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말엔 가을비가 내렸지만, 지난 주말(11월 9일)엔 화창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시내 가로수 은행나무들도 바삐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은행잎들은 가을비와 갈바람 사이로 우수수 떨어져 보도 위에 겹겹이 쌓여 도란도란 가을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가을엔 낙엽도 우수수 내리고, 햇볕도 오소소 쏟아진다.
충청남도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길은 염치읍 곡교천을 따라 조성된 길이다.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총 2.12km 구간에 조성된 이 길은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73년, 10여 년 생의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현재 은행나무 길이다. 심은 지 50여 년이 지나, 수령 60년 이상 된 은행나무 350여 루가 늘어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중 곡교천 변에는 180그루의 은행나무가 가로수 길을 이루고 있어, 4계절 각기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특히, 가을엔 노랗게 물든 황금빛 은행나무들이 끝없이 줄지어 서있는 곡교천을 따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현충사와 함께 꼭 둘러보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은행나무 길 산책

▲ 11월 9일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길
‘곡교천 은행나무들은 아마도 다음 주부터 가장 아름다운 황금빛 절정을 이루지 않을까?' 지난주엔 아직 노란색으로 물들지 않은 초록 잎나무들도 많았고, 이곳 은행나무들이 천안 시내보다 조금 늦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11월에는 '은행나무 길 은하수 별빛' 축제가 열려, 깊어가는 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으며,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크게 붐빈다. 우리도 3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 특히, 주말에는 곡교천 주변 넓은 주차장도 미어터질 정도다. 지난 주말엔, 한동안 천변 주차장으론 내려가지도 못한 채, 줄지어 선 거북이들처럼 기어가는 앞 차를 따라가다, 겨우 길가 한구석 공간을 발견했을 정도였다.
송곡 2리 교차로 전부터 밀리던 자동차의 긴 행렬을 보면, 매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 은행나무길, 은하수 별빛 / 걸음을 기부하는 방법
2024년과 2023년 11월, 곡교천 은행나무 길' 풍경

▲ 2024년 11월 17일, 나흘째 내리던 가을비가 걷힌 일요일 오후
코스모스 꽃의 색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흰색, 노랑, 연분홍, 자주, 보라 등 형형색색 조화로움이 눈부시다. 군데군데 시들어가는 꽃들도 활짝 만개한 꽃들과 함께 거대한 군락을 이뤄 더욱 장관이다. '질서와 조화를 지닌 우주와 세계'라는 철학적 의미가 담긴 코스모스(cosmos)는 이곳 은행나무 길에선 더 특별해 보인다. 흔들려도 꺾이지 않고, 가벼워 보이나 경박하지 않은 모습에서 외유내강의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 2023년 11월 첫 주말, 가을비 그친 오후 - 느티 전망대 쪽에서 바라본 풍경
1~2년 전 사진과 기록을 열어보니, 곡교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시기는 매년 조금씩 달랐다. 작년과 재작년엔 가을비 그친 후 방문이었지만, 이번 주말처럼 사람들로 크게 붐비진 않았다.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순신 백의종군길’은 1597년 4월 1일 의금부에서 출발해 아산·남원·구례 등을 거쳐 경남 합천의 도원 수진까지 이순신 장군이 가셨던 경로와 활동범위인 약 640km를 걸은 행로였다. 현재 출발지는 서울 종각역 1번 출구 부근이다. 아산 구간은 둔포 운선교~현충사 코스(22.9km, 7시간)이다.

▲ 이순신 백의종군길

▲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들
11월이 되니, 올해도 져 물어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급해지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곡교천 은행나무들도 바빠 보인다. 줄지어 선 은행나무들도 온전히 노랗게 물들고 나면, 낙화를 서둔다. 갈바람도 은행잎이 자유롭게 날도록 밀어주며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지만, 노란 은행잎에게 비상의 순간은 너무 짧다.
때가 되면, 오고 가는 이치를 아는 것과 쌓여가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감성은 다르다. 마음은 가을처럼 깊어가고, 쌓이는 낙엽은 삶의 미련만큼이나 켜켜이 얹어지지만,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가을 풍경 담긴 화려한 은행나무 길을 즐겁게 걷는다.
곡교천 둘레길

▲ 은행나무 길에서 내려다본 곡교천 둔치
곡교천 둔치 풍경
은행나무 길에서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댑싸리, 코스모스와 황화코스모스, 백일홍 등이 광활한 천변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탁 트인 곡교천 둔치로 내려선다. 막상 둔치로 내려가니, 어여쁘게만 보이던 꽃들은 대부분 이미 시들고 있었다. 바삭 말라가는 꽃대 위에서 아직 그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꽃들도 있긴 했지만. 11월이니 가을꽃도 지기 마련이다.

▲ 댑싸리 군락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
댑싸리도 반 이상은 늙어 바스러질 것 같은 갈색으로 변해있지만, 아직 군데군데 붉은빛이 남아있다. 이런 갈색과 붉은색의 대비는, 한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와 소멸을 느끼게 한다. 댑싸리의 붉은빛은 제방 위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지금이야말로 제방 위 은행나무의 선명한 노란색은 가장 화려한 빛깔을 드러내는 시기다.

▲ 은행나무 길 곡교천 둔치에 조성된 백일홍과 코스모스 군락
둔치에 조성된 코스모스 군락은 작년보다 많이 줄어든 듯 보인다. 대신 백일홍과 댑싸리 군락을 다양하게 조성했다.
가을꽃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긴 했지만, 진분홍, 주황, 보라색의 백일홍 꽃들도 몇 주 전 아름답던 흔적을 아직 다 지우지 못한 채 가을볕을 향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이미 진 꽃들은 다음 해를 기약하겠지만, 코스모스는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고, 댑싸리도 1년 초가 아닌가! 백일홍은 여러해살이 낙엽교목이긴 하지만.
매년 새로 피고 지는 꽃들은 모두 다른 꽃 들인 셈이지만, 우리 추억 속엔 가장 아름답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꽃마다 피고 지는 시기, 은행나무마다 노랗게 물드는 시기는 제각기 다르다. 코스모스와 백일홍과 댑싸리, 은행나무도 우리처럼 모두 때가 되면 오고 가는 이치를 알고 있으니, 자연의 조화로움 속에서 굳이 바삐 서둘 필요도 조바심할 이유도 없다.
곡교천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기 전엔 맞은편 풍경에 눈길을 보내고, 다리를 건너면서는 다시 은행나무 길 풍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맞은편 천변에는 갈대와 물 억새가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란 곳도 있다. 어찌나 무성하던지 함께 서 있는 사람도 갈대와 물 억새처럼 보였다. 갈대와 억새는 모두 볏과 다년생이어서인지 서로 생김새가 닮아있지만, 서식지·꽃·잎·줄기·키는 서로 다르다. 갈대는 물가에, 억새는 산에 서식하는데 이곳에 있는 억새는 물 억새일 것이다.

▲ 갈대 무리 / 곡교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길
https://m.blog.naver.com/joopokey/clip/12359024 - 곡교천변을 은빛으로 물들인 갈대와 물 억새 군락
갈대와 억새는 한꺼번에 몰려드는 갈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한겨울 세찬 칼바람도 힘껏 품는다.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지만,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고단한 모습이 애처롭다. 우리도 이날은 은빛 갈대처럼 흔들리며 걸었지만, 억새처럼 함부로 꺾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https://blog.naver.com/nibr_bio/224071242769
- 국립생물자원관 블로그로 가면, 억새와 갈대의 다른 점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 곡교천 둔치, 갈대 무리

▲ 곡교천 둔치, 물 억새 무리
곡교천은 아산 염치읍 곡교리 앞을 흘러 인주면 대읍리 삽교천에서 합류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하천이다. 특히, 곡교천 둔치는 계절마다 봄엔 유채꽃,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백일홍, 국화와 댑싸리 등이 아름다운 군락을 이룬다.
곡교천이 위치한 아산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로 매년 '성웅 이순신 축제'가 펼쳐진다. 곡교천 물길 따라, 역사와 자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은행나무 길을 둘러보고 나서는 길도 붐비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왔던 길로 돌아 나왔으나 이번에 ‘네비’가 곡교천 건너 처음 가보는 길로 안내해 준다. 이 길도 곡교천을 건너고 조금 지나서야 시원하게 뚫린 대로를 달릴 수 있었다.
은행나무 길을 돌아 나올 때도 꽉 막힌 도로

▲ 2차선 은행나무 길 자동차 도로.
곡교천을 건너는 다리로 가는, 2차선 은행나무 길 자동차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 곡교천 마을 근처 대로
곡교천 은행나무 길을 벗어나자, 가로수 은행나무의 노란빛이 더 화사해 보인다. 비로소 시원하게 뚫린 도로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엔 어딜 가나, 노란 은행나무들 덕분에 눈부신 황금빛으로 눈과 마음이 호화로운 사치를 부려본다. 세상이 다 황금빛이고, 땅바닥에 뒹구는 낙엽들까지 모두 황금색이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아파트 단지 내 황금빛 은행나무

▲ 아파트 단지 내 황금빛 은행나무와 노란 국화, 붉은 맨드라미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작은 오솔길로 조성된 정원에도 가을꽃들이 호사롭게 손짓하고 있었고, 이곳 은행나무야말로 황금빛 그 자체였다.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분의 부지런한 손길에 저절로 고마움을 갖게 된다.
천안종합운동장 후문, 투포환 장 잔디

▲ 천안종합운동장 후문 쪽 가을풍경
천안 종합운동장 후문, 투포환 장이 있는 넓은 잔디밭 주위로도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가득 들어차 있다.
지금, 천안종합운동장으로 가서 아름다운 가을 정취도 만끽하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운동도 등록하면,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해지는 가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늘은 높고, 몸도 건강해지면, 이보다 더 풍요로운 계절이 또 있을까.
현충사곡교천은행나무길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502-3
천안종합운동장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번영로 208 종합운동장
* 취재(방문)일 : 202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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