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이번 여름이 너무 더웠는데 이제 백로도 지나고 가을이 되어 여행하기에도 좋습니다. 한낮은 아직도 덥지만, 가을빛으로 세상을 색칠해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계절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가 있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충남에도 많은 고택이나 위인들의 생가가 있는데 여행하면서 돌아보면서 고택이나 생가에 살았던 인물들을 생각해보면서 주택의 구조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아도 좋은데 요즘 고택이나 생가 여행도 인기가 있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초가을 빛이 가득한 날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에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에 다녀왔습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생가에 들어가면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은 민속 마을이나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집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주변에 논이 있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 잡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는 충청도 지역의 전통적 농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참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 서 있는 초가집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이곳은 독립운동가인 이상재 선생의 삶과 애국정신을 만날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여행지로 참 좋은 곳입니다. 이곳의 초가집과 전시관에서 이상재 선생의 애국 활동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면 교육적입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찾아간 날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볼 수가 있는데 초가집에 대해서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입니다. 마당 한쪽에 이상재 선생 추모비가 서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배롱나무가 예쁜 꽃을 피우는데 보기도 좋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이상재 선생 생가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앞에서 보면 단아한 우리의 초가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재 가옥의 규모는 안채가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앞에 솟을대문이 있습니다.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되었으며 사랑채는 1926년에 세워졌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이상재 가옥의 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라는 점입니다. 담이 없으니 접근성도 좋고 밖에서 집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에 지어진 초가집의 정겨움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이곳은 우리나라 충청도 전통적 농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기 전에 안채가 허물어졌는데 1981년 안채와 담장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참 정겹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생가에는 투호 놀이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도 있고 디딜방아도 한쪽에 설치되어있어 우리의 옛 도정 문화를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굴뚝과 솟을대문의 모습도 만날 수 있고 장독이 가득한 장독대는 정겹게 다가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흉상
이상재 생가를 돌아본 후에 생가 오른쪽에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 전시관으로 갔습니다. 왼쪽에 이상재 선생이 의자에 앉은 동상을 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게시물을 통해서 이상재 선생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1997년 7월에 개관한 전시관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흉상이 있고 전시관에는 상소문, 서적, 각종 사진, 병풍, 임명장, 벼루 등 유품이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서천 여행하게 된다면 이상재선생생가지와 유물전시관을 돌아보면서 그의 삶과 나라 사랑 정신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월남 이상재는 1850년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67년 과거에 낙방한 후에 서울에서 박정양과 교류하였고 박정양이 1881년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으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가서 일본 문화를 만났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그는 1894년 갑오개혁 후 학무아문참의를 지냈고, 내각총서 및 중추원 1등 의관 등을 지내다가 1896년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고 1902년에는 개혁당 사건으로 3년 동안 복역하였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1923년 보이스카우트 초대 총재가 되었고, 1924년에는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는데 사회활동과 애국 활동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안에는 이상새선생의 일화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는 1927년 3월 29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운구행렬에 참여한 추모객만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그는 일제강점기 때 종교운동과 청년운동에 투신한 인물로 개인적으로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전세방을 전전할 정도였는데 정치인들이 그의 청렴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승만의 정치적 스승 중의 한 사람입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이곳은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입니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그리고 설날과 추석은 휴무일입니다. 서천 여행한다면 이곳을 돌아본 후에 이하복 고택과 기념관을 함께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이상재 선생 생가지
〇 주소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
〇 안내(서천종합관광안내소):041-952-9525
〇 입장료 및 주차료 : 무료
〇 관람 시간 : 10:00-16:00
〇 정기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 사진 찍은 날 : 2026.09.04

▲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