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양군 정산면 행정복지센타 앞에서 정산면의 안내도를 보며 주요 문화재를 따라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청양군 정산면은 명칭 개편에 변화가 많았던 곳이다. 행정복지센타 앞에는 정산면의 조선시대부터 명칭의 변천사를 자세하게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초부터 정산현이었으며 현종(1664년) 때 청양현으로 혁파하여 10년간 정산에 병합 정양현이라 부르다 다시 정산현이라 하였다.
조선말 고종 종 1895년 지방관제 재정에 의하여 정산군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 1914년 청양군에 병합할 때까지 정산고군이라 부르다가 2014년 현재 청양군 정산면으로 부르고 있다. 청양군과 별도로 정산면에는 숨은 자원과 문화재가 많은 곳이라 언젠가는 마음 먹고 탐사를 하고 싶은 곳이었다.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해 무작적 발길을 돌려 닿은 곳이 정산면이었다.

▲ 정산면 행정복지센터에는 백련지가 있고 정자와 조선 숙종 대왕 시절에 건축한 자오교라는 석교도 있다
정산면은 행정복지센타부터 볼거리와 역사성이 풍부한 곳이다.
숙종 임금시절 건축한 석교인 자오교를 복원해 놓았고 백련지와 백련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라는 만향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눈길을 끈다.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라는 선입견보다 역사성으로 이름이 난 곳이다.

▲ 우물 마루 모양으로 돌을 깍아 짜맞춘 자오교를 백련지에 살짝 걸쳐놓았니다.

▲ 백련지와 자오교와 정자가 운치가 있다. 정산현이 있던 곳에 지금은 행정복지센타가 자리잡고 있다.
자오교는 일명 녹야교라고도 불리며 숙종30년 1704년 건축되었고 근처 서정천에 있던 것을 1966년 5월에 콘크리트 재질로 새로 가설하며 원형을 복원하지는 못했다.
정산초등학교 교정에 방치한 자오교의 일부를 사용하고 부족 분은 유사하게 복원하여 옛 모습 대로 자오 방향으로 축조하였으나 기록이 없어서 원형 그대로 복원하지는 못했다는 유래를 적어 놓아서 방문객들의 이해가 쉬웠다.

▲ 서정리 구층탑을 찾아갔다.

▲ 백곡사 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평지 한 가운데 9층석탑이라니...
멀리 보이는 정산면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과 대비가 되는 서정리 9층석탑의 모습이 낯선 듯 정겹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 옆에 서 있었는데 유심히 보지 않아서인지 보이지 않았던 탑이다.
청석을 짜맞춘 기법과 백제계 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주변국의 영향을 받은 것 처럼 보인다.

▲ 정산 향교 홍살문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 기관이다.
공자와 유림들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국가로붙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 받아 교관 1명이 30명을 가르쳤다.

▲ 정산향교 청아루

▲ 정산향교의 6백년 수령의 은행나무 사진 스팟
공자를 숭상하는 향교는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수령이 무려 600 여년이 넘었다는 은행나가 향교를 전망하는 위치에 있다.
인플루언서들은 이 은행나무의 뷰를 알까?

▲ 정산에는 천주교 성지도 있다.
정산 성지는 복자 이도기 바오로가 1798년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장소이다.
이도기는 청양과 정산에 복음을 전하는데 큰 역햘을 했으며 그를 통해 입교한 신자들 중 이름이 밝혀진 이는 몇명되지 않는다.

▲ 정산현 관아터에 위치한 옥터에서 순교한 이를 기리는 천주교 성지
천주교 박해 당시 이도기는 아내의 피신 권고를 마다하고 1797년 6월8일에 체포되어 이곳에서 옥살이를 했다.
정산 현감은 이도기를 체포한지 1년이 지나서 무수한 매질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을 내려 죽게하였다.
이도기의 참혹한 죽음이 일어났던 곳이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주변 환경은 변했으나 그의 신앙은 그곳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 마지막으로 들른 정산 시장. 장날이 아니라 고요만 감돌았다.
청양군 정산면 여행
○ 입장료 : 없음
○ 주차 : 넉넉함
* 취재일: 2026년6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