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마을’ 박병철 대표
10일, 서산시 인지면 차동길 275에 있는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마을’ 박병철 대표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벽면에는 온실 하우스 설계 도면과 시공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마을 벽화 작업 자료와 스케치들이 쌓여 있었다. 화가 ‘박현’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농촌의 풍경을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닌, 자연과 조형, 기억과 공동체의 감정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 그 풍경을 만들겠다는 집요한 믿음이 그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 경기도 이천 벽화 작업
예명 박현으로 살게 된 이유
박병철 대표는 귀촌과 함께 화가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며 ‘박현’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종교미술을 전공한 그는 서울에서 40대 초반까지 광고기획사와 대기업에서 산업디자인과 영업 업무를 병행했다.
“42세에 결심했어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그림만 그리고 살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자고요.”
2003년 충남 태안에 내려가 펜션을 만들며 귀촌했지만, 2007년 허베이 스피릿 원유 유출 사고는 그의 삶의 방향을 다시 바꿔놓았다. 펜션 사업을 접은 뒤, 그는 자신의 특기이자 취미였던 ‘그림’을 다시 꺼냈다. 그 선택은 전국 농어촌 마을의 환경을 바꾸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농림부 경관개선 자문위원 활동과 재능기부를 통해 마을 벽화와 디자인 자문 등 농촌 경관 개선에 힘을 보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현장을 움직이려면 법인이 필요했다”는 그는 같은 해 1월 ‘아름다운마을’을 설립했다.

▲ 스마일 재능뱅크 경관개선 재능기부
아름다운마을, 이름에 담긴 믿음
‘아름다운마을’이라는 법인명에는 박 대표의 개인적 기억이 담겨 있다. 그의 고향은 월악산 국립공원이 있는 월악리. 어린 시절, 봄비가 내린 뒤 바위 언덕에 피어 있던 진달래의 선분홍색 풍경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기억을 안고 귀촌했는데, 현실의 농촌은 너무 달랐어요. 여기저기 방치된 쓰레기, 땅속에 묻힌 쓰레기들…. 조형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축물과 시설물도 참 안타까웠죠.”
그는 ‘자연 풍광 본래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농어촌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믿음으로 회사 이름을 ‘아름다운마을’이라 정했다.

▲ 해외 가드닝하우스 사례
예술가와 경영자 사이에서
서양화가이자 기업 대표. 두 정체성의 공존은 쉽지 않았다. 예산 문제, 행정 절차, 주민 공감대 부족은 늘 작가로서의 고민을 동반했다.
“초기에는 단기간에 결과물을 요구받는 구조 속에서 작가로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컸어요. 예술적 가치와 대중성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고요.”
그는 해수부 어촌뉴딜사업,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서 자문위원 또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민 참여와 지역 스토리텔링이 경관 개선 사업에 더 많이 담겨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왔다.
“예전보다는 행정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체감이다.

▲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비닐하우스가 가장 거슬렸습니다
박 대표가 가드닝 온실 하우스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명확했다. 농어촌 경관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이다.
“대단위 경작은 그나마 낫지만, 개인 주택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는 찢어진 채 방치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시골 풍경을 망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봤죠.”
그는 중앙정부에 여러 차례 개선 방안을 건의했고, 대안을 찾기 위해 유럽 농촌 현장을 접했다. 그곳에서는 온실이 ‘농사 시설’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연 풍광과 어우러지는 색채와 시설 속에서 온실은 휴식 공간이자 손님을 맞는 공간이기도 했다.
“누구라도 쉽게 조립 가능하면서도 조형적인 완성도를 높인 가드닝 전용 온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약 3년의 준비 끝에 아름다운마을 제품은 2023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채택되며 본격적인 시장 진출의 계기를 맞았다.

▲ 기본형 온실 내부
가격보다 가치가 중요
아름다운마을의 가드닝 하우스는 100% 국내 설계·국내 생산을 고집한다. 그만큼 가격은 수입산 제품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아직 국내 가드닝 하우스 시장은 초기 단계라 디자인이나 질보다 가격 요인이 먼저 선택되는 경우가 많아요. 싸게 공급하려다 보니 해외 주문생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도 보이고요.”
현장에서 만나는 고객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싸다는 건 내구성이나 디자인 등에서 그만큼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싸게만 사려는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격보다 효용가치와 디자인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하죠.”
충주 농업기술센터 온실, 새로운 가능성
최근 충주농업기술센터에 시공을 마친 온실은 박 대표에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번 온실은 기존 보급형 모듈(폭 3m×길이 6m)이 아니라 4m×12m 크기였다. 발주처는 이 공간을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유리형 온실보다 가격이 약 30% 저렴했고, 시공 기간도 절반 정도였어요. 발주처도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재질은 폴리카보네이트. 그는 “기능이 유리온실보다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안전성 면에서도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폴리카보네이트 온실이 공공기관에도 더 널리 알려지고 채택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가드닝하우스 계발 과정 스케치 본
황금비율, 그리고 공간 디자인
서양화가로서의 미적 감각은 설계 곳곳에 스며 있다. 그는 지붕의 각도와 공간 비율, 기둥 두께 같은 요소를 설계 단계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가장 편하게 인식한다는 황금비율을 기준으로 지붕 각도나 공간 비율을 고려했고, 공간 안에서 보이는 기둥의 두께도 디자인 요소로 봤어요.”
그 고민이 반영된 결과인지 전시장에서 타사 제품과 함께 있을 때 “아름다운마을 제품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풍과 적설에 대비한 구조 강도 역시 ‘기능’이면서 ‘디자인’이었다.

▲ 어부의정원 예시안
가드닝 하우스는 치유의 공간
박 대표는 가드닝 하우스를 단순한 시설이 아닌 ‘치유와 소통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는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드의 일화를 언급하며 원예의 가치를 설명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기성세대에게 이젠 휴식이 필요합니다. 원예가 취미를 넘어 치유의 분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가드닝 하우스는 개인의 사색과 휴식의 공간이며, 가까운 친구나 친지가 방문했을 때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는 “조경·정원 산업은 앞으로 더 확대되고, 더 보편적인 삶의 영역이 될 것”이라며 그 흐름 속에서 아름다운마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마을의 미래는 화려한 수치보다 ‘기억’에 가깝다.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를 널리 알린 회사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성과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낙후된 지역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는 앞으로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정원 조성 사업에도 참여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부의 정원’, ‘아버지의 정원’, ‘촌부의 정원’처럼 지역 정서가 담긴 정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계속 가게 하는 힘
제품 개발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특히 금속의 성질과 금형 설계에서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천만 원을 들여 금형을 만들고 생산했는데, 막상 작업해 보니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결국 기존 제품을 전량 폐기하고 새 금형으로 다시 설계했을 때… 정말 눈물을 머금었죠.”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그리고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선호해 줄 때의 보람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 개목항 미니등대조형물 제작 모습
인터뷰 말미, 박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기업을 유지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공공기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려 애쓰는 사회적 기업들을 ‘혜택’이 아니라 ‘공감’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0일 사무실에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였다.
“사회도 아름답게, 세상도 아름답게.”
그가 만드는 온실은 단지 식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작은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취재일: 2025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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