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일부터 11일까지 서산 해미읍성 일원에서 열리는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 홍보물
600년 역사를 간직한 충남 서산 해미읍성이 다시 축제의 문을 연다.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는 'HAEMI UNIVERSE : 1421, 시간의 문이 열리다'를 주제로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의 축제로 풀어낸다. 태종대왕 강무행렬과 대동축성행렬, 전통문화 체험과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특히 올해는 '600년의 식탁'이라는 음식문화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축제 소식을 접하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김천에 김밥축제가 있다면 서산에는 '서빔밥축제'가 있으면 어떨까. 서산의 육쪽마늘과 생강, 달래와 어리굴젓 등 지역 특산물을 한 그릇에 담아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나누는 축제 말이다. 그 무대가 조선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해미읍성이라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조선의 골동반, 600년 해미읍성에서 다시 만나다
해미읍성은 1417년 축성을 시작해 1421년 완공된 조선시대 읍성이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성돼 충청도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으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시민과 관광객이 역사를 체험하고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빔밥 역시 조선시대 문헌에서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다. 정경란 연구자가 2015년 발표한 논문 「비빔밥의 역사」에 따르면, 비빔밥은 약 500년 전 문헌에서도 골동반(骨董飯), 혼돈반(混沌飯) 등의 명칭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 박동량의 『기재잡기』에는 혼돈반 관련 기록이 있으며, 19세기 말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고기와 나물 등 여러 재료를 밥에 넣어 비비는 조리법이 전한다.
물론 조선시대 해미읍성에서 오늘날과 같은 비빔밥을 먹었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적 공간에서 당시의 음식문화를 소개하고, 오늘날 서산의 농수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비빔밥을 선보이는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새로운 문화로 이어가는 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산의 들과 바다가 만나는 한 그릇
서산에는 비빔밥을 특별하게 만들 식재료가 풍부하다. 서산시가 선정한 '서산9품'에는 육쪽마늘과 생강, 뜸부기쌀, 달래, 감태, 서산갯벌낙지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간월도 어리굴젓까지 더하면 서산의 농산물과 수산물을 함께 활용한 음식이 가능하다.

▲ 굴밥에 갖은 채소를 넣어 비빈 음식. 서산에서 생산된 달래와 어리굴젓을 곁들인 이 음식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서빔밥' 구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굴밥을 비벼 먹는 음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굴밥에 갖은 채소를 넣고, 서산에서 생산된 달래와 어리굴젓을 곁들여 비비면 굴의 부드러운 식감과 채소의 향긋함, 어리굴젓의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하나의 맛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서산형 비빔밥을 구상할 만한 출발점이다.

▲ 신선한 달래와 갖은 채소에 깨와 양념장을 더한 비빔 양념. 향긋한 달래의 풍미가 살아 있는 이 양념은 굴밥과 어우러져 서산의 들과 바다를 한 그릇에 담는 '서빔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서산 육쪽마늘과 생강을 활용한 양념을 더하고 지역 식재료의 특성을 살린 조리법을 개발하면 어떨까. 구운 육쪽마늘의 고소함과 생강의 향긋함, 달래의 산뜻한 맛에 어리굴젓의 감칠맛을 더하는 것이다. 다만 여러 재료를 무조건 한꺼번에 넣기보다는 맛의 조화를 고려해 메뉴별로 특색을 살릴 필요가 있다.
이름은 '서빔밥'이다. 서산의 '서'와 비빔밥의 '빔밥'을 결합한 이름이다. 어리굴젓 서빔밥, 육쪽마늘 서빔밥, 생강불고기 서빔밥 등 다양한 메뉴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아직은 하나의 제안이지만 지역 농어민과 음식점, 요리 전문가들이 함께 조리법을 연구하고 시민들의 평가를 거친다면 새로운 지역 음식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드는 화합의 맛
비빔밥의 매력은 맛뿐만이 아니다. 여러 재료가 저마다의 색과 맛을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나물은 나물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밥은 밥대로 각자의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과도 닮았다.
이러한 비빔밥의 특성에 시민 화합과 상생이라는 의미를 담아보면 어떨까. 해미읍성에서 농민은 직접 재배한 쌀과 마늘, 생강을 소개하고 어민은 서해의 수산물을 선보인다. 지역 음식점은 저마다 개발한 서빔밥을 내놓고 시민과 관광객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눈다. 어린이와 어르신, 청년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커다란 비빔밥을 완성하는 행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재료를 내놓았느냐가 아니다. 각자의 재료와 손길이 모여 하나의 음식을 완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축제에서 말하는 화합이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미읍성축제, 올해는 '600년의 식탁'... 내년엔 '서빔밥 한마당' 어떨까
처음부터 별도의 대규모 축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 올해 해미읍성축제에서 선보이는 '600년의 식탁'을 계기로, 내년에는 '서빔밥 한마당'을 새로운 음식문화 프로그램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골동반을 소개하는 체험 행사와 서산 특산물 비빔밥 경연대회,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시식회 등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다만 해미읍성은 소중한 국가유산인 만큼 유산 보존과 관람객 안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대규모 조리시설을 무리하게 설치하기보다는 적절한 장소에서 조리와 시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위생 문제까지 세심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축제장에서 먹고 끝나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 음식점들이 서빔밥을 상설 메뉴로 개발하고 시민들의 평가를 통해 맛과 가격을 개선한다면 서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농어민에게는 지역 농수산물을 알리고 판매할 기회가 되고, 음식점에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계기가 될 것이다.
지역축제는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질 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서산에는 600년 역사의 해미읍성이 있고 육쪽마늘과 생강, 달래와 어리굴젓이라는 지역 식재료가 있다. 여기에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빔밥의 음식문화와 화합이라는 이야기를 더해보자는 것이다.
올해 해미읍성축제는 11일 막을 내린다. 그러나 축제가 남기는 이야기는 사흘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김천에 김밥축제가 있다면 서산에는 서빔밥축제가 있어도 좋겠다. 조선의 골동반을 오늘의 맛으로 재해석하고, 서산의 식재료를 한 그릇에 담아 시민들이 함께 나누는 축제 말이다.
서로 다른 재료가 모여 비빔밥을 완성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 올해의 '600년의 식탁'이 내년의 '서빔밥 한마당'으로 이어진다면, 해미읍성은 역사와 오늘의 삶이 만나는 또 하나의 무대를 갖게 될 것이다.
조선의 골동반에서 오늘의 서빔밥으로. 600년 해미읍성에서 서산의 맛을 비비고 시민의 마음을 모으는 새로운 축제를 기대해 본다.
❇ 취재일: 2026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