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남무형유산 내포제시조 이수자 안종미
지난해 12월 27일 서산시 문화회관 소공연장. 무대 위에는 단출한 조명과 악기, 그리고 한 사람의 소리꾼이 있었다. 충남무형유산 내포제시조 이수자 안종미.
그녀는 이날 ‘완창’이라는 이름으로 내포제시조의 처음과 끝을 온몸으로 풀어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고, 한 소절 한 소절을 삶처럼 이어갔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손을 꼭 쥐었다.
한 달 뒤, 서산의 작은 카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이제야 제 인생을 돌아볼 여유가 좀 생긴 것 같아요”라며 조용히 웃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프로는 감정을 넘는 것
사람들은 안종미를 ‘행사 사회도 잘 보는 소리꾼’으로 기억한다. 말이 유려하고, 진행이 편안하다. 지역 축제나 경로잔치에서도 그녀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크지 않다.
“어떤 할머니가 행사장마다 오셔서 제 손에 천 원을 꼭 쥐어주세요. 제가 큰절하면서 받거든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요.”
경로잔치 행사에서 있었던 일도 떠올렸다. 분장실에서는 고성이 오갔지만, 무대에 오르자 모두가 아무 일 없던 듯 노래를 이어갔다. “그때 느꼈어요. 프로는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을 넘는 거더라고요.” 무대는 늘 그녀에게 태도를 먼저 묻는 자리였다.

▲ 2025년 내포제시조 발표공연(해미읍성)
“차 안이 제 연습실이었어요”
연습 환경은 늘 부족했다. 집에서는 눈치가 보였고, 무엇보다 식구들은 그녀가 장구 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차로 향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조수석을 눕혀 연습했다. 음악을 틀고 혼자 따라 불렀다. 한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죠. 근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율동 연습은 들판 팔각정에서 했다. 누군가에겐 우스운 풍경이었겠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이 됐다.
대학원 시절에는 볼펜을 물고 노래하는 훈련도 받았다. 사람들 앞에서 침 흘리면서 노래했는데 너무 창피했다. 그 훈련은 소리를 바꿨다. 싫었지만, 지금은 감사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유년 시절도 녹록지 않았다. 새벽마다 술을 사러 가야 했고, 굶는 날도 많았다. 아버지는 알코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릴 땐 그냥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는 그녀 안종미.
엄마가 부르던 민요는 그녀의 기억에 남았다. 상처는 노래로 이어졌다. 그녀는 30회 넘게 대회에 나갔다. 떨어지고, 울고, 다시 도전했다. 그래서인지 심사위원 앞에 서면 지금도 떨린다. 성과는 있었지만, 과정은 늘 불안했다. 잘하고 있는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
지금 그녀는 제자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게 제일 힘들다. 학생은 적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마음 상할 때도 많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 요양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20년 넘게 요양원 봉사공연도 다녔다. 제자들과 함께 이동했고, 비용은 대부분 자비였다. 밥도 사주고, 차비도 내고. 최근에는 요양원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그땐 좀 뿌듯했다. 하지만 보람만으로 버틸 수는 없었다.

▲ 충남무형유산 내포제시조 이수자 안종미 완창발표회 모습
시조를 지킨다는 것의 무게
“솔직히… 희망이 잘 안 보여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낮아졌다. 시조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권하기도 미안해요.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시조는 단기간에 익히기 어렵다. 최소 4~5년은 매달려야 무대에 설 수 있다. 현실은 그 정도 버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간과 비용, 인내심이 함께 요구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많지 않다.
“잘해도 보여줄 데가 없어요.” 설 무대가 없는 현실은 가장 큰 좌절이 된다.
그녀는 개인의 열정만으로 전통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명감 갖고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자긍심은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 해요.”
요즘 아이들 가운데는 아리랑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시조가 대중화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안 불러도 누군가는 이어가야하니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대통령상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고요. 아이들 더 잘 키우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카페를 나서며 그녀는 말했다. “아직 멀었어요.” 차 안에서 시작된 연습은 이제 전통을 지키는 책임이 됐다. 사다리는 그렇게 오른다. 천천히,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취재일: 2026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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