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성흥산 대조사에 방문했습니다.
대조사는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찰로 6세기 초 백제불교를 중흥시킨 겸익스님이 창건했습니다.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산성인 가림성 아래에 있으며 미륵불에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백제 시대 도승 겸익은 인도에서 아담장 오부 율문을 가져다가 번역한 것을 흥륜사에 보관하였는데 어느 날 겸익의 꿈에 관음보살이 광명주를 들고 나타나 번역이 잘 되었다고 하더니 큰 새가 되어 가림성 부근에서 사라졌습니다.
겸익이 꿈에서 깬 후 가림성 부근을 찾아 보았는데 큰 새 대신 관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석불을 조성하였습니다.
이 석불이 대조사 뒤편에 있는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며 이 때 지은 절이 대조사라고 합니다.

대조사 주차장에 주차 후 사찰을 둘러보았습니다.
산 속에 자리한 작은 대조사는 고요했고 주차장에 핀 작약꽃이 방문객을 반겨주었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계단에 알록달록 연등이 가득 달렸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연등이 더 화려하게 보였습니다.
경내 전각으로는 완통보전, 지장전, 산신각, 용화전, 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면 너른 앞마당에 대조사 3층석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조사 3층석탑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5.2m입니다.
바닥돌의 아래층은 낮고 위층은 높게 하여 안정감을 주었고 각 층의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습니다.
지붕돌의 네 모서리는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고 이 지역의 다른 탑과 다르게 통일신라 이후의 신라탑 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석탑 뒤로 절 표시 문양이 있는데 나즈막하게 돌을 쌓아 올렸고 주변에 초를 세워두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모습입니다.

보통의 사찰은 대웅전(대웅보전)이 있는데 대조사에는 원통보전이 있습니다.
둘의 차이점은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조사 원통보전에는 17세기 유행했던 보살상의 특징을 한 목조 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이 더 특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운데 문에 조각된 연꽃이었습니다.
격자형의 기본 창살이 아닌 섬세한 연꽃들이 있어 더 아름다웠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대조사 불유정에는 특별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2024년 7월 9일 폭우와 천둥번개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는데 남순동자의 신비한 기운으로 문화재와 인명피해를 막아주었다고 합니다.
흙이 쓸려 내려와 목조건물이 무너졌지만 남순동자는 흙 하나 묻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모습은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순동자의 영엄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곳에 소원을 적은 엽서도 걸어 놓았습니다.

사찰에 가면 기와불사를 올릴 수 있는데 이곳에는 일반적인 기와 외에 좀 특별한 기와도 놓여 있었습니다.
봉황의 모습을 그려 놓은 기와였는데 그 실력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미륵불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 용화전을 지나면 미륵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단 옆에 부처님 머리모양을 한 불두화꽃은 꽃이 지면서 조금 말랐습니다.
나무가 제법 커보였는데 새햐안 꽃을 활짝 피웠을 때는 정말 아름다웠을 것 같습니다.

용화전 뒤쪽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미륵불이 보입니다.
「대조사미륵실기」에 의하면 고려 원종때 무량수의 승려였던 진전장로가 불상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고 광종 때 만든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입상과도 비슷하여 이 보살상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커다란 천연 바위 하나에 머리와 몸체를 새겨 만들었으며 높이가 10m나 됩니다.
몸체는 뭉툭하고 얼굴이 넓적하고 커서 신체 비례가 5등신에 가깝게 표현된 것이 특징입니다.

미륵불을 만나본 후 아래로 내려와 요사채 옆에서 잠시 쉬어갔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주변 산자락이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담장에 심어 놓은 작약은 큼지막한 꽃을 피웠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은은한 향기가 전해집니다.

주차장 주변에 돌나물도 많이 보였는데 돌나물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돌나물은 봄에 먹을 수 있는 나물로 연한 잎을 따다 무쳐먹기도 하는데 이곳에는 돌나물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대조사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도 깃들어 있습니다.
백제의 30대왕인 무왕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마를 캐다 팔며 어렵게 생활했고 마를 캐는 아이라 하여 서동이라 불렀습니다.
어느 날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에게 연민을 느꼈고 마음을 얻고자 성흥산을 찾았습니다.
미륵부처님이 계신 대조사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는데 한줄기 밝은 빛 속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느티나무가지를 주고 사라졌습니다.
서동은 관음보살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서라벌로 떠났고 신라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을 만난다는 노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진평왕 귀에 들어갔고 화가난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귀양보냈고 선화공주는 유배지로 향하던 길에서 서동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후대에 서동과 선화공주를 기리는 뜻에서 가림성에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나뭇가지가 하트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는 사랑나무로 불리고 있으며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천년이 세월과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부여 대조사, 이곳에서 미륵불을 만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여 대조사
○ 주소: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
○ 관람료: 무료
○ 문의: 041-833-2510
* 취재일 2026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