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고마에서 '버섯 따러 가던 날, 멧돼지 가족을 만났다'라는 특이한 타이틀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평일 오후에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햇살이 따가운 9월입니다.




▲ 계단 아래층 경관
지금까지는 주차장 쪽에서 들어가면 1층에서 전시를 했는데 이번 전시는 지하에 있는 컨벤션홀에서 했습니다.
아트센터 고마는 몇 번 와봤지만 컨벤션홀은 처음입니다.
컨벤션홀 앞쪽으로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건물 앞쪽으로 물이 채워져 있고 한쪽으로는 분수대도 있었습니다.
더 밖으로 나가면 야외 공연장도 있었습니다.
2층에 있는 전시회만 보고 주위는 안 둘러 보고 갔었는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시원한 바람 부는 가을에는 아트센터 고마 건물 주위 산책도 꼭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 버섯 따러 가던 날
유네스코 세계 유산 도시인 공주는 10만 인구가 붕괴 직전인 인구 감소 도시이지만 외지 관광객이 많은 도시 2위를 기록하는 등
문화적 전통과 내용에 매력을 가진 도시이다. 공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매력이 있다. 전시는 금강현대미술제(1980, 공주 금강) 등 자연미술운동이 시작됐던 미술 역사를 바탕으로 보다 개방적인 도시 이미지와
예술영감이 살아있는 공주를 위해 기획 되었다.
<버섯 따러 가던 날, 멧돼지 가족을 만났다>는 자연과 사건이라는 하나의 이벤트에서 출발한다.
'버섯채취'라는 채집 생활 가운데 돌출한 사건은 멧돼지 가족을 만나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혹은 꼼짝 없이 얼어붙은 상황들을 만든다. 자연은 이렇듯 강렬한 충격과 경험을 준다. 자주 잊고 있지만 자연에서 오는 이러한 수신, 들판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에 꽃씨가 날리고, 움을 틔워 온 계절을 환하게 하는 자연 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힘과 에너지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수신하는가? 계절의 순환과 함께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힘이 자연에 있음을 확인하길 기대한다.
한 작가의 작품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전시회 이름이 되었네요.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작품 생활을 하는 작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전해 줄까요?
전시는 계절의 순환과 삶의 주제로 합니다. 전시 구성은 작가의 제목 및 주제를 활용하여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신의 정원
첫 번째 섹션인 '신의 정원'입니다.
1. 신의정원
첫 번째 섹션, 신의 정원'은 봄밤이라는 부제가 붙은 류헌걸의 작품이지만 온갖 생명이 소생하는 봄의 신비를 신의 정원'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전시의 전체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평생 작업과 노동, 자연 채집의 삶을 살아왔던 우평남의 <버섯 따러 가던 날>은 황토를 바른 화면 위에
지두화로 작품을 완성한다. 또한 임동식의 <비단장사 왕서방 > 시리즈를 통해 공주 유구의 비단의 역사를 문화로 쌓아 올린다는 의미를
전시장 설치를 통해 볼 수 있다. 여경섭의 <나는 호미를 기른다>시리즈는 작은 호미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돌 위에 심은 작품을 통해 새싹을 표현한
위트있는 작품이며 이미정의 <성몽리의 별이 빛나는밤>과 <휴식>은 달빛 별빛의 몽환적인 밤 품경을 녹색과 청색, 노란색의 파스텔 화면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류동현이 그린 공제의원의 사계절 그림은 근대 유산을 작업실 삼아 10년간 지냈던 작가의 추억과 경험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신의 정원을 표현한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 담을 수는 없어서 눈에 띄는 작품 위주로 담았습니다.

▲ 유헌걸 작품

▲ 이미정 작품

▲ 우평남 '버섯 따러 가던 날'

▲ 임동식 '비단장사 왕서방'

▲ 류동현 '봄, 여름, 가을, 겨울'
신의 정원의 작품들은 작품들 마다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우평남의 작품 <버섯 따러 가던 날>은 삼베 위에 황토를 바르고 손으로 거침없이 그려나간, 독특한 그림입니다.
소재와 기법에서 자연미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두 번째로 저의 눈길을 끈 작품은 임동식의 <비단장사 왕서방>입니다.
임동식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화가의 예술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작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함이 묻어 나옵니다.

▲ 우중사색
두 번째 섹션 우중사색입니다.
2. 우중사색
두 번째 섹션, '우중사색'은 사찰과 문화유산이 많은 공주의 신앙과 민속 등을 담은 작품을 통해 공주 혹은 백제인이라고 하는 깊은 신앙심을
나타낸 작품을 선보인다. 오승현의 <우중사색> 은 3,000분의 1초의 찰나를 담아 사찰 처마와 물받이의 낙수( 落水)를 포착한 작품을 통해
선(禪)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고명예의 <덕불고>는 바위에 합장하는 스님 위로 은은히 비치는 햇빛을 통해 깊고 온화한 심성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풍경, 사색이 함께 하는 도시가 공주임을 말하려 한다.
고재선의 <매직아워>는 최근 국보가 된 오총석탑 옥개석 위에 올려진 금동탑을 조소로 재현해 낸 작품으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낸 작품이다. 박용옥의 <무령, 공산성, 창>시리즈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한 공주의 일상을 작은 화면의 연속으로
창살과 같이 만들어 4개의 화면으로 보여 준다. 김동진의 <금강철교>는 2017년 5호 크기의 금강철교 작업을 300호 대형 화면으로 현장작업 한다.
합판 위에 그려진 금강 철교의 철골 구조와 거친 선(線)에서 오는 강렬한 느낌이 공간을 압도한다.

▲ 오승현 작품

▲ 고재선 '매직아워'

▲ 박용옥 작품

▲ 김동진 '금강철교'
두 번째 섹션 우중사색에서는 첫 번째 오승현의 부처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부처의 옆 얼굴의 표정이 명암으로 명확하지 않고 얼굴에 흐르는 방울이 이슬이라고 하지만 눈물처럼 보이는 것이 이 또한 예술의 경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용옥 작품은 네 면에 작은 틀의 그림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공산성과 공주의 고택, 한옥을 창을 통해 담아 냈는데 둥글둥글한 선이 정겨움을 자아냅니다.
마지막으로 김동진의 금강철교는 공주를 오가다 자주 보는 금강철교를 그림에서 볼 수 있어서 색다른 느낌입니다.

▲ 유구와 마곡사이, 옛날 옛적에
3. 유구와 마곡사이, 옛날 옛적에
세 번째 섹션, '유구와 마곡 사이, 옛 날 옛적에'는 국내 1세대 비디오 아티스트 김해민의 작업을 통해 1945년 고향 판문점을 떠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를 찾아간 사람의 이야기이다. 유구와 마곡 등 내세와 민속 신앙의 의미를 다룬다.
강희준의 <자연물 드로잉>은 자연물이 구성한 미의 세계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삶의 수신(受信)과 경이를 발견해야 함을 전시에서 말하고 있다.
윤상원의 유화작품 <봄을 기다리며>는 한 겨울 깊이 접어든 갑사 저수지에서 본 계통산의 풍경속에 이미 봄이 깃들여 있음을
서정적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성원의 <신유 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 미술을 추구하며 만든 작품이다.
광목천에 새을(乙)자로 그린 먹 위에 하얀 골뱅이 껍질을 놓음으로써 오리가 유영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꾸미지 않는 자연환경 속으로 들어가 열린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 자연미술이 시작됨을 역설하는 작품이다.
김남수의 한지 추상작품 (Chaos-천복지재 Ⅱ)는 자연계의 현상속에서 카오스적 존재 이지만 질서와 구조물 찾아가는
추상의 형식을 제시한다. 김영욱의 철 설치조각인 <영혼이 피부에 스치는 예감>은 쇠 조각 부품이 나란히 정렬되어진 풍경을 통해
낳고 건조하며 황량한 감정으로 쇠락하는 인생에 대해 은유하고 있다.

▲ 강희준 작품

▲ 윤상원 작품

▲ 김남수 작품

▲ 김영욱 작품
세 번째 섹션에서는 우선 강희준 작품의 자연물 드로잉이 눈에 띕니다.
자연물을 이용한 작품이어서인지 작품을 볼 때 편안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바닥에 깔린 김영욱 의 철 조각들입니다.
바닥에 있는 쇠 조각들은 부품이 나란히 정렬되어진 풍경을 통해, 낡고 건조하며 황량한 감정으로 쇠락해 가는 인생을 은유 한다고 합니다.
어쩐지 작품을 보는데 낡은 쇠 조각들이 쓸쓸함을 주더니 작가의 의도하는 바가 제대로 관람자에게 전해진 듯 합니다.

▲ 무제 그 무엇
4. 무제 그 무엇
네 번째 섹션, 무제 그 무엇'은 이형우의 작업 (Untitled)를 설치하여 압도적 중량감을 갖는 자연의 잔해(나무톱밥)를 통해
자연이 갖는 숭고를 물질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김범수의 작은 조각 (무엇임 ti)는 자연과 상반되는 기괴한 몸들을 조각으로 표현한다.
박정선의 은 해와 달과 별의 순환, 숯이 되어버린 나무를 통해 우주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말한다.
염문선의 <상상시리즈>는 일정 규격의 종이 위에 철필로 그린 인체드로잉 부조 형상을 통하여 인간형상의 순환도를 만든다.
윤여관의 작품 <고통보다 더 큰 공간은 없다>는 파불로 네루다의 시를 인용한 작품으로 아들을 껴안고 손으로 얼굴을 묻고 있는 아내와
등을 반대로 굽힌 채 좌절감에 사로잡힌 남편, 종이배를 들고 있는 아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태와 질감, 주제를 표현하는 진실한 감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정연민의 <만리장성 입술로 선긋기>는 만리장성에서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으로 먹을 입으로 머금어 선을 그음으로써
만리장성이라는 힘의 연속, 그리고 지성의 도구가 몸으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한계 등을 나타낸다. 자연 앞에 미세한 힘인 인간 행위의 무모함과
좌절을 나타낸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 이형우 작품

▲ 김범수 작품

▲ 염문선 작품

▲ 윤여관 작품
마지막 섹션에서는 윤여관 작품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리며 아이를 안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세계에서 비극과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류사적 염원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작가의 작품 의도를 읽어보고 얼마나 거룩한 작품인지 작품을 보면서 느끼고자 했습니다.
하나 더 김범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김범수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가 막스에른스트의 콜라주소설 『백 개의 얼굴을 가진 여인』에 실린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 사진으로 제작한 연작 이라고 합니다. 신체의 부분과 다른 무엇과 결합하여 기괴한 모습을 연출합니다.
이는 그로테스크한 대상이 주는 강렬한 시각적, 정신적 경험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전시관을 한 바퀴 관람하고 나오니 눈과 마음이 충만된 느낌입니다.
버섯 따러 가던 날, 멧돼지 가족을 만난 작가의 작품부터 신의 정원을 지나 우중사색을 하고 유구와 마곡사이, 옛날 옛적 그때도 엿보면서
무제 그 무엇인가를 찾아 돌아본 전시회였습니다.
내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 이런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습니다.
충청남도에 전시회 소식이 있으면 또 달려가야겠습니다.
아트센터 고마 컨벤션홀
○ 주소: 충남 공주시 웅진동 347
○ 전화: 041-852-6038
○ 전시: '버섯 따러 가던 날, 멧돼지 가족을 만났다'
○ 기간: 2025.7.24.(목)~9.7.(일)
* 취재일: 2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