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시작에 찾은 현충사는 단풍은 막바지였지만 단풍 피크 시기가 지나서여서인지 비교적 한적하니 깊은 정취가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오히려 조금 남아 있는 단풍잎들이 반가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던 하루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는 사당인 현충사는 장군이 성장하고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1706년(숙종 32년)에 처음 세워져 1707년에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답니다.
이곳은 장군의 영정을 모신 본전을 중심으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과 장군이 살던 고택, 무예를 연마하던 활터, 그리고 정려 등 다양한 시설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장군의 삶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 충무공이순신 기념관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푸른 잔디 둔덕 같은 독특한 외관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는 임진왜란 시기 전국 각지의 바다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판옥선 모형, 난중일기의 여러 기록들이 차분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 전시관 내부
특히 난중일기 필사본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구절마다 묻어나는 충무공의 고뇌와 책임감, 그리고 때로는 인간적인 슬픔까지 묵직하게 전해져 마음을 울렸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과 조선 수군의 활약상을 다양한 유물과 미디어아트로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마치 제가 그 시대의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습니다.
역사는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주는 곳이니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충무문

기념관을 나와 현충사 본전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늦가을의 서정이 가득했습니다.
아직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붉은 단풍잎들은 마치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길을 덮은 낙엽들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데 붉고 노란 잎들이 뒤섞여 마치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수놓아진 듯한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를 벗 삼아 걷는 이 단풍 산책길은 지는 해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 연못
특히 연못가로 다가서니 수양버들 가지가 잔잔한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주변으로 옅은 노란빛과 붉은빛의 단풍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처럼 평화로운 정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물에 비친 풍경이 잔잔하게 흔들릴 때마다 마음마저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답니다.

▲ 정려
연못 바로 옆에는 정려(旌閭)가 있습니다.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에게 임금이 현판을 내려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 등에 세워주던 문을 말하는데요.
현충사의 정려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신 정신과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의 효심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장군의 집안이 대대로 나라에 큰 공헌을 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 고택 마당
조금 더 올라가면 충무공 고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담장과 마당 그리고 한옥의 단정한 구조가 충무공의 절제된 삶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초가가 아님에도 매사에 절도를 지키던 그분의 성정이 집의 구성에서 느껴졌고 오래된 마루와 방들은 말없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택 앞에 서니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작은 소리를 내는데 그것마저도 고즈넉한 가을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 은행나무
고택에서 활터 방향으로 걸어가면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잎은 거의 떨어져 앙상해졌지만 그 위엄만은 온전히 남아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입니다.
가지는 비록 텅 비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빈 가지가 늦가을의 하늘을 배경으로 굳세게 펼쳐져 있어 묵직한 존재감을 더합니다.
오랜 세월 현충사를 지켜온 나무답게 사계절의 풍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개가 엿보였습니다.

▲ 모과나무
산책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모과나무, 감나무, 뽕나무 등 색색의 열매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열매가 남아 쓸쓸한 계절에 소소한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는 것 같네요.
떨어진 모과들을 주워가는 방문객들도 보이는데 따지 않고 주워가는 건 괜챦겠죠?

▲ 현충사 본전 입구

마지막으로 높게 솟은 계단을 따라 올라 드디어 현충사 본전 앞에 섰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경건함과 함께 장군의 업적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에 차올랐습니다.
본전 앞마당에 서서 내려다보니 현충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고요한 풍경이 좋아 그 곳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무겁지 않지만 깊은 울림이 있고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기억될 가을의 한 장면이 제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현충사
○ 위치: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 관람시간 : 동절기 (11월~2월) 9시~17시 (입장마감 16시)
* 촬영일: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