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9월 28일, 어제는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지 106주기가 되는 날이었어요.
시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매년 9월 28일 순국일을 기념해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추모제를 열고, 열사의 넋을 위로하고 자유와 평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천안시립예술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추념사·추모사 낭독, 헌화 및 분향, 유관순 노래 제창 등으로 이어졌다고 해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하여 28일까지 온라인 추모관도 운영되었습니다.
추모제를 이틀 앞둔 시점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직접 찾아 추모하고 기리는 시간을 가졌어요.

대형 40대, 소형 40대 다수의 차량을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완벽하게 갖추어 자차를 이용하는 방문객에게 보다 나은 편의를 제공합니다.
더불어 주차장 옆 한편에는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 중인 남녀 공영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어요.

유관순 열사 생가가 가까워질 때쯤 무궁화와 태극기로 가득 채워진 길목을 보면서 뭉클해지기도 했어요.
태극기를 형상화하여 만든 꽤나 큼지막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는데 옆으로 걸음을 조금씩 옮기자 '대한 독립 만세'라는 글귀가 나타나더라고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태극기와 글귀가 번갈아 보여지는 조형물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면 유관순 열사 생가비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최초 여류 장편소설가인 소영 박화성 선생이 시를 짓고, 서예가 갈물 이철경이 글씨를 새긴 기념비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라 그동안 열사에 관하여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았다고 해요.
해방 이후 유관순 열사의 전기나 영화 등에 잘못 묘사된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는데, 그러한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 잡아 정확하게 알리고자 한다는 내용이 생가비문 상단에 표기되어 있으니 방문 예정이신 분들은 꼭 한 번쯤 정독해 보시길 바랄게요.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옛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 위치한 국가 지정 사적(사적 제230호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의 핵심공간입니다.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서 한국 근대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이 기획되고 태동한 역사점 거점이라고 할 수 있죠.
*관람시간
- 365일 연중개방(연중무휴)
- 3~10월(하절기) : 9시 ~ 18시
- 11~2월(동절기) : 9시 ~ 17시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관람료 : 무료
*문의 및 안내 : 041-564-1223(유관순 열사 기념관)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이곳 지령리 마을에서 아버지 유중권 공과 어머니 이소제 여사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생가는 계몽운동과 개신교 신앙이 결합된 개화파 가문의 터전이었다고 해요.
아버지 유중권 공은 흥호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 계몽에 힘썼으며,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유관순 열사는 어린 시절부터 애국심과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생가 바로 앞에는 한 화면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커다랗고 높이 솟은 낙우송 두 그루가 있는데요.
피라미드 형태로 높게 자라며 가을에 노란빛 단풍을 보여줍니다.
메타세쿼이아와 외형이 비슷하지만 잎이 줄기에 어긋나게 달리는 점이 다르다고 해요.
생가 내 감나무 역시 놀라울 정도로 큰데 다 열매까지 주렁주렁 엄청나게 열려있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어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뒤, 이화학당 고등과에 재학 중이었던 유관순 열사는 일제의 휴교령으로 인하여 고향에 내려오게 됩니다.
일제는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이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죠.
열사는 이 생가를 거점으로 하여 마을 어른들과 인근 교회의 교인들, 지역 유림들을 설득하며 독립운동을 조직했습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당일, 일제 헌병의 잔혹한 무력 진압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인 유중권·이소제 부부가 현장에서 순국했습니다.
이후 일제 헌병대는 만세운동의 주모자 가문이라는 이유로 생가를 방화하여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하죠.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생가 터는 해방 후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 사업의 일환으로 1972년 사적으로 지정하였고, 1991년 12월 정부와 천안시에 의해 고증을 거쳐 현재의 초가집 형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정겨운 흙벽과 짚으로 얹은 초가 지붕으로 조성된 ㄱ자 형태의 집으로 대청마루, 안방, 윗방, 부엌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농기구를 보관하던 헛간과 외양관, 외부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방으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사랑방은 아버지 유중권 공이 마을 사람들과 시국을 논하고 주민들을 계몽하던 장소였다고 하네요.

안방에는 1919년 3월 말, 유관순 열사가 밤중에 기름 등잔불을 켜고 친척 및 지역 동지들과 함께 거사 당일 사용할 태극기를 손수 제작하는 모습이 실물 크기의 마네킹과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어요.
열사는 밤을 새워가며 태극기를 손수 그렸으며 촛불을 켜놓고 주변 인근 붕숙, 연춘리, 수신, 목천 등 각 마을을 직접 발로 뛰며 만세운동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만세운동 전날 밤인 3월 31일, 매봉산 봉화대에서 신호의 횃불을 올리기까지 모의가 이루어진 핵심 정점이 바로 이 생가였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생가 마당에는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의 무궁화 '유순'이 기념식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흰색 꽃잎에 붉은색 단심이 있는 백단심계로 꽃이 작고 단심 색이 옅고 특이합니다.
순국 106주기에 맞추어 열사의 생가를 방문하는 분들이 꾸준히 이어지더라고요.
생가 곳곳을 꼼꼼하게 살펴보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함께 머무는 시간동안 모두가 한마음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매봉교회 내 조성되어 있는 전시실도 함께 둘러보기 위해 방문을 했습니다.
매봉교회는 천안 동부 지역에서 최초의 교회로 설립되어 구한말 국채 보상 운동과 만세 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 경찰에 의하여 불태워지고 결국은 강제 폐쇄 조치된 교회입니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시 유중권, 조인원 등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가담했다가 많은 교인들이 순국하고 유관순 열사도 이때 체포되어 순국했습니다.


전시실 내부에는 생각보다 자료들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현재는 아쉽게도 습기로 인한 전기 누전이 발생해 출입과 관람이 불가했습니다.
하루 빨리 상황이 개선되어 유관순 열사 생가를 찾는 분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중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항거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잊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62년 독립장에 추서된 유관순 열사는 2019년 3·1 운동의 상징으로서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독립통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받았어요.
유관순 열사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부모를 포함한 가문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민족적 비극과 숭고함이 서린 상징적 장소인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근대사 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꾸준하게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안 유관순 열사 생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1
○ 365일 연중개방(연중무휴)
○ 3~10월(하절기) : 9시 ~ 18시/ 11~2월(동절기) : 9시 ~ 17시
○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주차 및 관람료 : 무료
○ 문의 및 안내 : 041-564-1223(유관순 열사 기념관)
○ 1972년 10월 사적 제230호 지정
* 취재(방문)일 : 2026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