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천진전단군화상
문화유산자료부여천진전단군화상
이 그림은 가로 34㎝, 세로 53㎝ 크기의 전신상으로, 1920년대에 그려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종교의 신도였던 항일운동가 강우가 황해도에서 이 그림을 가져와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
태안소근진성
기념물태안소근진성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서북쪽으로 13.6㎞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조선 중종 9년(1514)에 쌓은 것이다. 이 곳에 성을 쌓게 된 동기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나타난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 성은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으며, 동·남·북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650m 정도인데 대부분이 무너지고 현재는 동문터 부근만이 남아 있다. 동문터의 북벽을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바닥의 너비가 8m, 바깥벽의 높이가 4.4m, 안쪽벽의 높이가 2m, 윗면의 너비가 1.7m이다. 성벽 안쪽으로는 군사들이 통로로 이용하기 위하여 흙을 덧대어 쌓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깥쪽에 비하여 얕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곳은 중종 9년(1514)에 만들어졌으며, 성 주위가 2,165척(약 656m)이라고 했다. 『여지도서』에서도 영조 당시의 수군실태를 적고 있어 서해안의 방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
흥학당
유형문화유산흥학당
조선시대 과천현간을 지낸 조태징 선생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남산사의 부속 건물. 영조 46년(1770)에 지어졌으며 서당으로 사용됨.
-
흥주사삼층석탑
유형문화유산흥주사삼층석탑
백화산 동쪽 기슭 흥주사 경내에 위치하며, 흥주사 창건시기인 고려시대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2중 기단위에 세워진 탑의 상륜부는 거의 결실되고 방형석 재 한 개가 있는데 노반으로 추정되며 탑신부는 2층까지 남아 있는데 초층탑신의 4면에 방형곽을 음각 하였다.
-
흥주사만세루
유형문화유산흥주사만세루
태안읍의 뒷산 백화산 줄기의 동남편 산중턱에 자리한 고려시대 절인 흥주사의 중문이다. 중종 25년(1527)에 처음 지어지고 그 후 4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고, 1944년에 해체·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경사진 곳에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고 지었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단층건물로 보인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건물의 앞쪽에만 있는데 주심포양식에서 익공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건물이다.❍ 흥주사 만세루는 흥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임진왜란(1592) 때는 승병들이 무기저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흥주사에는 이 외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28호)이 있다.
-
흑성산성
문화유산자료흑성산성
흑성산 정상부에 테뫼식의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570m이고 상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기 힘 든 상태다.
-
효암서원
문화유산자료효암서원
본래 가야곡 두월리에 있던 갈산사로 강응정 선생을 모셨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우암 송시열이 송종39년(1713) 현 위치에 중창. 만죽헌 서익 등 7위를 배향하다가 고종4년(1867)에 서익 선생이 퇴위되어 6위만 모시던 중 1868년 훼철. 1925년에 복원되었고, 성종의 친필 사액현판이 남아 있음
-
황일호의묘
문화유산자료황일호의묘
조선 중기의 문신 지소 황일호(1588∼1641)의 묘이다. 조수륜의 가르침을 받았고, 인조 13년(163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안전하게 모신 공으로 진주 목사에 올랐다. 인조 16년(1638) 의주 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돕자는 모의를 하다가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
황산성
기념물황산성
황산성은 표고 267m의 정상부와 서남사면에 형성된 협곡부의 일부를 삼태기 형태로 둘러싸면서 축조한 석축산성이며 둘레는 850m, 석축의 축조방식은 지형적 조건에 따라 편축식과 협축식을 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