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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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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송철선생 서거 40주기 추도식 열려

1970년 건국훈장 동백장, 1994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독립운동가

  • 위치
    충남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 291-3
  • 등록일자
    2026.03.01(일) 22:47:05
  • 담당자
    주향 (tolremio@daum.net)
  • 송철선생 영정 모습

    ▲ 송철선생 영정 모습


    애국지사 송철 선생 추도식이 2026년 2월 26일(금) 오전 9시에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산 선유원 광장에서 50여 명의 내빈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국악인 양가람 공연모습

    ▲ 국악인 양가람 공연모습


    먼저 인동초전국국악대전에서 학생부 종합 대상을 받은 국악인 양가람의 식전공연이 있었다. ‘상사화’와 ‘내나라 대한을’불렀다.

     

    사회를 보는 전병만 금산문화원 사무국장

    ▲ 사회를 보는 전병만 금산문화원 사무국장


    이어서 전병만 금산문화원 사무국장의 사회로 내빈 소개와 국민의례가 있었다. 박범인 금산군수, 김기윤 금산군의회 의장, 강정헌 금산문화원장, 송철선생 손녀 딸 송기숙 교수, 송영천 군의원, 김호택 금산포럼 이사장, 박상헌 금산군사회단체협의회 회장, 문정우 전 금산군수, 이연기 무공수훈자회 금산군 지회장. 배재용 금산문인협회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KBS에 방영된 독립운동가 송철 - 유튜브 영상에서 촬영함

    ▲ KBS에 방영된 독립운동가 송철 -  영상에서 촬영함


    전병만 사무국장으로부터 송철 선생 약력보고가 있었다. 충남 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철(1896~1986) 선생은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 한인 사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동지회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위원 등을 역임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선생은 동향인 김용중 선생과 함께 야채와 과일 도매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이렇게 번 돈은 독립운동 자금이었다.

     

    KBS 방영 영상에서 촬영

    ▲ KBS 방영 영상에서 촬영


    재미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동지회 북미총회 회관을 마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준과 캘리포니아 주정부 인가를 받아 미주 한인들을 모아 '경위군'이라는 독립군을 조직할 때도 재정을 맡았다. 미주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반 마련에 기여한 인물로 1970년 건국훈장 동백장, 199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송철 선생의 손녀 송기숙 교수 인사말 모습

    ▲ 송철 선생의 손녀 송기숙 교수 인사말 모습


    송철선생의 손녀 딸 송기숙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할아버지는 나라가 없이는 아무 데도 설곳이 없다. 나라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할아버지는 가족 없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돌아가신 동지들의 묘지를 미국에 마련해 두셨고, 사후에도 동지들과 함께 하기를 원해 유해는 미국에 안장됐다. 고향 금산에 송철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추모비를 세워주시고 추도식을 해주신 금산군수님과 의장님 문화원장님께 감사를 드린다”라고 하였다.


    박범인금산군수 추도사 모습

    ▲ 박범인금산군수 추도사 모습


    박범인 금산군수는 추도사를 통해 “송철 선생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신 공로로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동백장을 수훈 , 사후에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하신 훌륭한 분이시다. 흉부외과 의사가 된 아들, 송전무 박사를 해군에 보내 전후 남한의 재건을 돕기도 했다. 이러한 훌륭한 분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데 그분의 삶이 잘 알려지도록 애쓰겠다.”고 하였다

     

    김기윤 금산군의회 의장 추도사 모습

    ▲ 김기윤 금산군의회 의장 추도사 모습


    김기윤 금산군의회 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송철선생은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평생을 재미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으로, 미국 내 한인사회를 통합하고 독립 자금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서거 40주년 추도식을 맞아 의미 있고 뜻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강정헌 금산문화원장님께 감사를 드린다.”라고 하였다.

     

    강정헌 금산문화원장 추도사 모습

    ▲ 강정헌 금산문화원장 추도사 모습


    강정헌 금산문화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선생은 미국한인사회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기반을 닦는데 기여하셨고 해외에서 항일 운동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군자금 관리에 힘쓰고 독립자금을 출현하신 분이시다.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이 금산군민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하였다.

     

     김호택 금산포럼 이사장 추도사 모습

    ▲ 김호택 금산포럼 이사장 추도사 모습


    김호택 금산포럼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하여 “저의 아버지가 송철 선생의 아들 송전무와 친하게 지내서 어려서 부터 송청 선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어서 금산을 방문했을 때 여기 송철이 아들이 있다면서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며 해방 후에 대사관도 제대로 없었을 때에 미국 송철 선생의 집이 대사관 역할을 하며 국위를 선양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작년 KBS에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로 송철과 김용중선생을 방영했는데 다큐로 제작하도록 요청해 보겠다.”고 하였다.

     

    헌화하는 박범인 금산군수

    ▲ 헌화하는 박범인 금산군수


    이어서 송철 선생을 위한 헌화와 분향이 이루어졌다. 송철 선생은 1943년 4월에는 대한인동지회 북미총회 회관을 마련하고 기관지인 속쇄판 <북미시보(北美時報)>를 발행했다. 1944∼1945년에는 3회에 걸쳐 독립금 3백 원을 출연하였으며, 1945년 7월에 열린 제1회 동지회 미국대표대회에 몬타나지방 대표로 참석하였다. 대한인국민회를 대표하는 김호와 함께 현재 한인회관의 전신인 한인센터를 설립하였고, 1972년 무궁화한국학교를 설립하여 2세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데에도 힘썼다.

     

    독립운동가 송철 모습

    ▲ 독립운동가 송철 모습

     

    신흥학교 재직 당시 총독부에서 일본인 시학관이 학교로 순시를 와 질의를 하자 한국어로만 답했다. 이에 일본인 시학관이 왜 국어(일본어)를 쓰지 않냐고 힐난하자 난 국어를 쓰고 있소라고 응수했고 일본인 시학관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송철 선생이 철저한 애국자였음을 볼 수 있는 일화다. 금산에 오면 금산선유원 광장에 있는 애국지사 추모비를 꼭 방문해보길 추천 드린다

     


    애국지사 송철선생 서거 40주기 추도식

    충남 금산읍 방아동 4길 17

     

    ○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동지회 총회장 역임

    ○ 미국한인사회 통합과 독립자금을 모우는데 큰 역할

     * 취재 : 2026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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