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낯선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평소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안의 그림과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듯, 여행지에서도 그 공간만이 가진 고유한 풍경과 사람들의 온기를 읽어보곤 하거든요.
어려운 예술 용어나 복잡한 건축 지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와닿는 장면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훌륭한 휴식이 됩니다.

▲ 김종범 사진문화관
이번에 다녀온 충남 논산 여행은 제 눈과 마음에 아주 특별한 시각적 즐거움을 가득 채워준 여정이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때로는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던 두 곳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편안하게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행의 첫 목적지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에 자리한 '김종범 사진문화관'이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널찍한 주차장과 함께 멋진 전시장이 나타납니다.

▲ 김종범 사진문화관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전시장 앞뜰이었습니다. 김종범 작가님과 이갑재 작가님이 정성껏 가꾸신 이 마당은 정말 여러 종류의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고 알차게 꾸며져 있었어요.

▲ 김종범 사진문화관
전시장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진 작품들이 펼쳐집니다. 입구에 놓인 지난 전시의 리플릿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공간 속의 공간'이라는 작은 구역에서는 지나간 시간의 전시 작품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 김종범 사진문화관
1층 구경을 마치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더모어 커피'라는 카페이자 또 다른 전시 공간인 '이갑재 사진 숲'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1층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이갑재 사진작가님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 김종범 사진문화관 2층 카페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으로 사진관 관람료를 대신한다는 점이에요. 날씨가 무지 더웠던 터라 같이 간 지인은 시원한 '딸기라떼'를 시켰고, 저는 이곳의 인기 메뉴라는 '밤라떼'를 시켰습니다.
시원한 실내에서 음료를 마시며 책도 읽고, 큰 창밖으로 양촌면 산직리의 푸른 산을 내다보며 '산멍'을 하다 보니 마치 깊은 명상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 김종범 사진문화관 대나무숲 가는 길
사진관 뒤편에는 아주 특별한 비밀 공간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김종범 작가님이 직접 나무로 만드셨다는 예쁜 '작은 예배당'이에요. 날씨가 너무 뜨거웠지만 이왕 온 김에 숲으로 들어갔는데,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에 다소곳이 자리한 예배당의 모습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숲으로 들어가는 문부터 예배당 건물까지 모든 것이 작품이었어요.

▲ 김종범 사진문화관 대나무숲 작은 예배당
다만 한 가지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면, 치마를 입고 갔다가 산모기들에게 다리를 여러 방 물려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모기약과 긴 바지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다리가 간지러운 것을 꾹 참을 수 있을 만큼,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와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조금 더 선선해지는 날에 꼭 다시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에요.

▲ 논산 반야사
사진문화관에서 따뜻한 사람의 시선을 느꼈다면, 다음 목적지에서는 대자연과 인간의 묘한 어우러짐을 만날 차례입니다. 논산 주변을 여행하신다면 한 번쯤 짧게 들러보기 좋은 아주 독특한 이색 사찰, 바로 '논산 반야사'입니다.
가는 길은 초보 운전자에게는 조금 험난할 수 있습니다. 좁고 복잡한 진입로를 따라 조심조심 들어가야 하니 미리 길을 잘 알아보고 가시는 것을 권해드려요. 하지만 그 수고로움을 뚫고 도착하면,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석회암 절벽과 대웅전이 어우러진 웅장한 풍경이 방문객을 압도합니다.
반야사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아주 유명한 바위 협곡 포토존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멀리서만 봐도 절벽의 어마어마한 높이가 체감될 정도예요. 절벽 사이로 보이는 사찰의 뷰가 워낙 신비로워서 가까이 다가가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낙석 사고의 위험이 커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조금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지요.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무리한 욕심을 내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웅장함을 안전하게 두 눈에 가득 담아오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여행법일 것입니다.

▲ 반야사 동굴법당
이제 반야사의 진짜 매력을 만날 시간입니다. 대웅전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지하로 깊숙하게 내려가는 좁은 계단 입구가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옛날 석회광산으로 사용되던 폐광의 갱도를 개조해 만든 동굴법당, '용궁회상'입니다.
오래된 국보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사찰은 아니지만, 버려진 폐광이 기도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으로 변신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계단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꽤나 무덥고 습한 여름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안은 제법 시원한 공기가 맴돌았습니다.

▲ 반야사 동굴법당
어두컴컴하고 거친 동굴 벽면을 따라 다채로운 색깔의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빛들이 바위의 질감과 어우러져 굉장히 신비롭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일반적인 나무로 지어진 사찰 건물이 아니라, 차가운 암석 동굴 안에 불상과 법당이 자리하고 있으니 마치 다른 세상에 뚝 떨어져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법당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지하수가 흐르는 듯한 작은 길도 이어집니다. 깊숙하게 파여 있는 갱도에 비해 실제로 안전하게 개방된 관람 구간은 생각보다 짧은 편입니다. 천천히 쓱 둘러보고 나오기에 좋은 아담한 코스라,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큰 부담은 없습니다. 다만, 내려가는 계단이 좁고 바닥이 가파른 자갈길로 되어 있으니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어린아이, 어르신들과 동행한다면 미끄러지지 않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편안한 운동화는 필수입니다!
김종범 사진문화관, 신비로운 반야사 동굴법당까지.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두 공간이었지만, 두 곳 모두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얻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김종범 사진문화관
○ 위치 :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372
○ 관람시간 : 10시~19시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요금 : 더모어카페 음료 한 잔
○ 주차: 무료
* 취재(방문)일 : 2026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