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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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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전통사찰 22. 천년의 시간을 빛내온 금산 보석사(寶石寺)

가슴 가득 가을이 출렁이는 전나무 숲과 은행나무

  • 위치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09
  • 등록일자
    2025.09.23(화) 17:39:21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전경.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전경.


    금산 진악산 기슭 천년의 시간을 빛 내온 보석사(寶石寺)

    가을빛 스미는 전나무 숲길 따라 고요한 발걸음마다

    마음의 먼지까지 씻겨 내리며 평온을 전하고

    천년 바람은 기왓장을 어루만지고 범종을 울려 구름 사이로 맴돕니다.

    돌계단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얼마나 많은 기도를 품었을까?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한 자태의 은행나무는

    ‘육바라밀’을 상징하며 여섯 그루가 하나로 합쳐졌다고 합니다.

    숱한 세월을 겪으며 전하는 이야기 그 고요한 속삭임은 초가을 바람에 실려 옵니다.

    대웅전 뜰 단청의 화려한 빛깔에 취해 눈 감으면

    아직도 들려오는 듯 의병승장 영규의 굳건한 함성.

    의병승장비도 오랜 상처를 품고 여전히 굳건히 서 있습니다.

    돌계단 오르는 길, 문득 멈춰 저 멀리 금강의 물결 바라봅니다.

    어느덧 가슴 가득 가을이 출렁입니다.

    산길을 오르다 문득멈추면 보석사는 푸른 숲결에 잠겨 있습니다.

    시간의 강을 건너온 빛처럼 길손의 마음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되어 줍니다.

     

    보석사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眞樂山. 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입니다. 도량규모가 크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전국 31본산의 하나로 위봉사(威鳳寺)와 전북 지역 사찰을 관장했던 불교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통사찰입니다. 창건기원은 통일신라시대인 886년(헌강왕 11) 조구스님으로 전승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뚜렷한 문헌적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사찰 이름과 관련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보석사’라고 불렀다”는 연기설화가 전합니다. 그런데 창건승려로 알려진 ‘조구’는 당시 역사속 실존인물로 확인되지 않아 실체에 궁금증을 낳고 있습니다. 다만, 조구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국사로 책봉했던 천태종 조구 국사와 이름이 같고 그의 고향이 전북 단양현이라는 점에서 동일인이지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를 낳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일주문.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일주문.


    문헌상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등장하는데 이 자료의 ‘금산군’편에 현존사찰로 실려 16세기 초반 사세를 유지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후 ‘범우고’에서는 ‘금폐(今廢)’라고 기록되어 18세게 중반 폐사됐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중건시기는 ‘의병승장비’를 세운 1839년 무렵으로 추정하지만, 일부에서는 조선 말 명성황후 혹은 그의 오빠의 지원을 받은 시기로도 추정합니다. 왕실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니 왕실 원당(願堂)이 주장되는 이유입니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불교 역사서를 작성한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보석사에 대해 886년 조구 조사 창건을 밝혀 대체적으로 9세기 후반 창건으로 불교계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는데 이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조선 후기 또는 근대에 이르러 중건되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해탈문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해탈문.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가람배치는 대웅전(충남유형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왼편에 등운선원과 오르편에 적죽당과 기허당 산신각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1993년 이후 지속적인 중창불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자연석을 7겹으로 쌓은 기단에 덤벙주춧돌을 깔고 배흘림기둥을 세웠습니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에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공포를 기둥뿐 아니라 기둥사이에 모두 설치된 다포양식입니다. 공포는 내외 삼출목 조각과 단청의 조화가 화려한 외관과 고풍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며 단아한 느낌을 둡니다. 전면의 문은 모두 띠살문으로 가운데는 문짝이 4개 달려 사분합을, 양 옆의 협간은 3개씩 삼분합 띠살문으로 달았습니다. 양 측면에는 문짝이 1개씩 달린 띠살홑문이고 지붕 양옆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풍판을 달았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대웅전 불단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충남유형문화유산)이 중생을 맞아줍니다. 나무를 깍아 형상을 만들고 금박을 입힌 것으로 17세기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존좌상이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가운데 석가불은 높이 120㎝, 너비 90㎝ 정도로 둥글넓적한 얼굴에 반듯한 코, 반개한 눈과 입매가 살짝 올라간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줍니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길며, 무릎 폭이 넓어 균형과 안정감이 있습니다. 변형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좌우의 협시 보살은 높이 90㎝, 너비 70㎝ 크기로 문수보살은 어깨에 천의를 걸치고 보현보살은 편삼에 대의를 걸친 착의법과 서로 반대반향으로 연꽃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문수보살 배부분에는 화문장식과 양 무릎에는 장식구가 있습니다. 이처럼 협시보살의 옷차림이 다르고, 문수보살이 복갑을 두룬 모습은 ‘군산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1629년 조성)’과 유사하고 부처님의 모습과 복갑의 표현은 혜희가 조성한 ‘법주사 원통보전 목조보살좌상(1655년)’과 비슷합니다. 석가여래삼존좌상에는 복장물이나 발원문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17세기 후반 활동한 법령파 조각승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현판과 우아한 단청.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대웅전 현판과 우아한 단청.

     

    의선각(毅禪閣)은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계룡산 갑사와 이곳 보석사를 왕래하며 수도할 때 처소로 이용하던 곳입니다. 영규대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800명을 일으켜 싸운 승병장으로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전투에서 승리해 청주성을 탈환했고, 금산에 들어온 왜구를 물리치다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했습니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 영규대상의 위패와 함게 선사 9명의 영정을 모시고 있었으나 영규대사 위패를 칠백의총 종용사로 이전하고 현재는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1839년 금산군수 조취영 등이 영규대사를 기리는 의병승장비(충남문화유산자료)를 보석사 입구에 세웠는데 1940년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자획을 훼손하고 땅에 묻어 광복 후에야 복원되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에 승병장 영구대사와 승병을 추모하는 의병승장비.

    ▲ 보석사의 승병장 영구대사와 승병을 추모하는 의병승장비.


    조사전(祖師殿)은 사찰에서 존경받을 만한 승려를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불교 건축물인데 사찰에 따라 조사각, 국사전, 국사당, 영각 등으로 불립니다. 보석사 대웅전 오른편 뒤쪽으로 있는 조사전은 옛 기허당으로 창건주 조구대사를 중심으로 승병장 사명당 유정대사(좌)와 청허당 휴정대사 등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휴정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조직해 국난극복에 앞장섰습니다. 사명당으로 더 알려진 유정 대신는 휴정의 제자로 실질적으로 의승병을 이끌고 평양전투 등 수많은 승전보를 울렸는데, 일본과 강화회담에 조선 대표로 참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협상을 벌여 조선포로 3500명을 송환시킨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조사전(祖師殿).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조사전(祖師殿).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조사전의 조구대사와 사명당, 휴정대사 영정.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조사전. 창건주 조구대사를 중심으로 승병장 사명당 유정(좌), 청허당 휴정대사 영정.


    범종루의 범종은 높이 95㎝, 하부 너비 63㎝ 크기에 하부에 제작 연대가 1760년(영조 30)으로기록된 명문이 있습니다. 총 무게는 170근으로 상부 용머리 고리와 1개의 통으로 구성되었으며 원형 구획에 범자를 배치 하였습니다. 이밖에 문화유산으로 경내에는 5기의 부도가 있는데 모두 조선 이후에 세워진 것입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범종루.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 범종루.


    최근 보석사는 경사를 맞았는데 그동안 국외로 유출되었던 신중도를 지난 6월 독일에서 경매를 통해 낙찰받아 되찾았습니다. 이 불화는 마곡사 화승인 금호 약효(?∼1928)가 1886년 그린 것으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으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를 통해 경매 출품이 확인되자 6교구 본사인 마곡사와 협의해 경매에 참여해 낙찰 받은 것으로 지난 2일 국내로 반입되어 현재 마곡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탱화의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이 그려지고, 화면 중앙에는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쓴 위태천이 표현돼 있습니다. 붉은 색조를 바탕으로 부분 부분 푸른색과 녹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 것이 특징입니다.

     

    최근 독일에서 경매로 되찾은 보석사 신중탱화.

    ▲ 최근 독일에서 경매로 되찾은 보석사 신중탱화.<조계종 제공>


    보석사는 봉황문으로 나서면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왼편으로 넓은 초지에 수령 1100년의 은행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조구 스님이 창건 당시 제자 5명과 함께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육바라밀은 보살이 고통의 이 언덕에서 해탈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한 실천 수행법으로 대승불교에서는 이타적 실천을 위해 육바라밀을 강조합니다. 안내문 기준 높이 34m, 흉고(가슴높이)둘레 10.7m, 가지 길이는 동서 24m, 남북으로 20.7m 크기의 거목입니다. 지상으로부터 3~5m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가 나뉘고 뿌리 부분에는 2∼3m 높이의 새로 난 싹이 수없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의 천연기념물 수령 1100여 년의 은행나무.


    국가유산청 조사 결과 천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현재의 생육상태는 양호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여름이면 무성한 초록잎과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많은 사람에게 탄성과 힐링을 주고 있습니다. “국가에 큰 일이 있을라면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고 전해지는데 1945년 광복과 1950년 남북전쟁, 1992년 극심한 가뭄에 소리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민속·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보석사은행나무대신제가 개최돼 참석자들은 소원을 담은 소지올리기와 목신제 절올리기, 은행나무 막걸리주기 등으로 무사안녕과 평온을 빌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대대적인 외과수술로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의 전나무 산책길.

    ▲ 천년고찰 금산 보석사의 전나무 산책길.


    전나무 숲길은 보석사의 또 다른 자랑입니다. 마른 먼지 피어나는 흙길과 자갈이 깔린 오솔길에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천년고찰 보석사와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로 조용한 산책과 명상을 즐기기에 그만입니다. 보석사 가는 길의 월영산과 부엉산을 연결하는 275m 출렁다리와 금강의 수려한 경치를 둘러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출렁다리는 글 쓴 일 기준 매주 월요일과 추석, 설날 당일에는 휴무이니 참고(041-754-3837)하세요.


    천년고찰 보석사 인근 월영산과 부엉산을 연결하는 출렁다리.<군산군청 제공>

    ▲ 천년고찰 보석사 인근 월영산과 부엉산을 연결하는 출렁다리.<군산군청 제공>



    <금산군 보석사>

    ○ 위 치 : 충남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 1길 30 일원 (☎ 041-753-1523)

    ○ 운 영 : 연중무휴 (일출 이후, 일몰 이전 관람)

    ○ 입장 및 주차장 : 무료(대형버스 주차 가능)

     * 취 재 : 2025년 9월 21일 등

     

    < 참고문헌 등 >

    한상길. (2024). 기허 영규와 의승 사찰. 대각사상, 42, 135-168.

    이능화, 한국불교통사(韓國佛敎通史), 신문관, 1918.

    전통사찰총서 12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1,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청남도지정문화재해설집, 충청남도, 2001년

    금산군지 2 - 금산군지편찬위원회, 2011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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