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읍주민자치회 한국무용팀이 부채를 펼쳐 들고 ‘폭포’를 표현하고 있다.
부채가 펼쳐지는 순간 무대 위에는 화려한 총천연색의 꽃이 피어난다. 지난 1일과 2일 홍주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2회 홍주전국국악경연대회’, 전국에서 모여든 121팀 사이에서 홍성지역팀으로는 유일하게 본선 무대를 밟은 여덟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홍성읍주민자치회 한국무용팀이다. 45세부터 80세까지, 한국무용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올해 참가한 두 개의 대회에서 전공자들과 어깨를 견주며 장관상과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갱년기를 극복하고, 오십견을 털어내며, 자존감까지 훌쩍 자랐다는 홍성읍주민자치회 한국무용팀을 만나 흥겹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2017년 무렵, 취미로 연결된 인연들
홍성읍주민자치센터에는 라인댄스와 줌바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무용 수강생은 현재 16명, 최고령 수강생은 아흔 살 여성이다. 이 중 여덟 사람이 부채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이정미(61)·임정아(45)·이현정(55)·박경화(62)·안영애(80)·이영자(67)·안경모(73)·시찬우(65) 씨.
농협한삼인 회장에서부터 광고사를 운영하는 이, 주부, 선소리산타령보존회 회원까지 살아온 자리가 저마다 다르고, 안영애 씨와 안경모 씨는 남매 사이다. 여기에 올해 3월부터 수업을 맡은 (사)내포전통예술보존회 시찬우 이사장이 팀원으로 함께 서면서 여덟 사람의 호흡이 하나로 묶였다.
이현정 씨는 “저희는 거의 다 2017년 무렵, 홍성읍주민자치회에서 한국무용 프로그램이 신생했을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쌓인 세월이 어느새 십 년 가까이 되었고, 이들은 배운 것을 안에만 두지 않았다. 한국무용뿐 아니라 민요와 풍물, 북 난타, 판소리, 아코디언 등 다룰 줄 아는 것이 저마다 다양해 매달 세 차례 이상 요양원과 노치원, 주간보호센터, 복지관을 찾아 예능 봉사를 다니고 있다.
“친구들이 ‘네가 가장 행복하게 산다, 성격도 더 좋아졌다’며 부러워해요. 우리가 꾸준히 하다 보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죠. 취미 생활로 만난 인연이지만 어느 정도 고비를 넘어가면 가족 같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취미도 길게 해야 제대로 된 취미가 되는 거예요.”
이정미 씨가 말하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이현정 씨는 “대부분이 갱년기인데 힘든 시기를 아프지 않고 잘 극복해 나가고 있으니 자녀들도 응원해 준다”고 말했고, 여든의 안영애 씨는 “주변에서 그 나이에 무용 배우러 다닌다며 대단하다고들 한다”며 활짝 웃었다.
■ 다독이고, 위로하고, 때로는 협박하며
정규 수업은 매주 화요일 오전 열 시부터 두 시간가량 이어진다. 여기에 대회를 앞둔 시기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더 모여 합을 맞췄다. 센터에 다른 수업이 잡힌 날에는 예산에 있는 내포전통예술보존회 사무실에서 부채를 펼쳤다.
가장 애를 먹인 것은 파도타기와 꽃 만들기처럼 여덟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대목이었다. 한 사람의 손이 반 박자만 늦어도 파도는 무너지고 꽃은 제대로 피지 못한다. 이현정 씨와 박경화 씨가 “몇몇이 어려워서 맨날 때려치운다는 걸 꼬셔서 계속 이어갔다”고 하자, 이정미 씨가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안 나오려고 하면 서로 응원하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고 협박도 하면서요, 하하하. 그러다 대회에 나가면서 재미와 보람도 느끼고 능률이 오르게 되더라고요.”
호흡을 맞추는 자리가 늘 매끄러웠을 리는 없다. 다만 그 결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현정 씨가 “당장은 살짝 삐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크게 싸우는 일은 없다”고 말하자, 이정미 씨는 “잘하자고 그러는 거니까 서운해하는 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고 말을 이었다.
“한국무용은 꾸준히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세에 변화가 옵니다. 박자가 느리고 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때 근육으로 버텨야 하는 자세가 많기 때문에 속 근육이 저절로 키워지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혹시 뭐 운동 같은 거 하시냐’고 묻기도 해요.”
시찬우 강사가 한국무용의 장점에 대해 말하자, 이정미 씨는 “병원을 다녀도 호전되지 않던 오십견이, 일상적으로 있던 등 결림이 한국무용을 하면서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홍성읍주민자치센터에서, 수강생 전원이 부채춤을 연습하고 있다.
■ 첫 대회서 장관상, 이어 최우수상까지
의상까지 갖춰 입고 정식으로 대회 무대에 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제21회 대한민국 전통예술경연대회’를 시작으로, 8월에는 홍주전국국악경연대회까지. 의상은 자부담이었지만 교통비와 식사비는 홍성읍주민자치회가 뒷받침했다.
대회라는 낯선 무대 앞에서, 이들의 마음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이현정 씨는 “그동안은 우리끼리 배우고 홍성 울타리 안에서만 활동했는데, 갑자기 서울과 홍성으로 대회에 나가게 되니 엄청 부담스러웠다”며 당시의 감정을 전했다. 이어 이정미 씨는 “홍성 대회에서는 예선 1등 먹고 본선에 올라간 거라 더 부담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얻어 낸 결과는 지도자의 예상마저 넘어섰다.
“강사로서 등수 안에는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1등과 0.5점 차로 올라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전국에서 온 심사위원 열다섯 분이 하나같이 잘했다는 심사평을 주셨어요. 전국에서 최초로 저희가 노란 족두리를 하고 나갔거든요. 부채춤 의상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이 사진도 찍어갔으니까요.”
지난 2일 홍주문화회관에서, ‘제22회 홍주전국국악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 명무(名舞)의 고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
여덟 사람의 걸음은 자치센터 바깥으로도 이어졌다. 이들은 비영리단체 ‘여하정 무용단’이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 걸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된 무용팀을 만들어 보자, 홍성의 대표적인 연희단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홍성에서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 흥을 돋우는 역할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이죠. 서울 대회도 팀원들 기 살려 주려고 나간 겁니다. 자신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시찬우 강사의 이러한 뜻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되돌아왔다. 처음이라 겁이 나고 긴장도 컸지만, 결과를 손에 쥐고 나니 남은 것은 뿌듯함이었다. 자신감이 붙고 간이 커졌다는 말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말이 팀원들 사이에서 나란히 흘러나왔다.
홍성이 근대 전통무용의 큰 스승 한성준 선생을 배출한 고장이라는 사실 앞에서, 시찬우 강사는 자부심과 거리감을 함께 꺼내놓았다.
“한성준 선생은 전국적으로, 모든 전통춤의 대부이십니다. 같은 고장 사람이라는 자부심은 있지만 내포(內浦)지역에 있는 예술을 기준으로 한다면 선생님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내포지역은 오랫동안 예술·문화 분야에서 침체돼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강사로서 내포지역의 예술을 찾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지역에서 전통춤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사정도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지역민들이 예술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선뜻 첫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고, 한국무용은 기본이 받쳐줘야 하는 춤이라 보급 자체가 더디다는 것이다.
“신체를 바르게 단련하고 싶다면 한국무용을 해야 합니다. 허리 아프고 무릎 관절 안 좋고 갱년기를 겪고 있다면 더욱 그렇지요. 춤 동작이 과격하지 않아 연령이 높다 하더라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이들의 다음 무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오는 10월에는 ‘천안흥타령축제’에, 11월 15일에는 홍성읍주민자치회 발표회가 기다린다. 또, 내년에는 연화무(蓮花舞)를 익힐 예정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시찬우 강사가 말했다.
“홍성군이 전통예술 하는 이들에게 힘을 좀 실어주길 바랍니다. 전공자냐 비전공자냐를 따지지 말고, 전통예술 그 자체를 우리 한국의 뿌리로 여겨 조상 섬기듯 섬겨줬으면 합니다. 예술 문화가 발달한 도시가 살아남습니다. 사람들이 삶에 찌들어 있을 때 휴식은 결국 문화 쪽으로 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