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끝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12월 하순, 탁 트인 바다가 그리워진 평일 오후, 저는 망설임 없이 충남 당진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한적한 도로 위를 달리는 드라이브는 그 자체로 이미 치유의 시작이었죠. 목적지는 서해임에도 불구하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마법 같은 곳, 바로 당진 왜목마을입니다.

은빛 왜가리와의 조우, '새빛왜목' 아래서
왜목마을에 도착하니 평일 오후의 여유로움이 주차장 가득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청량한 공기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해변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조형물, ‘새빛왜목’이었습니다. 새빛왜목은 새로운 빛과 왜목마을의 합성어입니다. 왜목마을의 상징인 왜가리의 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방금 솟구쳐 올라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듯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왜목마을이 지닌 희망과 활기찬 미래를 상징합니다.
새빛왜목은 스테인레스 스틸판으로 제작된 높이 30m, 가로 9.5m, 너비 6.6m의 국내 해상 최대 조형물입니다. (포항 상생의 손보다 약 3.5배 가량 높습니다.)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되는데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색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조형물 상단에는 나선형 LED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는 은은하고 화려한 야경을 선사합니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해변에 설치된 조형물의 ‘날개’ 부분입니다. 그 앞에는 자그마한 돌의자가 하나 놓여 있는데, 여기에 앉아 각도를 잘 맞추면 바다 위 왜가리의 머리와 내 등 뒤의 날개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마치 제가 거대한 은빛 왜가리를 타고 바다 위를 비상하는 듯한 특별한 사진이 완성되더군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을 사진기에 담으며, 새해의 희망을 품고 날아오르는 새의 기운을 듬뿍 받아왔습니다.
일출 시간, 조형물 머리와 날개 사이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여름의 잔상과 겨울의 고요가 공존하는 항구
찬찬히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해변을 걷다 보니 어느덧 왜목항에 다다랐습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해변 한편에는 여름철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었을 커다란 나무 한 그루와 그 주위를 둥글게 감싼 벤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잎을 떨군 채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지만, 지난여름 이곳에서 더위를 피했을 수많은 여행객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해수욕장의 안전을 책임졌을 감시탑 또한 이제는 고요히 바다를 지키고 있더군요. 이런 적막함이야말로 겨울 바다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낭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 뜨고 지는 마을, 바다 위 꿈을 만나다
다시 길을 돌아 반대편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해 뜨고 지는 왜목마을’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었습니다. 왜목마을은 지형이 마치 왜가리의 목처럼 가늘고 길게 바다로 튀어나와 있어, 서해안임에도 불구하고 동해처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장소입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그 독특한 입지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항구 근처에는 ‘요트 세계일주 홍보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어 발길을 멈췄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김승진 선장의 항해 기록을 담은 곳입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홀로 바다를 누볐던 그 용기 있는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제 안의 작은 도전 정신도 꿈틀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착장 옆으로 물이 빠진 해변이 길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만조가 아닐 때만 허락되는 길입니다. 선착장에서 뒤돌아 왜목마을 해수욕장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습니다. 해수욕장 뒤편 봉우리에는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텐트 위로 떨어지는 별빛과 아침 햇살을 상상하니 다음에는 꼭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마무리하며: 다가올 새해를 기약하는 여행
현재 왜목마을 곳곳에는 유리로 된 아름다운 조형물이 마무리 공사 중에 있었습니다. 투명한 유리 사이로 비칠 일출의 빛이 벌써 기대가 됩니다. 다가오는 새해 첫날, 이 오토캠핑장과 해변은 다시 희망을 품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겠지요.

12월의 왜목마을은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한 해의 묵은 감정들을 파도에 씻어 보내고, 은빛 왜가리의 날개를 빌려 새로운 희망을 채워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여러분도 복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면, 언제든 당진 왜목마을로 훌쩍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 이번 겨울, 왜목마을 오토캠핑장에서의 일출 캠핑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떠신가요?
당진 왜목마을 해수욕장
○ 장소: 충남 당진시 석문면 왜목길 26
○ 입장료 : 무료
○ 주차비 : 무료
* 취재(방문)일 : 20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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