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중순,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지만,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늦가을의 절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봄에는 벚꽃, 특히 국내 유일의 청벚꽃으로 유명하고, 여름엔 붉은 배롱나무 꽃이, 그리고 가을엔 오색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바로 충남 서산의 아담한 사찰, 개심사(開心寺)로 향했습니다. '마음을 여는 절'이라니, 이름부터가 늦가을 센티멘털한 제 마음을 활짝 열어줄 것만 같았죠!

🍂 걸음마다 가을이 쌓이는 길, 숲길을 택한 이유
개심사로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차를 타고 절 바로 앞까지 편하게 오르는 길, 그리고 일주문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따라 걷는 길.
망설임 없이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이 만추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거든요. 일주문을 지나자,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처음엔 완만한 길이 이어져 산책하듯 걷기 좋았어요.

이내 돌계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였죠! 계단 옆으로는 작은 계곡물이 '졸졸졸'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고, 길 양옆으로는 미처 다 떨어지지 못한 단풍잎들이 울긋불긋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아직 초록빛이 채 가시지 않은 잎들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색의 팔레트였어요.

'와...'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만약 차를 타고 휙 올라와 버렸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과 소리를 놓칠 뻔했잖아요?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매료되니, 오르막길인데도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워지던지요. 그렇게 자연과 발맞춰 천천히 10여 분을 걸어 드디어 개심사에 도착했습니다.


🎨 연못에 비친 가을, 그리고 국화의 향연
1. 가을을 담은 연못, 해탈교(解脫橋)
절에 들어서자마자 저를 맞이한 것은 아담한 연못이었습니다. 연못 중앙에는 '해탈교'라는 이름의 작은 나무다리가 운치 있게 놓여 있었죠. 이 연못이 참 신기하더군요. 연못의 절반은 밤새 떨어진 낙엽들로 빽빽하게 덮여 푹신한 양탄자 같았고, 나머지 절반은 가을 하늘과 사찰의 풍경을 거울처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낙엽 이불과 가을 반영, 그 극적인 대비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이곳이 바로 개심사의 시그니처 포토존이랍니다!

2. 명부전과 청벚꽃 나무의 기다림
연못을 지나 저는 자연스럽게 명부전(冥府殿)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재를 올리는 전각이에요. 이곳에서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명부전 바로 앞, 제 시선을 사로잡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니! 바로 봄이면 연초록빛 꽃을 피우는 그 유명한 청벚꽃 나무였습니다. 지금은 11월 중순, 화려했던 잎들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모습이 쓸쓸하기보다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내년 봄, 다시 그 신비로운 청벚꽃을 피워내기 위한 숭고한 기다림처럼 느껴졌습니다.

3. 국화축제에 온 듯, 향기로운 길
명부전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저는 그만 발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마치 작은 국화축제가 열린 듯했어요! 낮은 담장 아래 놓인 화분마다 소복하게 고개를 내민 노랑빛, 분홍빛 국화들이 줄지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냥 국화가 아니었어요. 오랜 세월 정성 들여 가꾼 것이 분명한 멋스러운 '국화 분재'들이었습니다. 고즈넉한 사찰의 정취와 어우러진 국화 분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죠. 저도 모르게 화분 가까이 다가가 그윽한 국화 향기에 한껏 취해 보았습니다. 아, 이 향기! 가을이 이렇게 향기로웠던가요?

🏛️ 대웅전 마당에서 만난 가을의 절정
4. 안양루와 뜻밖의 예술제
대웅전 앞 너른 마당에도 국화 향기는 가득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노란 국화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완벽한 가을 풍경을 선물하고 있었죠.


마당 입구에는 '안양루(安養樓)'라는 누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안양'은 '극락정토'를 뜻한다고 해요. 마침 이곳에서는 '제7회 충남내포 자연문화 예술제'가 열리고 있더라고요. 뜻밖의 행운이었죠! 누각에 올라 잠시 신발을 벗고 수석 작품들을 감상했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돌의 예술,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안양루 앞에도 멋진 국화 분재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5. 대웅전과 오층석탑
마당 한가운데에는 단아한 모습의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묵묵히 절 마당을 지키고 있었죠.

탑 뒤로 드디어 개심사의 중심, 대웅전(大雄殿)이 보입니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이곳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에요. 화려한 단청 대신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모습이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웅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아담하고 정갈한 개심사의 전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순간이었죠.


6. 심검당과 범종각
대웅전 옆으로는 '심검당(尋劍堂)'이 있습니다. '마음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라는데요, 스님들이 참선하고 수행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처럼 수행자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제 해탈문(解脫門)을 통해 절 밖으로 나왔습니다. 해탈문 밖에는 범종각(梵鍾閣)이 있었어요. 이곳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라는 불교의 네 가지 법구(사물)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중생을 깨우치는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합니다.

🍁 다시, 가을 속으로
국화가 놓인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방금 머물다 온 개심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일주문에서부터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걸어 올라왔던 길, 연못에 비친 맑은 가을 하늘,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윽한 국화 향기, 그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맞이하던 청벚꽃 나무의 기다림까지...
개심사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완벽한 11월의 선물이었습니다. 화려한 단풍도 막바지에 이르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어쩌면 쓸쓸할 수도 있는 이 계절에, 서산 개심사는 따뜻한 국화 향기와 고즈넉한 풍경으로 제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네요.
혹시 늦가을의 정취를 오롯이 느끼고 싶은 분이 있다면, 서산 개심사를 추천해 드립니다. 잊지 마세요, 꼭! 일주문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시길 바라요!
서산 개심사
○ 장소: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
○ 관람료 : 무료
○ 문의: 041-688-2256
* 취재(방문)일 : 202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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