어지는 삶을 향한 조용한 제안처럼 보인다. 혼자 사는 일이 곧 외따로 사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위가 헐거워진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을 다시 잇는 방식은 어쩌면 속도를 늦추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 느림 속에서야 누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 비로소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황소를 끌고 밭을 가는 농부 조형물 곁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아우 이순의 집이라는 작은 초가가 빈 마당을 지키고 있다. 볏단을 안은 두 형제는 오늘도 서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다 만 자세로 서 있다.

그 밤의 비밀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지만 누가 누구의 낟가리에 무엇을 옮겨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이 텅 빈 공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진심을 담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형제간의 애정과 부모를 향한 효에 대한 의미를 다시 물어보는 시간이다.
* 취재일 : 2026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