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방문하는 여행지중에 서천군 판교면이라는 지역은 한때 우시장과 양조장으로 분주했고 그 한가운데 옛 판교역이 있었으며, 1936년에 세워진 정미소가 2006년까지 같은 자리에서 쌀을 도정하던 마을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시대에 시간이 천천히 흐른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작은 마을이 동시에 세 권의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허수아비」의 촬영지로서의 판교. 또 한 권은 시의 책이다. 「판교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시인 네 명의 전시. 마지막 한 권은 건축의 책이다. 1936년의 정미소, 옛 주조장, 사진관, 극장 같은 근대문화유산의 아카이브를 돌아보면 어떨까. 세 권이 서로 다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골목 안에서 한꺼번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만큼 작지만, 그 한 시간 안에 시대의 여러 색을 동시에 만나볼 수가 있다.
마을의 작은 사거리에 갈색 입간판 하나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허수아비 촬영지'. 그 옆으로 또 하나의 입간판이 보였고, 거기에는 두 인물이 책장 앞에 서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와, 가방을 멘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눈에 뜨인다. 영화 「허수아비」는 강성문고와 장미사진관, 두 곳의 옛 가게를 주요 촬영지로 삼았다. 강성문고는 여전히 책방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면 흰 커튼과 스탠드,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보인다. '동네책방 책 읽기'라는 주황색 포스터가 유리에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영화 「개훈할영」(2016)의 무료 상영을 알리는 포스터도 함께 붙어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촬영되었던 공간이 그대로 살아 있는 책방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세트가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가 카메라 앞에 그대로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방은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영화 속 한 장면이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오래된 마을의 한 책방이다.
길 건너편의 장미사진관도 마찬가지다. 푸른 양철지붕 아래, 낡은 나무 문이 그대로 달려 있는 옛 사진관. 안내판에는 '허수아비 촬영지 장미사진관'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로 영화의 한 장면이 작게 인쇄되어 있다. 사진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시간을 멈춰 두는 일을 하는 자리인데, 그 사진관 자체가 한 시대의 사진처럼 그대로 멈춰 있다는 사실이 묘했다.

장미사진관 안쪽에는 지금 또 다른 전시가 들어가 있다. 옛 마루와 흙벽 사이에 앤디 워홀풍의 포도와 인물 실크스크린 두 점이 걸려 있고, 낡은 의자 두 개가 그 앞에 놓여 있다. 오래된 사진관의 흙벽과 현대 팝아트의 노란색이 한 벽에서 만나는 풍경. 이 마을이 옛것을 옛것 그대로만 두지 않는다는 것을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 안에 지금「판교의 시인」이라는 전시가 들어가 있다. 강석화, 도복희, 이창우, 정완희. 네 명의 시인의 작품과 영상이 70년 된 정미소의 내부에 놓여 있다. 영상 제작은 NODE TREE가 맡았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작은 좌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나무 좌탁 위에 시집 몇 권이 쌓여 있고, 그 양쪽으로 흰 방석이 두 장 깔려 있다. 벽은 정미소의 옛 흙벽 그대로다. 갈라진 결, 누런 빛깔, 천장의 굵은 나무 보까지 그대로 살아 있다. 그 한가운데에 시집이 놓여 있다는 것. 이 배치가 한 줄의 시처럼 읽혔다.

다음 장소는 강성문고와 삼화정미소다. 영문 안내판에는 'Samhwa Rice Mill, founded in 1936, remained in operation until 2006'이라고 적혀 있다. 1936년에 세워져 7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쌀을 도정했고, 오 씨 성을 가진 삼 형제가 운영했기에 'The Oh's Millhouse'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원래 단층이었던 건물은 기계를 들이면서 위쪽으로 한 번 더 확장되었다. 안내판의 아이소메트릭 도면에서 1936년의 흰색 골조 위에 1965년 증축의 붉은 골조가 얹혀 있는 구조를 보면 이 건물 자체가 한 시대의 적층이라는 것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옆 공간에는 검은 책상 위로 시인들의 책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전시 중인 시인의 책을 무료 배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작은 액자에 들어 있었다. 한 마을이 자기 자리에서 쓴 시를 그 마을의 가장 오래된 건물 안에서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것. 이런 일이 가능한 곳이 아직 한국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작게 마음에 닿았다.

정미소의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옛 기계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굵은 나무 기둥들, 갈색으로 바랜 도정 슈트, 도르래와 벨트, 천장을 가로지르는 굵은 들보들. 한때 쌀을 도정하던 기계 소리로 가득했을 그 자리가 지금은 시집과 함께 침묵하고 있다. 곡식을 깎아 내던 자리에서 한 시인이 자기 마음을 깎아 내며 쓴 시를 읽는다는 일. 이런 우연이 시처럼 잘 맞아떨어졌다.
전시 제목은 「판교의 시인」이고, 시인 다섯 명의 또 다른 전시가 마을 곳곳에 함께 펼쳐져 있다. 「판교의 미술작가」라는 이름으로 이남수, 조혜림, 최명규, 한화정, 현영섭의 작품이 마을의 다른 자리에 걸려 있는 것이다. 한 마을이 시와 미술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마을 한쪽에는 '현암마을 아카이브 (The heritage of Hyunam Village)'라는 푸른 포스터가 흙벽에 단정하게 붙어 있다. 판교의 본래 행정동 이름은 현암리이고, 이 일대가 곧 현암마을이다. 이 아카이브에는 일곱 채의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묶여 있다. 동일정미소, 동일주조장, 장미사진관, 오 방앗간, 중대본부, 일광상회, 그리고 판교극장. 한 마을이 한 시대의 산업과 생활을 어떻게 떠받쳤는지가 일곱 채의 건물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판교에서는 정미소가 두 곳, 주조장 한 곳, 사진관 한 곳, 방앗간 한 곳, 그리고 극장 한 채. 이 구성이 1930~60년대 한국의 중소 읍면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 움직였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쌀을 도정하고 술을 빚고 사람을 사진으로 남기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보았다. 한 마을의 모든 일상이 도보로 5분 안에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정미소는 대규모 공장으로 통합되었고 양조장은 대기업의 캔맥주에 자리를 내주었으며 사진관은 스마트폰에 흡수되었고 극장은 멀티플렉스로 옮겨 갔다. 한 마을 안에서 자족적으로 돌아가던 그 구조가 이제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현암마을 아카이브는 단순한 건축물의 보존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양식 전체의 보존이다.

판교 마을의 골목은 넓지는 않지만 좁은 길 양쪽으로 낮은 단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길 한가운데로 전봇대와 전선이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노란빛의 벽돌집, 푸른 양철지붕, 붉은 양철지붕, 흰 회벽. 색의 농담이 한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영화 「허수아비」의 안내판이 한 번 나타나고, 「판교의 시인」의 푸른 포스터가 또 한 번 나타나며, 1936년 정미소의 검은 안내판이 또 한 번 나타난다. 골목이 한 권의 책처럼 페이지를 넘기듯 풍경을 바꾼다. 그러는 동안 같은 마을의 다른 시간이 한 사람의 산책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판교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마을이 자기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다른 도시처럼 옛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린 것도 아니고 박물관처럼 옛 건물을 유리 안에 가둔 것도 아니다. 1936년의 정미소 안에서 2026년의 시 전시를 열고 옛 사진관 안에 현대 팝아트를 걸어 두고, 동네책방 한 채를 그대로 두면서 그 안에서 영화를 찍게 한다. 옛것을 그 자리에 두되 그 자리에 새로운 일을 들이는 방식이다. 이것이 판교가 자기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제 판교로 문학여행과 영화감성을 만나보기에 좋은 때다.
* 취재일 : 2026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