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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읽어드릴까요?

[충남의 전통사찰 61] 잃음과 회복의 시간 당진 영탑사(靈塔寺)

수 백 년 절을 지켜온 거수목이 줄지어 반겨주는 천년고찰

  • 위치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560
  • 등록일자
    2026.10.01(목) 11:53:17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삼존좌상(보물).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삼존좌상(보물).



    상왕산 깊은 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맞아준 것은

    전각의 지붕도, 탑의 윤곽도 아닙니다

    수백 년을 한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 절집의 문처럼 서서

    긴 가지를 하늘로 펼치고 있습니다

    굵은 나무 몸통에는 비와 바람과 세월이

    나이테마다 묵묵히 포개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웅전과 유리광전의 고운 처마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어울려

    그 풍경 앞에서 한동안 발을 멈추게 합니다

    나무는 전각을 가리지 않고, 전각은 나무를 밀어내지 않은채

    서로의 빛과 그늘을 나누며

    천년의 시간은 조용히 완성되고 있습니다.

     

    중년의 마음은 이제야 그런 조화를 알아보나 봅니다

    젊은 날 높은 것과 새로운 것에 눈길을 뺏기지만,

    이제 오래된 것들이 서로 기대선 모습이 더 깊게 아름답습니다

    거목과 어루러진 전각의 처마는 낮게 빛나고

    유리광전 바위에는 칠층석탑이 오래된 기도처럼 서 있었습니다.

    돌 층층마다 사람들이 품고 온 소원을 품어냅니다

     

    비로전에서 나의 몸가짐은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그 안에 한때 사라져 모두의 안타까움 주었다가

    다시 돌아온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이 함께한 삼존은

    돌아온 시간의 무게로 더 깊은 빛을 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침묵 속에 함께 새겨집니다

     

    되찾는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상실의 시간을 기억한 채 다시 제자리에 세우는 일입니다

    느티나무도 동의하듯 바람을 받아 일제히 흔들립니다

    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넓은 그늘을 다시 펼치고

    전각들은 저마다 고요를 지킵니다

    영탑사는 그렇게 잃음과 회복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탑사는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하로 139-33(성하리 산67) 일원 상왕산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의 전통사찰입니다. 경내에는 당진시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나무가 6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120년부터 400년 이상 된 웅장한 거목과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천년의 향기가 첫인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를 지켜온 수백년 수령의 거수목들.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를 지켜온 수백년 수령의 거수목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의 당진시 '아름다운나무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의 당진시 '아름다운나무'


    창건연대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에 의한 창건설화가 전해지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이후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오층석탑을 세우고 영탑사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무학대사가 지금의 법당 자리에 있던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했는데 오층석탑을 법당 뒤 바위 위로 옮겼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의 환영 랜드마크.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의 환영 랜드마크.


    기록에 따른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대부분 공백이지만, 1760년(조선 영조 36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영탑사는 군 서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조선 후기 절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98년 연암당 지윤 스님의 유리관전 중수와 근래 들어 1988년에는 대웅전을 중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칠층석탑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칠층석탑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


    가람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비로전을 비롯해 왼편(향우)에 유리광전과 석탑, 산신각, 요사(인법당) 등이, 오른편으로 요사(적묵당)가 있습니다, 원래 대웅전에는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보물)이 있었지만, 1975년의 도난과 회수 이후 별도로 보관하다 지금은 대웅전 맞은편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가람 안내도.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가람 안내도.


    대웅전은 전면 5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비교적 큰 전각으로 예전에는 대적광전으로 불렸습니다. 전각 정면으로 기둥 위에 용 머리를 삽입했는데 오른쪽(향좌)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오른쪽은 앞발로 여의주를 쥐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전면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전면 전경.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현판과 화려한 단청.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현판과 화려한 단청.


    법당에는 석가모니삼존불과 후불탱화를 봉안했고, 1760년 조성된 높이 60㎝, 지름 46㎝의 범종이 있습니다. 이 동종은 규모는 작지만 섬세한 조성기법으로 주목받는데 용뉴는 발가락 4개의 용의 형상이 종을 매달고, 견대는 톱니바퀴 모양의 둥근 구획과 안에 범자문을 넣었습니다. 유곽은 기하학적 무늬로 테두리를 돌리고 그 안에 연화문의 유두를 배치했습니다. 이종은 흥선대원군이 인근 가야산 가야사 절터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장하기 위해 절을 불태우고 그 범종을 영탑사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충남의 전통사찰 56] 이대천자지(二代天子地) 풍수의 전설, 예산 보덕사(報德寺) 참조>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석가모니삼존불.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석가모니삼존불.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전경.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범종.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대웅전 범종.


    대웅전 마당 건너편의 비로전에는 영탑사에서 분실되었다가 되찾은 문화유산 2점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석천룡도입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측면 전경.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은 원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것입니다. 8각형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본존불인 비로자나불과 양옆에 문수와 보현보살이 협시하는 삼존불로 고려 시대 전형적인 구도입니다. 먼저 본존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이고 그 위에 상투 모양의 육계를 큼직하게 만들었습니다. 상반신은 길고 큼직하지만 하반신이 위축되어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무릎 높이도 상반신에 비해 낮아 균형이 고르지 못합니다. 가슴 역시 평면적이고 하반신 처리는 둔중한데 이러한 수법은 고려 중기 이후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손은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국가유산청 제공 >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국가유산청 제공 >


    왼쪽과 오른쪽 협시보살은 모두 같은 자세로 똑같은 수법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쓴 보관은 따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머리 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머리카락은 길게 어깨까지 내려왔습니다. 얼굴은 본존불과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좀 더 여성스럽고, 가슴의 목걸이 장식은 유난히 크게 만들었습니다. 잘록한 허리에 둘린 천의는 몇 가닥 띠로 허리를 잔뜩 졸라맨 것처럼 보이는데 대좌는 본존불 대좌에서 나온 2개의 연꽃 줄기가 만든 연꽃 봉오리의 특이한 형태입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국가유산청 제공 >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국가유산청 제공 >


    제석천룡도(신중도) 역시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1984년 해체 보수작업 도중 도난당했다가 2025년 환수되어 현재 비로전에 보관 중입니다. 가로 100㎝, 세로 145㎝ 크기의 비단에 그린 불화로 18세기 후반 제작됐습니다.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안정적이며 섬세한 인물 묘사 등 뛰어난 기량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상단에서 제3의 눈을 가진 범천(창조의 신으로 지혜와 통찰력)과 신들의 제왕인 제석천(복과 장수 상징)을 중심으로 왕의 모습으로 표현된 일월천자(해와 달을 상징하며, 질병과 적을 쫓아내고 깨달음을 주고 세상을 정화) 2구, 천부보살(재앙을 몰고 오는 악귀나 병을 퇴치) 2구, 동자 2구가 기립해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제석천룡도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제석천룡도 전경.


    하단에는 새 깃털 장식의 투구를 쓴 위태 천(악과 무지를 소멸 경전과 사찰을 수호)을 중심으로 용왕(비와 물을 관장)과 가루다(중생을 고난에서 구하는 신), 아수라(번뇌를 없애는 신)등 팔중신중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신중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을 수호하는 신입니다. 사람들에게 재앙을 없애 주고 나라를 수호하며 복과 수명을 늘려주는 존재입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제석천룡도 상단.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비로전 제석천룡도 상단.


    영탑사의 담장 너머 상왕산 비탈면에 석축을 쌓은 자리에는 유리광전이 있습니다. 전면과 측면 각 3칸씩에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전각에는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이 3.5m 높이의 암벽에 좌불로 새겨져 있습니다. 약사여래는 동쪽 정유리세계에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며 현세의 행복과 즐거움을 이루게 하는 부처입니다. 머리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을 표현하고, 얼굴은 윗부분이 넓고 밑부분이 갸름한 형상으로 신체에 비해 큰 편입니다. 얼굴의 눈·코·입은 길고 큼직한데 다소 서투르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면서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친근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형태는 고려부터 유행하던 충청도 지방의 일반적인 불상 양식입니다. 유리광전의 현판은 8살 어린아이의 글씨라고 합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몸은 4각형으로 건장하나 움츠린 듯한 느낌으로 무릎이 높고 넓어서 얼굴과 함께 둔중해 보입니다. 옷은 양어깨에 걸치는데 Y자형의 속옷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옷 주름은 굵은 선으로 새겨 졌지만, 마멸이 심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사찰을 둘러보고 기이한 바위가 빛을 내고 있어 심상치 않게 여겨 불상을 조각해 나라의 평안을 빌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데 이후에도 영험함에 효과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의 약사여래상 좌불.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의 약사여래상 좌불.


    법당 뒤로 바위 위에는 칠층석탑(靈塔寺七層石塔)이 있습니다. 절벽의 커다란 바위를 기단 삼아 7층의 탑신을 올린 이 탑은 바위와 탑이 만나는 부분이 조금 어긋나 있어 원래의 자리는 아닌 것으로 추정합니다. 탑신의 각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뜬 조각이 있습니다. 지붕돌은 1층부터 5층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처마의 선과 거의 직선을 이루고 있지만, 새로 만든 6, 7층은 네 귀퉁이에서 심하게 들리고 밑면의 받침조각도 얇아서 서로 대조를 보입니다. 꼭대기 머리 장식은 간략화된 모습입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 전경.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의 6층 탑신.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의 6층 탑신의 조각.


    이 탑은 고려 중엽 보조국사가 절 앞마당에 건립했는데 무학대사가 마애불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는 설과 1798년(조선 정조 22) 연암당 지윤스님이 유리광전을 보수할때 뒤편의 천연바위에 5층 탑을 세우고 절 이름을 ‘영탑사’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7층 탑으로 이후 훼손되어 5층만 남아 있던 것을 1920년대 신도들에 의해 다시 7층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의 측면 전경.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칠층석탑의 측면 전경.


    산신각은 사찰 중심구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전면과 측면 각 1칸씩으로 세워져 있는데 내부에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산신각.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산신각.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산신각.

    ▲ 천년고찰 당진 영탑사 산신각.



    < 당진시 영탑사 >

    ○ 위 치 :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하로 139-33(성하리 산67)

    ○ 연락처 : 041-356-3204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입장료 및 주차장 : 무료 (사찰 주차장 운영)

    ○ 취 재 : 2026년 9월 28일 등

     

    < 참고문헌 >

    이병희. (2004). 조선후기 내포지역 불교계의 동향. 지방사와 지방문화, 7(2), 7-40.

    엄기표. (2020). 한국 근대기 석탑의 건립 현황과 특징. 문화사학, (54), 215-256.

    원보현. (2025). 조선 후기 충남지역 범종 (梵鐘) 과 주종장 (鑄鐘匠) 연구-주종장 이만돌을 중심으로. 미술사학, (49), 63-92.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 당진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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