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계룡시는 3군 본부가 위치한 국방 도시이다. 영산인 계룡산이 있어 한때 무속인들이 모였던 곳이고 태조 이성계가 천도 후보지로 삼을 만큼 작지만 강한 도시다. 엄사면과 금암동 사이를 지나다 보면 길가에 ‘경충사’라고 새겨진 비석이 보여 발길을 돌려 보았다.


▲ 경충사 입구
몇 걸음 올라가면 전주이씨 평성군 종회의 공적비와 행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평성군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손자로 유년 시절부터 기개가 당당하고 성품이 너그러우며 공재불사의 신념으로 면학하여 성경 현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의 문인이었다고 한다.


▲ 현판 입구
바로 앞에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이 보인다. 이심원은 평성군의 아들로 1478년(성종 9) 주계부정(朱溪副正)에 제수되어 성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임사홍(任士洪)의 무고로 장단·이천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고 1487년 종친과시강경사에서 장원급제하여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제수되었다.

▲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당시 고모부인 임사홍이 국권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보고 성종에게 아뢰어 멀리 유배를 보냈는데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다시 집권한 임사홍의 모함을 받아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그 뒤 조광조(趙光祖)·정광필(鄭光弼)을 비롯한 유림들의 계(啓)에 의하여 1517년(중종 12)에 신원(伸寃)되었으며, 또 이심원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이 세워지고, 흥록대부주계군(興祿大夫朱溪君)으로 증직되었다. 현판에는 충신주계군심원지려 忠臣朱溪君深源之閭라는 글귀가 씌어있고 그 외에도 중수기와 정려기 등 4기의 현판이 걸려있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우던 전통 제도로 이 정려각은 4면이 홍살로 보호되어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 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경충사 앞에는 붉은 배롱나무꽃과 상사화가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화려한 색상의 삼문 三門과 비석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조선왕조 태종대왕 증손 정의대부 평성군 기념비였다.


▲ 경충사 입구
조선시대 충신인 이심원 선생의 숭고한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 경충사가 보인다. 이심원 선생은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문신이지 성리학자이다.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 손자 평성군의 장남이다.


▲ 경충사 모습
정려와 단소는 원래 1519년 경기도 장단군에 세워졌으나, 1975년 엄사리로 옮겨 세웠다가 1984년 3군 본부가 이전하면서 다시 이곳 금암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효령대군 종회에서는 친손인 평성군의 사당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보성군 종회와 힘을 합쳐 2015년 경충사 뒤편 경운 단소에 사당 경운사 景雲祠를 건립하여 수계군 위패도 함께 봉안하였다.


▲ 경운사 모습
주계군 이심원 선생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충신과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음란하고 방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료들 특히 고모부 임사홍까지 부정부패 상소를 5차례 올리는 굳건한 충절을 보였기 때문이다.


▲ 경충사 전경
경충사나 경운사 그리고 '충신주계군심원지려' 현판이 화려하고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한옥에 깔끔하게 관리된 모습을 보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주이씨 종중에서 노력하겠지만, 우리도 선조들의 충절을 되새기며 배우고 익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경충사 부속시설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 1길 7
○ 관람 시간 : 상시 개방
○ 이용요금 : 무료
○ 주차장 : 여유 있음
* 취재일 : 2026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