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햇살이 포근하던 10월의 어느 날, 충남 홍성군 홍성읍에 자리한 홍주의사총을 찾았습니다.이곳은 1906년, 나라를 잃어가던 시대에 끝까지 싸우다 쓰러진 홍주의병(洪州義兵)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평화로운 지금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이 곳은 한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친 항일의 현장 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 후, 나라의 주권을 잃자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났습니다.그 중에서도 홍주의병은 가장 큰 규모로, 가장 치열하게 싸운 의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6년3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홍주읍성에서 봉기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해 5월 다시 봉기해 서천, 비인, 결성 등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홍주 삼산리 전투에서는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며 20일 동안 홍주읍성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5월 31일 새벽, 일본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홍주성을 포위했습니다. 끝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수 백명의 의병이 전사했습니다. 그들의 피와 눈물은 지금도 홍성의 땅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의병들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종식 의병장을 비롯해이세영, 이용규, 곽한일, 김통한, 맹달섭 등 수 많은 인물들이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거나 독립운동으로 뜻을 이어갔습니다. 1907년 민종식은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많은 의병이 유배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계속 이어져 1911년에는 신흥무관학교 설립으로, 1915년에는 대한광복회의 창립으로, 1919년에는 3·1운동과 파리장서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홍주의병의 항전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겠다는 민족의 의지였습니다.

홍주의사총은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곳입니다. 1949년, 뜻있는 분들이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했습니다. 이후 성역화가 진행되어 지금은 중앙 의사의총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참의총, 북쪽에는 솔림방묘, 그리고 홍주의병 기념탑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사자는 80여명이상, 희생자는 수 백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묘역에 서있으면, 그날의 함성이 바람에 실려 들려 오는 듯 했습니다.



홍성에서는 매년 5월 말, 홍주의병 순국기념제와 제향 의식이 거행됩니다. 이 행사는 1906년 홍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뜻깊은 자리입니다. 행사 당일에는 홍성군과 지역 유족회, 학교,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헌화와 분향을 올리고, 학생들이 직접 헌시 낭독이나 추모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홍주의사총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세운 나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바람 속에 남아, 이 땅을 지키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홍성 홍주의사총
○ 주소 : 충남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79
○ 문화관광해설 : 이희자(010-7187-4253)
○ 해설안내시간 : 오전10시~오후5시(월요일휴무)
* 취재(방문)일 : 2025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