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항우 회장이 대상 팻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충남 우수 품목농업인연구회 선발서 ‘최고점 95.3점’ 획득
둘로 갈라져 있던 연구회 하나로 묶어… 표준재배력 마련
홍성에 없던 육묘장 세우고, 무병 우량묘 12만 주 보급해
청년 농부에게 무료로 기술 전수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
1980년대, 홍북면 석택리 들녘에 비닐하우스가 한 동씩 서던 무렵이었다. 갓 결혼한 청년은 동네 형님들을 따라 딸기 육묘를 시작했다. 이에 더해 수박과 담배와 벼농사를 짓기도 했는데, 그의 보살핌 아래 자라난 작물들은 하나같이 확실한 결실을 맺곤 했다.
그 뒤로 4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지난 10일 열린 ‘제6회 충청남도 품목농업인연구회 전진대회’에서 도지사 대상을 받고 단상에 올라 우수사례를 발표했다. 앞서 ‘2026년 충청남도 우수품목 농업인연구회 선발대회’에서 홍성군딸기연구회가 받은 점수는 최고점인 95.3점. 회원 252명, 재배면적 154㏊, 충남 최대 규모의 연구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한항우 회장(64)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40여 년의 기록, ‘실패’ 없던 세월
한항우 회장의 딸기 농사는 20대 청년 시절, 고향 마을인 홍북면 석택리에서 시작됐다. 당시는 딸기가 지금처럼 흔한 작물이 아니었다. 산지도, 기술도, 판로도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해결하던 시절이었다.
“집사람하고 결혼하기 전에도 조금씩은 했지만,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예요. 동네 형님들이 딸기 농사를 많이 지으셨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딸기를 해보자’ 마음먹고서 형님들하고 공동으로 육묘도 하고, 그렇게 시작한 거죠.”
1980년대는 우리 농업사에서 ‘백색혁명’이라 부르는 시기와 겹친다. 그전까지 딸기는 밭에 심어 기르는 노지 재배가 대부분이었다. 5월에서 6월 초여름, 보릿고개가 막 지난 무렵에나 반짝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농가에 비닐과 파이프가 보급되면서 시설 재배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비닐하우스 덕에 겨울철 조기 출하가 가능해졌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물었다. 보통은 이 대목에서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그의 대답은 싱거우리만치 간결했다.
“너무 힘들다 싶은 그런 시기는 없었어요. 수확은 매년 잘 되는 편이었으니까.”
토경에서 수경으로 넘어온 지 13년, 어떤 방식이든, 단 한 해도 실패를 본 일이 없었다. 한 회장의 농장엔 충남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다른 시군 연구회에서, 타 지역 농부들이 그의 하우스로 견학을 온다.
■ 매일 아침 한 바퀴, 몸에 새겨진 안목
비결을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잠시 머뭇거렸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작물을 보는 눈이 좀 있지 않나 싶어요. 뭐가 부족한지, 뭘 더 줘야 하는지, 얘가 지금 건강한 상태인지. 잎을 보면 알아요. 이 식물한테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그런 대처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한 바퀴씩 둘러봐요. 어디 이상이 있나, 그거 확인하려고요.”
매일 아침의 성실함으로 체득한 안목(眼目)이 비결이었던 셈이다.
“저는 제가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잘한다고 그러더라고요. 허허.”
한 회장의 1년은 열두 달이 아니라 13개월이다. 6월에 수확이 끝나면 7월부터 9월까지 육묘가 이어지고, 정식을 마친 뒤 한 달 남짓이 그나마 한가한 시기다. 가장 바쁜 3월부터 5월까지는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여섯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하우스에 선다. 주말은 없다. 그 13개월이 40여 년 동안 반복됐다.
■ 홍성에 없던 ‘육묘장 4개소’ 조성해
홍성군딸기연구회는 2008년 12월 신활력딸기작목연구회로 창립했다. 전국적으로 품목연구회가 생겨나던 때 농업기술센터 주도로 만들어진 조직이었고, 한 회장은 그때부터 함께한 창립 멤버다. 그가 회장직을 맡은 것은 3년 전, 어려운 시기에 추대를 받아 떠맡은 자리였다. 당시 연구회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제 생각으로는 이걸 하나로 통합해서 회원 간에 단합된 조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매월 병충해 정보하고 관리 방법을 회원들한테 문자메시지로 보냈어요. 딸기가 병에 취약하다 보니까 약제 배부 같은 사업도 하고요.”
한 사람의 눈에 담겨 있던 것을 여럿의 손에 쥐여주는 일이 그다음이었다. 남명현 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장의 조언을 받아 표준재배력과 표준방제력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공유했고, 홍성 회원들만 보던 그 자료는 지금 충남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딸기 농사의 성패는 묘(苗)에서 갈린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묘가 들어오면 그해 농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공주에도 있고 부여에도 있는 전문 육묘장이 홍성에는 없었다.
“충청남도농업기술원과 홍성군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육묘장을 네 군데 지었어요. 홍북, 금마, 은하, 구항.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우량묘를 12만 주 공급했죠. 그런 활동들을 주로 많이 했는데, 굉장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그저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홍성군딸기연구회가 받은 우수연구회 대상 상장.
■ 끝내 말하지 않은 것들, 함께 들어 올린 결실
“굉장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가 스쳐 지나간 일들은, 정작 도(道)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들이었다. 이번 선발대회는 조직 운영과 연구 활동, 기술 확산, 지역농업 기여도를 종합 심사했다.
무병 우량묘 12만 주 보급 체계, 홍성딸기 표준재배력 개발, 병해충 공동방제, 통합브랜드 공동출하 체계가 모두 평가표 위에 올랐다. 홍희·골드베리 같은 지역 특화 신품종을 실증해 보급한 것, 청년농업인과 신규농업인을 위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3년 전 소박하게 시작했던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어느덧 30명이 넘는 농부들이 함께하고 있다. ‘징검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그램은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외부 예산도, 대가성 비용도 없이 연구회 소속 선도농가들이 1대1 현장 멘토링과 육묘·병해충 방제 실습으로 노하우를 내놓는 방식이다.
“일단 농사를 잘 지어야 성과가 나오잖아요. 기술을 가르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청년들이 시골에서 자립할 수 있게끔 돕는 거죠. 근래에 두 명을 직접 가르쳤는데 둘 다 성공했고, 5년 사이에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늘었어요.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술을 배우고, 너무 앞서가려고 하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 내일 해야 할 일 차근차근하다 보면 다 성공할 수 있어요.”
인터뷰에서 한 회장이 꺼내지 않은 이야기는 또 있었다. 홍북에서 금마로 터를 옮긴 뒤, 마을에 딸기 농사를 퍼뜨린 사람이 그라는 것. 대형 농기계로 이웃 농가의 일을 대가 없이 봐주고 있다는 것.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를 통해 듣게 된 미담이었다.
■ 미래를 위한 직언, 유통센터와 육묘장 현대화
인터뷰 내내 웃으며 말하던 그가, 딱 한 대목에서 웃음을 거뒀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다만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어투가 진지해졌다. 군의 지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홍성의 딸기 농가는 400여 가구, 한 해 소득 규모는 300억 원가량이다. 돼지 사육두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고 한우와 닭도 많아 축산업이 전국 1위로 꼽히는 홍성에서, 딸기는 그 축산 바로 다음이다.
“제가 행사 때마다 주장하는 게 그거예요. 축산 다음이 딸기예요. 홍성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데, 축산에 비해서 어떤 대우나 이런 건 밀리거든요.”
그가 이 말을 꺼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군수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는 홍성 경제에서 딸기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농가 지원이 낙후돼 있다며 육묘장 설치 확대를 요구한 바 있다.
가장 큰 걱정은 기후다. 딸기는 저온성 작물이라 여름이 길어지고 뜨거워질수록 육묘가 어려워진다. 회장을 맡은 뒤 이종화 전 충남도의원에게 부탁해 2년에 걸쳐 육묘장 천장개폐시설 지원을 받아냈지만, 도비만 확보되고 군비가 따라오지 못해 일부 농가에 그치고 말았다.
“처음 딸기 농사를 시작할 땐 시들음병과 잿빛곰팡이병 정도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이상고온 탓에 고온탄저병을 비롯한 수많은 병충해가 극성을 부려 우려가 큽니다. 육묘장이 옛날 시설이 많습니다. 신규 시설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시설을 현대화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시설 개선을 통해 이상기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무병우량묘 보급 지원도 몇 년 전이랑 똑같이, 물가 반영이 안 된 채로 운영되고 있어서 아쉽고요.”
한 회장은 도지사 대상을 수상하면서 함께 받은 협력사업비 5000만 원으로 지하철 광고와 온라인 판매 플랫폼 개설을 계획 중이다. 도매시장에 넘기고 끝나던 방식으로는 당일 배송 시대를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심사에서도 생산·브랜드·유통을 연계한 거버넌스와 온라인 직거래 기반 확대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군 차원에서 유통센터가 건립됐으면 좋겠어요. 시대 흐름에 맞게끔, 시대에 맞는 유통을 할 수 있게끔요. 청년들이 딸기 농사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거든요. 센터가 생기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1년 13개월 40년. 그 안엔 극적인 위기도, 드라마 같은 극복도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 하우스를 둘러보고, 작물의 잎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전부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농장을 나서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특유의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배웅했다. 사십여 년의 사계(四季)를 지나온 농부의 얼굴엔 봄볕 같기도, 산들바람 같기도 한 인상이 담겨 있었다.
‘제6회 충청남도 품목농업인연구회 전진대회’에서 한항우 회장이 도지사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