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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주 마곡사, 봄꽃이 아름다운 ‘春 마곡’, 가을엔 불타오르는 '秋 마곡'

공주 마곡사를 찾은 날(10월 25일), 명부전에서는 '불기 2569(2025) 년 '마곡사 군왕대재 봉행'이 있었다.
고찰 마곡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 위치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 등록일자
    2025.10.29(수) 11:50:19
  • 담당자
    Someday (joopokey@naver.com)
  • 지난주 토요일(25일),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를 찾았다. 마곡사는 ‘春 마곡’이란 별칭처럼 봄꽃이 아름다운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을 단풍이 곱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직 태화산과 마곡사 경내 나무들은 단풍이 들 듯 말 듯 하더라! 아무래도 11월 초순이 지나야 컬러플한 옷을 완전하게 갈아입은 불타오르는 태화산과 '秋 마곡'을 마주할 것 같다. 


    마곡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643년(의자왕 3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고려 명종 1172년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 대사가 재건했다. 다시 도선 국사가 중수하고 각순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마곡사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내리기도 했다. 

    마곡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해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보물)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영산전(보물), 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충청남도 문화유산 자료)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 사액: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마곡사 해탈문

    마곡사 해탈문 / 해탈문 왼쪽, 문수보살상과 금강역사상 / 오른쪽 금강역사상과 보현보살상

    ▲ 마곡사 해탈문 / 해탈문 왼쪽, 문수보살상과 금강역사상 / 오른쪽 금강역사상과 보현보살상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이며,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법계로 들어가 해탈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양편에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 동자 상이 있다. 고종 1년(1864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마곡사 천왕문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동방 지국천왕, 북방 다문천왕/국가보물로 지정된 마곡사 사천왕

    ▲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동방 지국천왕, 북방 다문천왕/국가보물로 지정된 마곡사 사천왕


    천왕문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곡사 두 번째 대문이다. 건물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전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인 사천왕은 수미산을 지키면서 중생을 올바르게 인도한다. '동방 지국천왕'은 칼을, '서방 광목천왕'은 당과 보탑을, '남방 증장천왕'은 용과 보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다. 


    천왕문 근처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로 귀까지 즐거웠던 날

    ▲ 천왕문 근처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로 귀까지 즐거웠던 날

     

    마곡사 전각 소개/극락교 입구에 있는 안내판/ 극락교에서 내려다 본 마곡천 아래 거북상들들

    ▲ 마곡사 전각 소개/극락교 입구에 있는 안내판/ 극락교에서 내려다 본 마곡천 아래 거북상들들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범종각이 있고, 그 앞으로 심검당이 보인다. 극락교 아래 마곡천 물살은 멈춘 듯 흐르 듯, 다른 곳 물길보다 더 조용히 흘렀다. 중생이 머문 세상이 아닌,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불계의 공간같이 느껴졌다.

     

    마곡사 범종각

    마곡사 범종각/ 범종각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

    ▲ 마곡사 범종각/ 범종각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


    극락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 둔 범종각의 빼어난 자태에 눈길이 머문다. 범종은 지옥을 포함한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법고는 짐승의 무리를 위해, 목어는 물속 중생을 위해, 운판은 허공의 날짐승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웅장하고 청아하게 울린다.

     

    마곡사 심검당 / 고방 / 영각

    마곡사 심검당 / 고방 / 영각

    ▲ 마곡사 심검당 / 고방 / 영각


    심검당이란 지혜의 길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방이다. 정조 21년(797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방은 관음전으로 들어가는 문 왼쪽에 있는 건물로, 심검당 북쪽에 있는 2층 창고이다.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방 위층에는 조선시대 문신인 표저 조익(1570~1655)과 그의 셋째 아들인 송곡 조복양(1603~1671)의 문집 목판이 포저 유서 및 송곡 문집 판각 등이 보관되어 있다.

    영각은 관음사 들어가는 고방 뒤편 호젓한 곳에 위치해 있다. 영각(影閣)은 사찰의 이름 높은 승려의 초상을 모신 전각이다. 



    마곡사 관음전과 템플스테이 

    관음전 들어가는 문 / 관음전 / 템플스테이

    ▲ 관음전 들어가는 문 / 관음전 / 템플스테이

     

    마곡사 대광보전

    마곡사 대광보전

    ▲ 마곡사 대광보전과 마곡사 오층석탑


    마곡사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상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봉안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는 진리를 상징하며, 광명의 빛을 세상에 두루 비침으로써 중생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다. 현판은 시문서화 사절로 꼽히던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흘림체이다.


    앉은뱅이 업장 소멸한 대광보전 - 대광보전에는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있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세세생생 회향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날은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광명을 얻게 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될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 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고 마침내 삿자리도 완성됐다. 그는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그는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파란 하늘과 푸른 숲, 무심히 흐르는 마곡천을 바라보며 부처의 자비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는 이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숲,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에게 회향하고, 나누는 삶, 자비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마곡사 오층 석탑 

    대광보전 앞에 있는 오층 석탑은 나라의 기근을 막아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명 다보탑, 금탑으로 불리는 고려 시대 탑이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풍마동 장식이 조성되어 있다. 원나라 영향을 받은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며, 다보탑으로도 불린다.


    태화산 마곡사 대광보전과 관세음 보살상

    ▲ 태화산 마곡사 대광보전과 관세음 보살상



    마곡사 응진전 / 백범당

    마곡사 응진전 / 백범당

    ▲ 마곡사 응진전 / 백범 선생 은거 식수 / 응진전과 백범당 / 백범 선생 은거하셨던 백범당


    응진전은 부처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아라한(阿羅漢)을 모신 곳이다. 16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며, 중생을 바른 법으로 인도하길 원하는 성자를 말한다. 마곡사 응진전은 철종 3년(1852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응진전 오른쪽으로 김구 선생이 은거했던 집과 은거 기념 식수인 향나무도 보인다. 

     

    마곡사와 김구 선생

    백범 선생은 마곡사를 떠난 지 근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원각경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 

    백범 선생은 동학교도에서 승려, 독립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주석에 이르기까지 투쟁과 투옥, 망명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언제나 '해방된 조국, 하나 된 조국'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백범 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 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다가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圓宗)이라 했다. 

    “사제(師弟) 호덕삼(扈德三)이 머리털을 깎는 칼(削刀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 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출가 당시의 착잡했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가 있고, 삭발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명했다.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은 1시간가량 산책을 즐기기 좋은 길이다. 

    백범 선생은 사상 보다는 늘 하나 된 조국을 원했다. 사진 옆에는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그것은 서산대사의 선시로 다음과 같다. 

    사진 출처 : 마곡사 홈페이지

    ▲ 사진 출처 : 마곡사 홈페이지


    대광보전에서 올려다본 대웅보전/ 대웅보전 오르는 돌계단/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보전

    ▲ 대광보전에서 올려다본 대웅보전/ 대웅보전 오르는 돌계단/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아래 가운데 사진, 오른쪽부터 - 약사여래부처상, 석가모니 부처상, 아미타 부처상

    ▲ 아래 가운데 사진, 오른쪽부터 - 약사여래부처상, 석가모니 부처상, 아미타 부처상


    마곡사 대웅보전은 1785년~1788년에 걸쳐 중수된 2층으로 지어진 통층 전각으로 네 개의 싸리나무 기둥이 있다. 대웅보전엔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와 아미타부처가 모셔져 있다. 세분 부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는 삼세불이라고도 부른다.

     

    마곡사 대웅보존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모든 사람은 죽어 저승으로 가니, 염라대왕은 망자를 앞에 세워두고,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라고 묻는다고 한다.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그냥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 전설을 듣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웅보전 주위를 일없이 서너 번씩 돌기도 한다. 

    또 이 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은 마곡사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 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다 보니, 지금 이곳 네 개의 싸리나무 기둥은 반질반질 윤이 날 만큼 중생들의 손때가 묻어있다. 

     

    마곡사 솔바람 길 - 백범 명상 길 풍경

    백범 명상 길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

    ▲ 김구선생의 삭발 바위 / 백범 명상 길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

     

    https://m.blog.naver.com/joopokey/clip/12185522 -마곡사의 가을, 마곡천 물소리

     

    마곡사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은 1995년 세워진 후 2019년 10월 새 모습으로 다시 개관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찰 문화재 도난 사건이 이어지자 1972년 조계종에서 사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성보 보존회를 설치했다.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사찰마다 성보박물관을 세워 문화재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마곡사에는 국가 및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가 22건 있고,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지정문화재 중 세조대왕연(세조가 탔던 가마)을 비롯해 각종 불상과 탱화, 불경을 새긴 목판, 옛 스님이 남긴 유물 등 마곡사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다.


    마곡사 성보박물관

    ▲ 마곡사 성보박물관 전시유물들 일부 / 아래 사진 세 장 - 마곡사 동종 / 목어 / 세종대왕 연

     

    성보박물관은 1995년 세워진 후 2019년 10월 새 모습으로 다시 개관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찰 문화재 도난 사건이 이어지자 1972년 조계종에서 사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성보 보존회를 설치했다.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사찰마다 성보박물관을 세워 문화재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마곡사에는 국가 및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가 22건 있고,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지정문화재 중 세조대왕연(세조가 탔던 가마)을 비롯해 각종 불상과 탱화, 불경을 새긴 목판, 옛 스님이 남긴 유물 등 마곡사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다.

     

    불교의 사물 :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범음 구로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불전 사물이라 한다. 

    부처의 말씀에 비유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으며 소리를 듣는 순간 삼세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신앙적 의미와 시간 또는 특별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실용적 의미가 담겨있다. 종소리는 명부 세계의 중생을, 북소리는 모든 축생들을, 목어 소리는 물속 생물을, 운 판소리는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겼다.

     

    세종대왕 연 : 세종대왕 연은 기마채에 화려한 용무늬가 장식된 4인교로 조선 전기(15세기)에 제작된 최고급 연이다. 

    채색 안료의 변색 및 탈락이 진행되었지만, 원형을 유지하며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받침다리는 국왕과 왕세자의 연에만 사용하는 용과 봉황 외 덕치와 인치, 태평성대, 지혜로움 등을 상징하는 백택과 기린 등 신수 문양 등을 그려 넣어, 국왕의 권위를 부각시켰다.

     

    성보 박물관 무료 관람안내 

     - 관람시간: 하절기(4월~10월) 10시~17시 / 동절기(11월~3월) 10시~16시

     - 점심시간: 11:30~12:30

     - 휴 관 일 :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

      * 주차는 마곡사 주차장을 이용하며, 승용차 기준 4천 원


    마곡사 성보박물관 외관 / 박물관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 마곡사 성보박물관 외관 / 박물관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마곡사 산신각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한 곳으로,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니나, 토착 민간신앙을 수용한 것으로 전(展) 보다 격이 낮은 각(閣)으로 칭한다. 


    마곡사 성보박물관 외관 / 박물관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 마곡사 산신각 / 마곡사 산신각 앞뜰에서 내려다 본 마곡사 풍경


    마곡사 명부전 - 업장을 소멸하는 곳 

    마곡사 명부전

    ▲ 마곡사 명부전


    명부전은 1939년 건립된 건축물로 중앙 불단에 지장보살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까지 다 구제할 것을 서원하신 분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그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처이다. 



    마곡사 영산전 - 응집된 영험의 기운이 감도는 곳 

    영산전은 예로부터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큰일 할 인재를 배출하고자 원하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소원을 성취하는 장소이다. 영산전은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있다. 사적 입안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인 방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마곡사 영산전 군왕대재 봉행

    ▲ 불기 2569(2025)년마곡사 영산전 군왕대재 봉행


    마곡사 갔던 날(2025년 10월 25일 토)이 '마곡사 근황 대재 봉행'하던 날이었다. 마곡사 영산전에서는 10월 25일 오후 2시 원경 주지스님과 신도와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군왕대재를 봉행했다. '마곡사 군왕대제'는 입신양명의 수승한 기도처로 알려진 군왕대의 전통을 잇고 지역사회 발전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계룡산과 태화산의 정기가 모두 집중된 군왕대는 ‘임금을 낼 자리’로, 조선 세조가 ‘만세불망 지지’라 극찬한 이곳 마곡사이다. 세조는 군왕대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만세 동안 없어지지 않을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고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군왕대제는 부처님 소제 의식을 시작으로 군왕대제(산신제), 영산전 자비도량참법 기도, 작은 음악회 등으로 이어진다.

     

    영산전은 석가모니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와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하지만,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에는 한가운데에 과거칠불을, 그 주위에 1000분의 부처를 모셨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를 일컫는다. 현판은 세조가 1465년에서 1487년 사이, 마곡사에 들러 직접 쓴 현판이라고 '마곡사 사적 입안'에 기록이 있고, 실제 현판에도 '세조어필 '이라고 쓰여 있다. 

     

    마곡사 갔던 날이 마곡사 장날! 

    마곡사에 핀 꽃들 / 태화산 계곡물 / 마곡사 장터

    ▲ 마곡사에 핀 꽃들 / 태화산 계곡물 / 마곡사 장터 / 장터  먹거리(공주 군밤, 떡볶이와 어묵)


    마곡사 뜨락에 핀 흰 수국 꽃은 계절을 잊었는지, 미련이 남았는지, 아직도 만개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곡사 담장 아래 줄지어 피어있는 노란 국화꽃은 가을 햇볕을 가득 받으며 조잘거렸고, 태화산 계곡물은 하루 종일 가을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 

    마곡사 일주문과 천왕문 근처에서는 지역 특산물과 우리 농산물로 장터 축제를 열고 있었으니, 이래저래 진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우리도 군밤(5천 원), 떡볶이와 어묵(1만 원)을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석가모니 부처의 자비와 관용을 품고 돌아오는 길, 쌓이는 연륜이 헛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들이 쉽게 이루어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지만, 이도 과욕이라 생각하면서, 감히 그분의 인자한 얼굴을 닮고 싶었다.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http://www.magoksa.or.kr/?asdf=home 

     * 취재(방문)일 : 2025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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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마곡사, #秋 마곡, #마곡사 군왕대제, #마곡사 대광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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