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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산 보석사에서 다진 호국 가치의 재발견

“선장무예는 호국 정신 실천하는 국민무예”

  • 위치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1
  • 등록일자
    2025.08.11(월) 21:33:08
  • 담당자
    홍경석 (casj007@naver.com)
  • 제1회 선장 무예 수련대회 참가자 기념촬영

    ▲ 제1회 선장 무예 수련대회 참가자 기념촬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년) 전국 시대가 끝난 도요토미 정권 치하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발발하여 1598년(선조 31년)까지 이어진 전쟁이다. 두 차례의 침략 중 1597년의 제 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전쟁의 결과로 조선은 경복궁과 창덕궁 등 소중한 궁궐이 소실되었고, 인구는 최소 100만 명 이상 감소했으며, 경작지의 2/3가 소멸했다.


    보석사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 사진

    ▲ 유비무환은 만고불변의 이치입니다


    임진왜란은 7년간 지속되면서 조선 사회에 실로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수십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인재의 양적, 질적 피해 또한 참담한 수준이었다. 또한 전쟁의 여파로 조선은 각종 제도가 붕괴되고 경제 역시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전쟁 중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되거나 소실되어, 조선의 문화유산에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 이처럼 사상 최악의 국난을 맞았을 때 조선 정부의 정규군 외 뛰어난 활약을 보인 집단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승병(僧兵)들이었다.


    잔디 마당에서 수련하는 모습

    ▲ 평소의 수련이 훗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전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서산대사(휴정)를 불러 불교를 통해 왜적을 막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서산대사는 전국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병을 모아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활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규대사 역시 임진왜란 최초의 승병장으로 불리며,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었다.


    마당에서 연설을 듣는 모습

    ▲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조헌 의병군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공략하고 수복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 조헌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1만 5천여 명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던 승병들의 헌신은 지금도 우리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부분으로 기억된다.


    목검을 들고 수련하는 모습

    ▲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보석사(寶石寺)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산 5번지에 위치한 진악산에 있는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들이 사용했던 전통 무예 ‘선장무예(禪杖武藝)’가 일제강점기 단절 이후 100여년 만에 부활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민족무예연구소(소장 오노균 교수)의 주도로 8월 10일 충남 금산 진악산 보석사에서 ‘제1회 선장무예 수련회’가 열렸다.


    처마 밑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 장곡 스님의 덕담을 청취하며


    선장무예는 대나무 선장을 활용한 호신·자기방어 기술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전장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1910~1945) 이후 명맥이 끊겼다고 한다.

     

    이번 수련회에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온 20여 명의 무술 사범과 수련자가 참석했다. 오전에는 오노균 교수의 직접 지도 아래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서 기본기와 응용 기술 수련이 진행됐으며, 이후 보석사 마당에서 단체 시연이 펼쳐졌다.


    보석사 입구 은행나무

    ▲ 보석사 입구 은행나무


    보석사 경내 석등 앞에서는 단체 기념촬영과 함께 보석사 주지 장곡 스님이 선장을 전달하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장면도 연출됐다.

     

    장곡 스님은 “영규대사가 임진왜란 전 수련했던 보석사에서 역사적인 선장무예 첫 수련회가 열린 것을 환영하며, 선장무예가 호국무예로서 큰 의미를 지닌 만큼 앞으로도 적극 후원하겠다”며 “내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1박 2일 수련회 장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천년 나이 은행나무의 위상이 새겨진 바위

    ▲ 천년 나이 은행나무의 위상을 알려주는 묵직한 바위


    오노균 교수는 “선장무예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며 호국과 선(禪)의 정신을 실천하는 국민무예”라며 “앞으로 전국 보급과 국제무예올림피아드를 통한 세계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선장무예 창시자인 오노균 교수의 도복을 입은 사진

    ▲ 선장무예 창시자인 오노균 교수



    ‘제1회 선장무예 수련회’

    충남 금산 진악산 보석사에서 

     * 취재(방문)일 : 202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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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보석사 호국가치 재발견 선장무예 호국정신 실천하는 국민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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