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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2025년 천주교대전교구 직장직종 사목부 가족과 함께한 홍주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 위치
    충남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 108
  • 등록일자
    2025.09.24(수) 08:02:59
  • 담당자
    수화 (nabiewha@naver.com)
  • <2025년 천주교대전교구 직장직종 사목부 가족과 함께한 홍주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현수막-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간 밤에 내린 비가 그치지 않은 상태로 굵은 빗줄기는 우산을 헤집고 들어왔고 몇 걸음 걸어가지 않았는데도 운동화를 몽땅 적셨습니다.

    젖은 옷과 젖은 운동화보다 오늘 있을 <홍주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쩌지! 450여 명이 모이는데  큰 행사인데....계속 묵주 기도 드리고...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하늘은 점점 개이고 홍주성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간간히 내리는 비에 안도하였습니다.


    순교자 현양대회


    <2025년 천주교대전교구 직장직종 사목부 가족과 함께한 홍주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천주교에서는 9월을 '순교자 성월'이라 합니다.

    그 이유는 9월에 가장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한 달이기 때문입니다.

    홍주성지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대전, 세종, 충남 대전교구 직장직종 사목부에서 추진하였고,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성지성당에서 준비하였습니다.


    대회일정

    09:00~10:00----성지순례

    10:00~10:40---순교자 현양행렬

    10:40~ 11:00---문화공연(플루트, 팝페라)

    11:00~11:05---개회

    11:05~12:00---특강 (홍주성지 전담사제 오남한 루카신부님)

    12:00~14:00---중식, 성지순례

    14:00~15:00---문화공연 *고해성사 (가톨릭남성합창단 AMOR)

    15:00~16::30---장엄미사 

    16:30~---폐회, 기념촬영


    간간이 내리는 비에 홍주성지 봉사자들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깃발과 교통 통제를 위한 시선유도봉을 들고 홍성 군청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홍성성지에서 봉사하시는 성지해설사와 함께 4팀으로 나뉘어 

    09:00~10:00까지 동헌->홍주감옥->진영장-> 저잣거리->행렬 출발지로 순례를 하였습니다.


    동헌


    1. 순교 1터- 신앙의 증거터 동헌


    1791년 신해박해의 원인인 진산사건은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하여 제사를 거부하고 조상의 신주를 태우므로 해서 

    1791년 12월 8일 윤지충 바오로와 사촌인 권상연 야고보가 전주 풍남면에서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홍주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이곳 동헌에서 박취득 라우렌시오가 곤장을 1,400대의 형벌을 받았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목 졸림으로  1799년 4월 3일 30세의 나이로 순교 하게 되고 

    2014년 8월 6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복자로 시복되었습니다.

    또한 아들 박후재 요한은 1839년 9월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고 

    1984년 5월 6일에 103위 시성식을 통해서 성인 품에 올랐습니다.


    안희당


    '안희당' 입니다. 

    '안희당'이란 뜻은 '어른을 공경하고 편안히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사귀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한다'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는 곳이지만,

    박해시절에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문초를 당하고 고문을 당한 곳입니다.


    홍주아문


    제 1 순교터인 '동헌'을 나와 제 2 순교터인 '감옥터'를 가기 위해 '홍주아문'으로 나왔습니다.

    '홍주아문'은조선시대에 지방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문관)이 근무하는 건물인 '안희당'의 바깥문으로

    고종 7년에 한웅필 목사가 홍주읍성을 수리할 때 같이 세운 문이라고 합니다.

    박해시절엔 신앙의 선조들이 "홍주아문'으로 살아서 들어가서는 죽어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홍주아문 안쪽에는 수령이 7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3 그루 있고 홍주아문 밖으로 1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의 배교를 위해 발가벗기고 이 나무들에게 매달아 돌팔매를 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고 합니다.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믿으면 이런 꼴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나무 역시 순교자들과 함께 모욕을 당했고 세월은 흘러 역사의 현장은 사라졌지만 

    나무들은 말없이 꿋꿋이 살아 남아 그 시절의 증목으로 남아있습니다.


    감옥터


    2. 순교 2터 - 감옥터

     

    '홍주 감옥터'는 113명이 순교한 감옥터로 첫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가 동사로 순교한 곳입니다.

    또한 프랑스의 첫 선교사였던 성 모방 신부와 두 번째 선교사였던 성 샤스텡 신부가

    기해박해 때 홍주관아에 자수하여 갇혀있던 곳이기도 하며

    성 다불뤼 주교와 성 위앵 신부, 성 오메트로 신부, 성 황석두 루까 성인이 갇혀있기도 한 곳입니다.


    감옥터 안


    원시장 베드로는 55세에 천주교를 받아드리고 

    천주교 교리인 천주존재, 강생구속, 상선벌악, 삼위일체의 교리로 하루동안 30가구나 입교하게 하였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원시장은 스스로 천주교 신자임을 자청하였고 포졸들에 의해 장살형으로 받게 됩니다.

    장살형은 죽을 때까지 매를 받는 가혹한 형벌이었지만

    원시장 베드로는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터져나갔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홍주 목사는 원시장이 죽지 않자 이 사건을 빨리 처리하려고 

    추운 겨울날 원시장 베드로의 몸에 물을 뿌려 얼려 죽게 했습니다.


    홍주읍성 우물터


    1793년 1월 28일 감옥터 옆에 있는 이곳에서 원시장 베드로는  동사하였습니다. 

    홍성 홍주읍성 우물터라고 하는 안내문 뒤엔 원시장 베드로의 순교 장면이 동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성호경을 그으며 

    "저를 위해 매 맞으시고, 제 구원을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이제는 제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얼고 있는 이 몸을 바칩니다." 하며 선종 기도를 바쳤습니다.


    진영터


    3.  순교 3터 -진영터


    '진영터'는 조선시대 홍주 진영의 동헌(경사당)이 자리 잦고 있던 곳입니다.

    천주교 박해 후기에 수많은 신자들이 끌려와 잔인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입니다.

    "배교한다."는 말 한 마디면 살 수 있었으나 신앙의 선조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는 "죽음을 당할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자품에 올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진영터


    '진영터'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조양문'이 있습니다.

    조양문은 홍성의 4개 문의 하나로 존재하지 않고 홍성의 모든 내력을 모두 알고 있는 역사의 문입니다.

    '아침 햇살' 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를 보아서도 조양문이 있는 홍성은 아침 햇살과도 같이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고 조양문 바로 앞의 '진영터'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진실과 순교의 모습을 증거하는 증거의 문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 조양문으로 살아서 들어와서는 심한 고문과 형벌로 죽어서 성 밖으로 내던져 졌다고 합니다.

    천주교인이라는 죄목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많은 신자들이 성지 해설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그 고문을 다 당하셨을까?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모두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잣거리


    4. 순교 4터 -저잣거리


    홍주 성지 성당 우측에  있는 이곳은 <저잣거리> 순교터입니다.

    <저잣거리>는 옛날의 장터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관아에서는 죄질이 나쁜 흉악범들이나 특히 천주교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조리돌림을 하였습니다.


    조리돌림이란 죄인이 저지른 죄가 적힌 걸개나 팻말을 목에 걸고 장터 여러 곳을 돌게 하거나 묶어 놓고 사람들이 구경하게 하는 형벌입니다. 

    구경꾼들은 침을 뱉거나 돌팔매질을 하였고, 처형 후 시신을 광장에 걸어 놓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저잣거리


    조리돌림한 모습이 왼쪽 동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신앙의 선조들의 삶은 처참하였을 겁니다. 

    무엇이 그들을 담대한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드리게 하였을까요?


    벽에 '조토 디본도네'의 성화가 그려져 있는 곳이 홍주성지 성당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미사를 봉헌드리는 성당이 나오고 45명 정도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는 아주 작은 곳입니다.


    복자 4분의 영정사진


    10시가 되어 <순교자 현양 행렬>을 하기 위해 홍주성지 성당에서 

    4분 복자 방 프란치스코, 원시장 베드로, 박취득 라우렌시오, 황일광 시몬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순교자 현양 행렬


    팀 별로 정돈하고 복자 4분의 영정과 함께 50개의 만장을 들고 <순교자 현양 행렬>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50개의 만장은 홍주읍성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성함과 세례명이 적혀져 있습니다.


    복자 영정 4위 행렬


    4분의 복자 영정과 함께 50개의 만장을 들고 450여 명은 그 뒤를 따라 가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진행자가 이 곳 홍주 출신 순교자분들의 본명과 세례명을 부르시고, 

    함께 행렬에 참가하신 분들은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라고 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대 앞 4위 영정


    <순교자 현양 행렬>은 '진영터를 지나고 '감옥터'를 지나고 제 1순교터인 '동헌'에 마련된 제대 앞에 영정을 모셨습니다.


    이곳은 '여하정'으로 1896년 고종 이승우 관찰사가 옛 청수장 자리에 세운 것으로 역대 홍주목사의 휴식처였다고 합니다.

    왼쪽에는 수령이 300년 된 왕버드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버드나무에는 전해져 오는 말이 있는데, 

    300년 전 박해 시절에 풍파에 쓰러진 이 나무를 세워 놓으면 쓰러지기를 반복하여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후에 이곳 사람들은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피를 흘리는 장면을 왕버드나무가 보고 

    겸손하게 머리 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왕버드나무는 300년 전의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숙이고 있습니다.


    전신자 모습


    <순교자 현양 행렬>순례를 마치고 오니  이렇게 천막이 준비되어 있었고 다함께 잠시 쉬었습니다. 


    독창 -정철민


    잠시 후 허정인 안젤라님은 플릇을,  정철민 클레멘스님은  성악으로 우리 모두에게 쉼을 주었습니다.


    홍주성지 오남한 신부님


    그리고 홍주성지 전담 사제인 오남한 루카 신부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오남한 루카 신부님은 

    우리나라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하여 제사를 거부하고 신위를 불태운 것이  

    반인륜적 행위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고, 

    사촌인 권지충 야고보와 함께 1791년 12월8일 전주 풍남문에서 참수를 당하게 된 사건으로 시작하여

    천주교의 역사와 홍주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엔 퀴즈를 통해 선물을 주시기도 한 신부님의 특강은 가뭄에 내린 단비같이 정말 좋았습니다.


    맛난 점심시간


    점심은 뷔페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성벽


    제 5 순교터인 참수터로 이동하는 중간 홍주읍성 북문 동측성벽의 모습입니다.

    이 성벽은 고려 시대 토성이 조선 시대 석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벽이라고 합니다.


    참수터


    5. 순교 5터-참수터


    이곳은 홍주성 북문 밖 북문교 월계천변이 있는 곳으로 홍주에서 사형지로 이용되던 곳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일광 시몬과 병인박해때 유 마르타가 참수형을 받은 순교터입니다.

    황일광 시몬은 백정 출신으로 서울에서 체포되었지만 

    고향인 홍주로 이송되어 1802년 1월 30일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황일광 시몬은 천주교를 알면서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게 된 것에 감사드리며 

    "나에게는 두 개의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있고, 다른 하나는 후세에 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생매장터로 가는 길


    5. 참수터를 지나 '십자가의 길'을 지나 마지막 '생매장터'로 가는 길입니다.

    홍주는 벌써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들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정말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안개 속을 헤매는 것도 같았고, 뭔가 명백해 지는 것도 같은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생매장터


    제 6 순교터-생매장터


    이곳은 천주교 4대 박해 중 최대 박해인 병인박해(1866년) 때 천주교인들이 너무 많아 

    다 수용할 감옥이 부족하자 그 대응책으로 일부 천주교인들을 생매장한 곳입니다.

    이곳은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곳으로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 

    천주교인들을 생매장하거나 시신을 처리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1868년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 루치아 원 아나타시아 등이 이 형벌로 순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생매장 당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가톨릭 남성합창단 공연


    6곳의 순례를 다 마치고 나니 가톨릭남성합창단AMOR의 문화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간에 고해성사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이 함께 주어졌습니다.


    합창단은 사명, 청산에 살리라, 한계령 등 10곡 정도의 합창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흥얼거리던 한계령의 가사가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노래를 다 듣고 나니 마치 고해성사를 한 느낌처럼 다가왔습니다. 


    미사 시작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6분의 사제 방익수 사도요한 신부님, 허숭헌 안셀모 신부님, 송우진 베드로 신부님, 임민수 베드로 신부님, 

    홍주 성지 전담 사제인 오남한 루까 신부님께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십자가를 모시고 입장하시는 모습입니다.


    미사 성체강복


    이날 미사는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께서 집전하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부득이한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셔서

    대전교구 직장직종 사목부 대표인 방익수 사도요한 신부님께서 집전하셨습니다.

    6분의 사제와 450여 명이 함께 드리는 미사는 모두 하나가 된 듯 감동이었습니다.


    단체사진


    마지막으로 각 팀 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 오늘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천주교대전교구 직장직종 가족과 함께한 홍지성지 순교자현양대회>를 위해 참여해 주신 단체와 

    미사를 집전해 주신 6분의 사제와 홍주성지 봉사자들

    그리고 홍주성지 전담 사제인 오남한 신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홍주순교성지>

    ○ 주소: 충남 홍주군 조양로 108(오관리85-2)

    ○ 미사시간: 주일/평일 (화~토) 오전 11시, 월요일은 요청시 가능

    ○ 전화: 042-633-2402

    ○ 주차장: 무료 (넓어요)

      - 단체로 순례 오실 경우 예약 바람 (순례시 성지 해설 및 안내해 드립니다.)

     * 참여일시: 2025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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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현양대회, #홍주성지, #충남 첫 순교터, #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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