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체기사

내용을 읽어드릴까요?

[충남의 전통사찰47] 용과 봉황…, 사찰명조차 범상치 않은 홍성 용봉사(龍鳳寺)

수려한 산세로 연중 방문객 발길을 끄는 천년고찰

  • 위치
    충남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510-24
  • 등록일자
    2026.05.25(월) 23:46:28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전경.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전경.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

    용봉산은 아직 완전히 여물지 못한 연두빛 햇살로

    내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아주고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계단을 오릅니다

     

    육십을 향한 마음은 크고 번듯한 말보다

    낮고 오래된 숨 하나를 더 믿게 되듯이

    오래된 기와는 세월을 겪은 사람처럼 말이 적고

    먼지처럼 가벼운 근심은 바람처럼 스쳐 지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절집, 형형색색 연등 하나가

    피지 못한 마음의 꽃처럼 매달려

    누군가의 안부가되고 기도가 되어 내려앉습니다

    돌부처 눈빛은 묻지 않아도 아는 것들을 멀리 데려다주듯

     

    늦어버린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함께 떠올립니다

    지나간 계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 한쪽엔 늘 다시 초여름이 시작되고

    다시 처음처럼 맑아지는 자리 하나 남아 있으니

     

    용봉사의 오후는 꽃보다 먼저 초록의 향기로 피어나고

    내 안의 오래된 그리움도 공기 속에 조용히 가다듬습니다

    용봉사는 산을 오르는 길이 아니라

    한동안 잊고 지낸 내 마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용봉사는 충남 홍성군 홍북면 용봉산 1길 109(신경리 510-24) 일대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전통사찰입니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과 봉황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그 이름조차 범상치 않은 용봉산(381m) 북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려한 산세로 연중 방문객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주변 전경.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주변 전경.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사찰 터의 기와와 석물 등 각종 문화유산 흔적으로 백제 말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괘불의 제작 시기 등으로 미뤄 조선 시기에도 사찰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건기 절터는 현재의 용봉사에서 서쪽으로 5분 정도 산을 올라야 합니다. 명당지를 찾던 평양 조씨(平壤 趙氏)가 1905년 무렵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조상 묘를 써 폐사되었으나, 이듬해인 1906년 현재의 사찰을 새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주변의 기와파편.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주변의 기와파편.

     

    권력자가 절을 빼앗아 조상의 묘를 세웠다는 사실이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의외로 이 같은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용봉사 인근 예산 가야사 역시 흥선대원군이 조상인 남양군 묘를 이장하면서 ‘천자가 2대에 걸쳐 나온다’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절을 빼앗고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석축 기단.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석축 기단.


    가람배치는 남쪽을 정면으로 3단 석축을 이용해 대지를 조성했는데 상단에는 대웅전이, 중간 축대에는 요사채와 서쪽으로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 앞에는 탑재석과 목 부분을 수리한 약사여래좌상이 있고, 하단에는 평탄 대지와 구분하여 축대를 쌓았고 용봉사지 주변에 있던 석조, 맷돌, 절구 등 석제품을 옮겨 놓았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현판.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현판.


    용봉산 등산로와 연결된 절의 입구에는 근대에 세워진 일주문이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전면에 용봉산용봉사(龍鳳山龍鳳寺) 현판이 걸려 있는데 수덕사 덕숭총림 4대 방장이었던 송원 설정 스님이 쓴 글씨입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일주문.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난 50m 정도 오른면 왼쪽에 마애불(충남 유형문화유산. 1985년 지정)이 눈길을 끕니다. 799년(신라 소성왕1년) 제작된 것으로 불상보다 넓게 바위를 파내고 한쪽으로 조각을 했는데 현재는 마멸이 심한 상태입니다. 머리 부분은 뚜렷이 돌출되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안정되어 있습니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타원형입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마애불.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마애불.


    얼굴보다 가는 눈과 입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 8세기 신라 불상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귀가 어깨에 닿을 만큼 길게 내려있고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있습니다. ‘U자’형의 옷 주름은 얕게 조각되었고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붙인 특이한 모습으로 두 손이 몸에 비해 작게 만들어졌습니다. 연꽃무늬 대좌에 두 발을 조각하였으나, 공양석에 가려져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마애불 전경 2.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마애불 전경 2.


    이어 절을 향하는 오른쪽으로 사리탑인 부도(浮屠) 세워져 있지만, 주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근처의 다른 절에서 1910년께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바닥돌은 없어지고 기단(基壇)과 탑신(塔身)만 남아 있는데, 기단이 심하게 닳아 조각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고, 둥근 공을 누른 듯한 모양의 탑신에는 특별한 꾸밈이 없습니다. 지붕돌은 6각으로 이루어진 듯하나 각 부분이 심하게 닳아있고 꼭대기 머리 장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부도.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부도.


    석축을 쌓아 조성한 터 위로는 용봉사지석조(龍鳳寺址石造)인 석조와 석구, 마애가 옮겨져 있습니다. 석조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는 것으로, 안이 파낸 직사각형 모양입니다, 석구는 돌의 속을 파내어 그 구멍에 곡식을 넣고 찧던 절구이고, 마애는 곡식을 가는데 쓰이는 맷돌로 그 크기가 거대해 옛 용봉사의 규모를 가늠해주고 있습니다.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백제시대 양식으로 사찰 창건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석조, 석구, 마애.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석조, 석구, 마애.


    계단 옆으로는 사자 네 마리가 떠받치고 있는 팔각 구층 석탑이 자리하고 아담한 대웅전이 나옵니다. 전면과 측면 각 3칸 규모에 맞배지붕의 주심포 양식입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3단 석축을 쌓아 높게 조성한 터에 세워져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측면의 외짝 띠살문을 앞뒤로 2개 설치한 특징이 있습니다. 대웅전 현판은 수덕사 덕숭총림 3대 방장이었던 원담 진성 스님의 글씨입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대웅전 불단은 목조여래삼존상(木造如來三尊像)으로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이 협시한 목조여래삼존상(충남 유형문화유산. 2026년 지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인 17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간이 넓고 온화한 인상, 목깃과 옷 주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는 등 당시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목조여래삼존상.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목조여래삼존상.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1689년 계주 스님을 비롯한 6명의 승려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상은 서산 부석사, 태안 태국사, 진안 천황사 등과도 비슷한데 조각승인 계주 스님이 당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산신과 독성탱화.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산신과 독성탱화.


    대웅전의 용봉사 범종(충남 유형문화유산. 2024년 지정)은 250여 년 전 제작되었는데 연유를 알 수 없지만, 경남 창원까지 옮겨갔다가 2024년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2021년 창원 길상사에서 주지 무자스님이 창고를 정리하다 용봉사 범종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범종 하단에 ‘홍주 용봉사’라는 글자가 확인되어 수덕사를 통해 용봉사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건륭 37년(1772년)’과 ‘편수 이만돌’이라는 제작시기와 제작자, 봉안 사찰이 명확합니다. 58.2cm 너비 47.5cm 크기에 정교하고 안정감 있는 문양 배치로 이만돌의 역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범종.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대웅전 범종.


    대웅전의 오른편에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는데 특이한 것은 측면에 외짝 띠살문을 앞뒤로 두 개나 설치하였습니다. 현판 글씨는 송원 설정 스님이 썼습니다. 전각 안에는 보궁형 닫집 아래 좌우보처 없이 독존의 지장보살과 후불 목각탱이 봉안되었고, 좌측으로 영산회 괘불탱이 걸려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지장보살.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지장보살.


    용봉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은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괘불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면서 법당 앞뜰에 걸어놓는 대형 불화입니다. 화면 중앙에 석가가 오른손을 무릎에, 왼손을 배에 댄 모습으로 중앙에 가득 차게 앉았고 양옆으로 얼굴은 갸름하고 연꽃 등을 들은 보살들이 있으며,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격인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이 함께 석가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화면의 윗부분엔 10명의 제자가 있으며 석가와 머리 모양이 같은 보살도 보여줍니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였고 연녹색과 자주색 등의 중간색을 넣어 화면이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영산회괘불탱.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영산회괘불탱.


    탱화는 본존인 석가불 크기가 작아진 점과 상·하 이단 구도로 군중들이 3열 형식을 보이는데 17∼18세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작품으로 회화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690년(조선 숙종16년) 숙종의 아들이 일찍 죽자 가로 5.5m, 세로 5.93m 크기의 대형 불화를 그려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화승 진간이 그렸는데 1725년(영조 1년) 그림을 고치면서 적은 화기가 아랫부분에 남아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영산회괘불탱.<국가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지장전의 영산회괘불탱.<국가유산청 제공>


    우측(향좌)하단 남방증장천왕과 좌측(향우)하단 동방지국천왕

    ▲ 우측(향좌)하단 남방증장천왕과 좌측(향우)하단 동방지국천왕


    용봉사지는 현재의 용봉사에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커다란 암벽에 마애여래불 새겨 놓은 높이 4m의 거대한 불상인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보물)이 등장합니다. 돌출된 자연 암석의 바위 앞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감실형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한 거대한 불상입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肉髮)을 큼직하게 표현하고,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잔잔한 미소가 흘러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눈썹은 반원형으로 눈은 가늘게 표현하였는데, 눈꼬리 부분은 약간 처져 있어 인자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코와 입은 얼굴에 비해 작고, 코는 오뚝하고 인중은 깊게 파여 있다.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귀는 어깨 부분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좌우 전경.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좌우 전경.


    신체는 얼굴에 비해 다소 왜소한 느낌을 주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옷 주름은 U자형으로 양어깨를 감싸고 있으며(통견의), 수인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수인과 달리 오른손은 내려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들어 가슴 위에 올렸습니다. 광배는 거신광으로 파낸 바위 면을 이용해 3조의 음각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감이 약해지는데 이것은 불상의 아래에서 바라보는 예배자들의 시선을 배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각 양식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불상 아래에서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어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상반신,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상반신,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하반신.

    ▲ 천년고찰 홍성 용봉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하반신.

     


    <홍성군 용봉사>

    ○ 위 치 : 충남 홍성군 홍북읍 용봉산1길 109 ( 신경리 510-24 )

    ○ 연락처 : 041-632-8917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입장료 및 주차장 : 무료 (사찰 인근 간이 주차장)

    ○ 취 재 : 2026년 5월 24일 등

     

    < 참고문헌 >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 홍성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휘리릭님의 다른 기사 보기 다른 기사 보기
휘리릭님의 최근기사
#용봉사 용봉산 홍성가볼곳 충남가볼곳 충남의전통사찰
OPEN,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기사는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수 0

담당부서 : 충청남도 콜센터
문의전화 : 041-120

* 본 페이지에 대한 저작권은 충청남도가 소유하고 있으며, 게재된 내용의 수정 또는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담당 부서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엑스 네이버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