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목원을 산책하다가 주변에서 풍기는 매혹적인 향기가 나를 미스김라일락 앞으로 이끌었다. 이 식물의 아름다운 꽃과 좋은 향기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오늘은 이 식물이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계기를 소개해 보려 한다.
1947년 미국의 식물채집가 엘윈 M. 미더가 북한산 800미터 높이의 백운대의 갈라진 바위틈에서 야생 털개회나무 종자 12립을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간 뒤 발아한 7개체중 키가 작게자란 2개체를 지속적으로 육종하여 품종화한 식물이다.
엘윈 M. 미더는 품종화에 성공한 뒤 한국에서 자신의 사무보조원(타이피스트)이었던 여성의 성을 따 ‘미스김라일락’으로 이름을 지었다. 현재 미스김라일락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품종이 되었으며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다시 역수입되는 식물이 되었다. 말하자면 미스김라일락은 재미교포 2세쯤 되는 입양 식물이 한국으로 돌아온 셈이다.
미스김라일락은 최대 생육 크기가 2~3m로 일반 수수꽃다리나 털개회나무보다는 작게 자라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자라는 왜성식물은 울타리수종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독립수로 적합해 큰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내륙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으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월동이 가능하면서 향기까지 진해 ‘라일락의 여왕’으로 불린다.
미스김라일락이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은 참 반갑지만, 해외로 반출되어 개량 육종된 우리 식물은 호랑가시나무, 구상나무, 산딸나무, 원추리 등 100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 품종들이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우리나라로 역수입되고 있다.
우리나라 식물이 외국인에 의해 품종화되어 다시 우리나라로 역수출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각 나라의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이 강조되는 요즘 우리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하나의 중요한 사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스김라일락의 모본인 털개회나무는 여전히 북한산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족했던 과거는 잊고 우리 주변에 약간의 관심을 기울인다면 미국인 엘윈 M. 미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주권을 가진 미스김라일락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천리포수목원 강희혁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