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연휴인 2026년 10월 5일 오전, 부소산 남쪽에 자리한 삼충사(三忠祠)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제72회 백제문화제의 11개 제례 행사 가운데 하나인 삼충제(三忠祭)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부여청년회의소 특우회 주관으로 열렸으며, 제례복을 갖춰 입은 제관과 제집사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건하게 제례를 진행했습니다.
화려한 축제 현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떠들썩한 음악 대신 고요함이, 흥겨운 공연 대신 경건한 의식이 삼충사 경내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삼충제는 백제 말기의 세 충신인 성충(成忠)·흥수(興首)·계백(階伯)의 구국충절과 호국정신을 기리고 그 충혼을 추모하는 제전 의식입니다.
백제문화제에서 열리는 여러 제례 가운데서도 삼충제는 백제가 멸망해 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뜻과 목숨을 바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부소산 입장이 무료입니다.
부소산의 정문인 부소산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삼충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외삼문인 의열문을 지나면 내삼문인 충의문이 나타나고, 그 안쪽으로 삼충사의 사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삼충사는 백제의 세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을 모신 사당입니다.
삼충신의 위패는 본래 부여의 의열사에 모셔져 있었으나, 해방 이후 새로운 사당을 건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1956년 삼충사봉건기성회가 조직되어 공사를 시작했고, 1957년 삼충사가 완공되면서 삼충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렸습니다.
이후 현재의 삼충사는 백제권 개발사업을 통해 1979년 새롭게 준공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백제의 충절 정신을 기리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충은 백제 말기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좌평을 지냈습니다.
의자왕에게 국정의 잘못을 간언하다 옥에 갇혔으며, 옥중에서 단식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탄현과 기벌포를 지켜야 한다며 나라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사비로 진격했습니다.
성충은 죽음 앞에서도 나라를 걱정한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흥수 역시 백제 말기의 충신으로 좌평을 지냈으나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이 임박하자 의자왕은 흥수에게 방어책을 물었고, 흥수는 백강과 탄현을 지켜 적의 진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백강과 탄현이 무너지면서 백제의 방어선도 무너졌습니다.
나라를 구할 방책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충신으로 성충과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계백은 백제 말기의 장군으로, 나·당연합군에 맞서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아갔습니다.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네 차례의 전투에서 신라군을 물리치며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황산벌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계백은 오늘날까지 백제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삼충제의 시작을 알리는 거제선언과 함께 진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흰 연꽃을 들어 올리며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진혼무는 삼충신의 혼을 위로하는 춤으로, 제례의 분위기를 더욱 경건하게 만들며 세 충신의 넋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연주자들은 거문고와 대금 등 전통 악기로 제례악을 연주했습니다.
전통 음악이 울려 퍼지자 제례의 분위기는 더욱 엄숙하고 격조 있게 느껴졌습니다.

약사보고가 끝난 뒤 강신례가 이어졌습니다.
강신례는 삼충신의 혼을 제례의 자리로 모시는 의식입니다. 본격적인 제례에 앞서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혀 신을 맞이하는 절차입니다.

전통 제례에서는 세 명의 헌관이 차례로 술잔을 올리는데, 이들을 삼헌관이라 합니다.
삼헌관은 관세례를 통해 손을 깨끗이 씻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초헌례에 앞서 제집사들은 제례에 사용할 술을 준비하고 술잔을 따라 헌관에게 전달했습니다.

삼충제에서 중요한 절차 가운데 하나가 삼헌례입니다.
초헌·아헌·종헌으로 나누어 세 차례 술잔을 올립니다. 이날 초헌관은 송정범 전 부여군의회 의장이 맡았습니다.
초헌관은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삼충신에게 가장 먼저 정성을 바치는 역할을 합니다.

부여청년회의소 4대 회장인 김영만이 축관을 맡아 축문을 읽었습니다.
축문은 특이하게도 대나무 발 모양의 축판에 적혀 있어 전통 제례의 격식과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아헌관은 신명섭 부여청년회의소 특우회 전회장이 맡았습니다.
아헌관은 초헌관에 이어 두 번째 술잔을 올립니다. 첫 번째 헌작에 이어 다시 한번 삼충신의 충혼을 기리고 추모하는 절차입니다.

종헌관은 이재진 부여청년회의소 특우회 회장이 맡았습니다.
종헌관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술잔을 올립니다.
이렇게 초헌·아헌·종헌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헌작이 마무리되면서 삼충신에 대한 정성을 다했습니다.

헌화와 분향은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우며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순서입니다.
제관과 참석자들은 꽃과 향을 통해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화려한 행사가 아닌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 시간은 삼충제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례가 끝나가는 과정에서는 음복례와 망료례가 이어졌습니다.
음복례는 제례에 사용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제례의 의미를 함께하는 절차입니다.
이어 망료례를 통해 제례를 마무리했습니다. 망료례는 축문을 불태워 제례를 마무리하는 의식입니다.

제관들과 참석자들의 재배가 끝나고 종제선언이 이루어지면서 약 한 시간에 걸친 삼충제의 모든 의식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제관들과 내빈들은 삼충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수고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제72회 백제문화제에서는 삼충제를 비롯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11개의 제례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례는 백제의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과 희생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의식입니다.
10월 2일에는 고천제 및 혼불제화, 팔충제, 삼산제가 열렸고, 개막일인 3일에는 백제대왕제가 열렸습니다. 이어 5일에는 삼충제가 거행되었습니다.
10월 6일에는 백제오천결사대 충혼제가 열려 황산벌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싸운 5천 결사대의 넋을 기립니다.
10월 7일에는 백제궁녀제가 열려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백제 궁녀들의 충혼을 추모합니다.
10월 8일에는 유왕산추모제, 10월 9일에는 임천충혼제, 10월 10일에는 석성충혼제가 차례로 열려 지역의 역사와 백제의 충절 정신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10월 11일에는 백제부여불교수륙대재가 봉행되어 물과 육지에서 희생된 모든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이처럼 백제문화제의 제례 행사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만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백제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삼충제 참석을 마치고 백마강변에 펼쳐진 가을꽃의 향연을 둘러보았습니다.
백마강변 잔디밭은 백제문화제를 맞아 넓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주차한 뒤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정림사지를 비롯해 부여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 현장을 편리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백마강변에는 정말 넓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 고운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꽃밭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노랑코스모스, 즉 황화코스모스가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장관입니다.
형형색색의 바람개비가 꽃밭 사이에서 함께 돌아가며 가을 풍경에 운치를 더했습니다.

곳곳에는 다양한 색상의 미니맨드라미가 무지개처럼 띠를 이루며 펼쳐져 있었습니다.
백제문화제는 역사와 문화의 향연에 더해 아름다운 가을꽃까지 어우러지면서 부여의 들판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습니다.
제72회 백제문화제는 ‘아름다운 백제, 빛나는 사비’라는 슬로건 아래 오는 10월 11일까지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펼쳐집니다.
백제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공연과 거리 행렬로 만나고,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며, 백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
백제문화제는 단순히 백제의 역사를 기억하는 축제를 넘어,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미래로 이어가는 축제입니다.
<제72회 백제문화제 삼충제>
○ 일시: 2026년 10월 5일(월) 오전 11시
○ 장소: 삼충사
○ 주관: 부여청년회의소 특우회
* 방문일: 2026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