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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주 정안] 김옥균선생유허와 유유히 흐르는 정안천

물길따라 역사를 품은 정안 기행

  • 위치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 등록일자
    2025.08.07(목) 22:08:47
  • 담당자
    앤 (hma0503@naver.com)
  • 김옥균선생유허와 유유히 흐르는 정안천

    역사를 품은 맑은 정안 기행


    이름도 맑고 평안한 정안입니다.

    제가 다른 이름으로 개명한다면 정안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번 취재는 더운 여름이라 우선 공주 정안에 있는 광정리에 있는 물가를 찾아보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external_image ▲ 정안천

     

    여름 더위에도 천천히 걸으며 흐르는 천을 바라보며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풍족해지는 기행입니다.

    더불어 정안에 있는 마을들을 둘러보며 유적지도 함께 의미있는 시간으로 취재해보겠습니다.

    정안리에 들어서자 벌써 유적지가 보입니다. 국도변에서 김옥균선생유허까지 약 150m의 거리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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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도의 김옥균선생 유허 이정표

     

    김옥균 생가지 이정표입니다. 

    이번 기회에 역사 기행도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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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선생 생가지 가는 길


    김옥균 선생의 삶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너무 많아 개인적인 의견은 묻어두겠습니다. 

    그저 아프고 치열했던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모두가 나라를 위하고자 했던 한마음에서 발현된 일들이라고 생각하렵니다.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였기에 그 숭고한 삶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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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선생유허

     

    참고로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의 김옥균 생가지를 비롯해서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의 김옥균묘 모두 1976년 12월 6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김옥균선생유허 일대는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아있다. 그러나 김옥균이 태어난 곳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인근의 김옥균 생가 터와도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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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선생 2021년 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 안내문

     

    金玉均 1851-1894

    김옥균은 정안면 광정리 감나무골에서 태어난 조선의 개혁을 꿈꾼 개화사상가다. 본관은 안동, 자는 백은, 호는 고균 또는 고우다.

    • 감나무골: 김옥균이 6세까지 살던 생가지로 김옥균 선생의 생애비가 있다. 화재로 인해 모두 없어졌다. 1976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김옥균 선생 유허'로 지정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김옥균은 22세이던 1872년 고종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0여 년간 사헌부. 홍문관. 사간원 등의 주요 요직을 거치는 등 30세 이전에 중견관료로 자리를 굳혔다. 당시 조선에서는 근대문물과 제도를 수용해 근대화를 추구하는 개화사상이 발달하고 있었는데, 김옥균 역시 1869년 박규수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 박규수 : 북학파의 거두인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사상의 시조격인 인물. 개항의 필요성을 일찍 깨닫고 선진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였다. 1884년 싱-프 전쟁에서 청군의 패배가 지속되자 때를 틈타 조선을 근대적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목적으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나 청군의 무력개입과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지 못해 3일 만에 끝나고 맡았으며, 정변 실째 이추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894년 조선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청나라의 이흥장을 만나기 위해 청나라로 떠났지만 이홍장을 만나기 전 상하이에서 근왕주의자 홍종우에게 피살되었다.

    김옥균은 그가 죽고 이듬해 갑오개혁으로 개화파 내각이 들어서면서 죄가 사면. 복권됐으며, 1910년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고 충달공의 시호를 받았다.

    공주시는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나 조선을 개학하여 부국강생을 이루고 외세를 물리치고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김옥균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 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다.[출처: 김옥균선생유허에 있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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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균 김옥균선생 추모비

     

    위키백과를 검색해보니 김옥균선생(金玉均, 1851년 2월 23일~1894년 3월 28일)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 사상가, 급진개화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장원급제를 할 만큼 인재 중 인재였고 급진개혁파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삶은 개척과 난관, 그리고 암담한 암살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삶의 여정이었네요.

    누군가의 삶이 개척과 혼란, 그리고 삶의 마지막이 암살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선택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잠시 사족의 사색을 해보았습니다.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872년 문과 장원급제 후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고, 충의계를 조직해 개화 사상 확산에 힘썼으며, 동남제도개척사 겸 관포경사에 임명돼 울릉도와 독도를 개척해 훗날 한국의 영토를 개척했다. 임오군란 후 일본식 급진 개혁을 주장했으나, 양무 운동식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외척 민씨 세력에 번번히 발목을 잡히다 못해 갑신정변을 일으켜 조선을 임시적으로 손아귀에 쥐었다. 얼마 안되는 병력 부족으로 청나라의 개입에 막혀 3일 만에 실패했으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청일 전쟁의 발발 직전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됐다(김옥균 암살 사건). 조선으로 송환된 시신은 부관참시 후 8도에 효수됐다. 청일 전쟁 때까지 중일 두 강대국의 사이에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존재는 늘 모호한 존재였으며 동양 3국 어디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후일 개화파가 집권한 뒤 복권됐고 일제 강점기 순종에 의해 충달공(忠達公)의 시호가 추서됐다.[출처: 위키백과]

     

    김옥균선생유허 국가유산金玉均先生遺墟

    ○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번지

    ○ 지정일: 1976년 12월 06일

    ○ 지정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시대 조선

    ○ 크기 면적 2,473㎡ (생가)

    ○ 관리단체: 공주시

    ○ 개방: 무료 상시 개방

    ○ 주차: 주차공간 별도 없음

    ※ 취재일: 2025. 8.5.

     


    이제 정안천을 찾아 발길을 옮겨보겠습니다.

    광정리 마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시 후 광정교가 보이네요.

    광정교를 건너가기 전 물길이 너무 좋아서 먼저 물길을 따라 들어가 보겠습니다. 식당도 하나 보입니다. 

    식당이름은 들마루 오리전문점입니다. 식당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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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안천 물가의 자전거 풍경


    방문객이 있네요. 

    버드나무 아래 세워 둔 자전거의 풍경이 여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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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안천 


    물은 맑은데 더위에 이끼가 많아 선뜻 들어갈 수는 없고 물길 감상을 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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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안천 물가의 식물들


    물길따라 이미 밤꽃들은 지고 초록빛 밤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밤나무 곁에 피어있는 고상한 분홍색 꽃나무를 보니 자귀나무입니다.

    나팔꽃은 뜨거운 태양에 잠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길거리에 노란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external_image ▲ 정안천 마을 길

      

    이곳까지 왔으니 길이 있는 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았습니다.

    충분히 정안천의 이모저모를 감상한 후 광정교로 다가가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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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정교


    광정교를 지나자마자 광정삼거리에서 정안마곡사로를 향해 가보면 오른편에 정자가 보입니다. 

    정자의 한자를 보니 정확하게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팔각정이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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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정교 근처 팔각정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있었는데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사례들이 많았나 봅니다. 

    제가 방문했던 시간에도 쓰레기 더미가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깨끗한 정자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마음으로 정안천을 내려다보며 여유있는 태도로 감상하며 향유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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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창장군의 공적비

     

    류근창 장군의 비석이며 오른편 왼편으로 작은 안내 비석이 있습니다.

    오른 편 비석은 글자들이 흐릿하기도 하고 한자가 너무 많아 정확히 읽지를 못했습니다.

    반면 왼편의 비문 안내문은 가까스로 읽어보았습니다.

    띄어쓰기가 없어 그대로 기록해볼께요.


    류근창장군의공덕비이건헌성광명비문


    류장군은백제고도공주에태어나광복후에국방의긴요함을절감하고군에입대하여625전란에혁혁한공을세우고전역하여서는국방차관과보훈처장을역임한삼성장군으로특히애향심이투철하여차령산맥험준한정안에서마곡유구신풍을거쳐청양대치면까지산업도로를성취시켜그고장사람의숙원사업을성취시켰다이에공덕비를사곡운암리마곡사입구도로변협잡한곳에세워보기에도민망하고좌대도훼손되어이에정안면민과출향인사의헌성으로정안면광정리팔각정옆전망좋은곳에거북좌대로바꾸어이건하게되어헌성인사의광명을이빗돌에새겨서장군의공덕과같이꽃다운명성을오래도록전하는바이다

    서기 2004년 5월 12일 추진위원회원 일동


     공주의 효도권장비도 있습니다.

    효도를 많이 많이 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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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의 효도권장비

     

    이번 취재를 마치면서 여름 휴가지의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고 이런 시기에 우리들의 시민의식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을 위해 모두 모두 자신의 쓰레기는 되가져 오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권장드립니다!!

     


    공주 정안천 광정교

    ○ 주소: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정안중앙길

    ※ 취재일: 2025.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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