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향천루 전경.
금오산 기슭 선선한 바람이 절집을 안내해줍니다
산의 품 안에서 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기도처럼 고요하고도 깊습니다.
오래된 숨결로 서 있는 이 절은
금까마귀 한 쌍이 향기로운 샘터를 일러준 전설을 품고
천년의 시간을 차분히 견뎌 왔습니다.
천불전 지붕 위로
햇살이 한 줄기 내려앉으면
구층석탑은 그 빛을 받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킵니다.
돌탑의 층층마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고
그 흔적은 한 권의 역사책처럼
조용히 펼쳐져 있습니다.
17세기 중반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안고도
여전히 자비의 눈빛으로 찾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불상의 손끝에서 흐르는 자비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듯하고
그 치유는 말없이 전해지는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향천(香泉)이라는 이름처럼
절집의 공기는 향기로운 샘물처럼 맑고
그 맑음은 사람의 마음까지 조용히 적십니다
중년을 지나온 방문객은 이곳에서 비로소 압니다
사람의 삶도 이 절집처럼 오래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견딤의 끝에서 비로소 진정한 평온을 만난다는 것을.
향천사는 천년의 시간이 스며든
한 편의 서정시처럼 그렇게 서있고
나는 그 시 속에서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향천사는 산의 품 안에서
오래된 숨결로 그렇게 서 있습니다.
향천사는 충남 예산군 예산읍 향천사로 117-20 (향천리 57) 일대 금오산 향로봉 남쪽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전통사찰입니다. 창건 설화에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샘물”로 향천(香泉)이라는 사찰 이름을 얻었고 의각대사(義覺大師)가 샘물 자리에 절을 짓고 향천사라 불었다“고 합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전경,
창건연대는 652년(백제 의자왕 12년) 의각대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는 없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각은 652년 일본에 건너갔다가 중국 당나라에 거기서 불법을 닦았는데, 이때 3년간 석불 3053체와 전당향 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을 제작해 655년 백제 사신을 따라 귀국합니다. 하지만, 절터를 구하지 못해 가져온 석불 등을 배 안에 모셨는데 금오(金烏) 한 쌍이 날아와 향천사 터를 알려줘 산 이름을 금오산으로 절 이름을 향천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의각에 이어 절에 주석한 도장 스님은 백제멸망 후 일본에 갔다가 일본왕의 귀의를 받고 ‘동량지원수’의 칭호를 받고는 귀국합니다. 698년 신라 효소왕의 도움으로 동관음전을 비롯해 서로전, 동선당, 서선당, 향적전, 행설루, 사운암 등 400여칸의 전각과 암자를 지어 호서지방의 대표 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중창을 거듭하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4번째로 중창을 주도합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 향천사. 석좌불.
하지만, 안타깝게 12세기 민중 봉기가 고려 전역을 휩쓸 때 가야산에 거점을 둔 손청(孫淸)의 민란군에 의하여 절이 큰 피해를 보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천불전’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됐다가 1596년 멸운당대사 혜희(惠希. ?~1708)가 절을 중창해 100여 칸의 당우를 새롭게 지었다고 합니다. 근대 들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보산스님이 절을 중건하고 1971년 극락전, 1982년 서선당과 단월당을 새롭게 완공하고 1985년 천불전과 나한전을 해체 복원한 데 이어 1987년 종각을 새롭게 지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 향천사 자연석 당간.
가람배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오른편(향좌)으로 나한전과 종무소, 천불전 및 천불선원이 앞마당에 석탑과 동선당, 서선당, 단월당, 범종각, 옛 현충각 등의 전각이 들어서 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 창살.
극락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팔작지붕 양식으로 원래는 지금의 자리보다 왼쪽에 있었지만, 1980년대 해체 복원하면서 새로 지었습니다. 불당에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香泉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본존 바닥에 묵서가 남아있어 신원, 운혜 등 7명의 제작자와 제작연대(1659년)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무로 제작해 도금을 입혔는데 아미타불좌상은 높이 110㎝, 어깨너비 56.2㎝, 무릎 너비와 높이가 각각 78.5㎝와 22㎝입니다. 관음보살좌상은 높이 108㎝, 무릎 높이 68.8㎝, 대세지보살좌상은 높이 105㎝, 무릎 높이 69.5㎝ 크기입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 전경,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 우측 전경,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 좌측 전경,
극락전과 나란히 서있는 나한전은 1980년대 천불전과 함께 중수된 것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크기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의 무게를 부산하는 공포는 기둥위에만 설치한 주심포양식입니다. 법당에는 500나한이 있고 괘불을 보관중입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나한전 전경.
나한전 앞마당에는 1층 기단 위에 9층 석탑이 있습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에 각각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는데 탑신 2층 몸돌은 1층에 비해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4층부터는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어 옛 모양과 아름다움을 많이 잃고 있습니다. 얇고 넓적한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고, 처마의 선이 양쪽 가에서 부드럽게 위로 들려 우아한 곡선을 이루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파손된 부분들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꼭대기 사각 받침돌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이 놓여 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9층 석탑.
원래 2대 주지인 도장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 당시 심하게 파손되면서 탑신이 손실되었습니다. 현재 9층을 이루고 있지만, 원래 절에는 오층석탑 2기가 있었고 현재의 석탑은 그 2기의 석탑이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현재의 탑 모양을 만든 것으로 본래부터 9층 석탑으로 조성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향천사 창건 시기 즈음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탑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9층 석탑 사면 모서리.
천불전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 기단 위에 전면 4칸, 측면 3칸 규모입니다. 맞배지붕에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는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넣은 다포양식입니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 형식입니다. 전면의 문은 모두 여닫이 분합문을 달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데 건축 수법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물로 추정됩니다. 불당에는 3단의 토단에 중앙에 석가모니불 등 1,515기의 불상이 모시져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천불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마주치는 불상의 모습이 미래의 신랑, 신부의 얼굴”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천불전.

▲ 미래 배우자를 점칠수 있다는 향천사 천불전.

▲ 천년고찰 충남 예산 향천사 천불선원.

▲ 천년고찰 충남 예산 향천사 지장전 불단.

▲ 천년고찰 충남 예산 향천사. 산신각.
향천사 범종은 1702년(숙종 28) 제작된 것으로 절이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크게 중수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단순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18세기 초엽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해 불교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몸통 중앙에 명문으로 조성연도가 확인되었으며 제작에 참여한 장인으로 이해준, 혜웅, 혜경, 현해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범종.<수덕사 근역성보관 보관중>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범종각.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범종각의 범종.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화파의 금호당 약효와 그 제자들이 조성한 불화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괘불도를 비롯해 영산재 때 사용되던 오여래도와 사보살도, 팔금강도 등 18점의 도량장엄형 불화가 모두 남아 근세기(20세기) 초반 불교의식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 불화는 당시 호서은행장 김진섭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음영법이 사용되고 기존의 불화와 차별화시킨 문양을 도안화하는 등 시대적 영향이 보이는 등 근대기 불교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높은데, 특히 오여래・사보살・팔금강도는 모든 구성이 완전히 남아있는 흔치 않은 예로 보존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의 괘불도와 사보살・오여래・팔금강도.<좌측부터>
이와 함께 천불전에서 70여m 떨어진 곳에는 멸운당대사 혜희와 의각 승려의 것으로 추정되는 2기의 부도가 있는데, 향천사의 창건과 중건 역사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향좌의 부도는 바닥돌 위로 3단의 기단에 둥그스름한 탑신의 몸돌을 올린 후 지붕돌을 얹은 구조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래받침돌은 여덟면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구슬을 이어놓은 듯한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그 안에 무늬를 두었으며,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러 새겼습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면마다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신들의 모습을 조각하고 위 받침돌에는 아래 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을 새겨 장식했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일반가옥에서 보이던 서까래를 표현하였고, 윗면의 여덟 모서리는 돌출 조각으로 꾸미고는 꼭대기 둥근 돌 위로 지붕 모양을 한 머리 장식 조각을 놓았습니다. 향 중간의 부도는 바닥 돌 위로 8각 기단에 종 모양의 탑신과 지붕돌을 얹은 모습입니다. 기단은 2단으로 이루어져 아래에는 면마다 2개씩의 액자 모양을 움푹하게 새기고,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둘렀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를 본 떠 새기고, 윗면의 여덟 모서리마다 돌출된 조각을 두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머리 장식을 올려놓았습니다.

▲ 천년고찰 충남 예산군 향천사 부도.<국가유산청 제공>
<예산군 향천사>
○ 위 치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사로 117-20 (향천리 57)
○ 연락처 : 041-335-3556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입장료 및 주차장 : 무료 (사찰 인근 주차장)
○ 취 재 : 2026년 9월 18일 등
< 참고문헌 >
최선일. (2019). 예산 향천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연구. 동악미술사학, (25), 129-150.
김선기. (2021). 조선시대 예산禮山 향천사香泉寺의 역사 정립과 존립 양상. 국학연구, 44, 265-299.
김규순. (2019). 지명으로 분석한 예산 향천사의 기원-향천사사적기록을 중심으로. 문화사학, (51), 29-48.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 예산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