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소년 축구팀 지도자 권오성 감독
초등학교 5학년 때 품은 축구선수의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과 ‘시험에서 평균 95점 이상’이라는 약속을 했던 소년이 있다. 약속을 지킨 그는 축구 명문 계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중학교에서는 팀 주장을 맡아 전 경기 무패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중3이라는 어린 나이에 축구의 본고장 스페인으로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선수로서의 한계를 인정한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택해 현재 UEFA 자격증을 취득하며 스페인 현지에서 유소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5일, 충남 서산시 '서산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 권오성 감독(23)을 한 카페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스페인 'C.D Canillas'팀에서 선수 활동 사진
부모님과의 95점 약속, 그것이 축구 인생의 시작
-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시절 충남 대전 영재교육원 활동을 통해 운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후 서산 할렐루야 유소년 축구팀에서 취미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왼쪽 윙 공격수로 활동하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게 너무 즐거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진심 어린 꿈을 품게 되었고, 부모님께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축구를 멈추지 않는 제 모습을 보시고 ‘시험에서 평균 95점 이상을 받으면 전학을 허락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켰나?
"물론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약속을 지켰다. 결국 저는 서산서동초등학교에서 당진에 위치한 축구 명문 계성초등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다. 축구부에 들어간 이후 축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진심으로 잘하고 싶은 인생의 목표가 됐다."
- 중학교 시절 인상 깊은 경험이 있다면?
"중학교는 경기도 부천 여월중학교에 진학해서 사이드백 포지션으로 활동했다. 2학년 때 팀 주장을 맡게 되었는데, 주장은 경기만 잘한다고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 팀원 간의 갈등을 조율하고, 후배들을 챙기며, 감독님과 팀 사이의 소통을 이끌어야 했다.
솔선수범하는 태도와 책임감으로 팀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 팀은 전 경기 무패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며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고, '리더십과 팀워크가 승리를 만든다'는 중요한 가치를 체득한 소중한 기억이다."

▲ 스페인에 도착 후 첫번째 팀이었던 'CF Can Vidalet'에서 감독님과 함께
중3 나이에 홀로 스페인 유학... 'Hola'만 할 수 있었던 첫날
- 중학교 졸업 후 스페인 유학을 결심했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더 큰 무대에서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축구의 본고장인 스페인에서 배우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님을 설득하여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고 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언어도 되지 않았다.
입학 첫날 교실에 들어가 친구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저 ‘Hola’와 제 이름뿐이었다. 처음엔 K-POP 인기로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가 크다보니 큰 장애물이 됐다.
어느 날은 학교가 쉬는 날이라는 것도 몰라 혼자 등교했다가 돌아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축구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님의 전술을 이해하거나 팀원들과 소통하는 데 언어 장벽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 첫 성인팀인 'C.D Canillas'에 있었을 때 사진
-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문득 한국에서 날아왔는데 기껏 언어 장벽에 무딪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가족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인터넷과 자료를 찾아가며 독학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언어 실력을 끈기 있게 키워 나갔다.
사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스페인 입성 시부터 문제가 있었다. 출국 전부터 에이전시가 약속한 여러 조건들과 달리, 도착 후 몇 개월 동안은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은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해야 했다. 약속된 언어 학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집에 홀로 남아 막막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 유학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겠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경기를 뛰지 못했을 때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FIFA 미성년자 유소년 규정 때문에 약 2년 반 동안 정식 리그 경기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비공식 경기들만 소수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1년에 다섯 경기 이상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훈련만 했다.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선수로서 어떤 팀들에서 활동했나?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여러 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CF Can Vidalet에서 시작해서 UCD La Cañada Atletico, CF Sant Gabriel을 거쳐 2021년에는 CD Canillas에서 뛰었다. 이때 팀이 스페인 마드리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에는 UD Adarve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저는 주로 왼쪽 사이드백 포지션으로 뛰었다"

▲ 선수생활 마지막 팀 'U.D Adarve'에서 리그 마지막 8경기 연속 8연승 승리 했었을 때 찍은 사진
선수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도자의 길 선택
- 선수에서 지도자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매일 성실하게 훈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냉정하게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하게 됐다. 더 빠르고 강한 선수들과 경쟁하며 현실의 벽을 실감했고, 체력적·기술적 한계 앞에서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나에게는 경기 외적인 시야와 팀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 선수 개개인의 특성과 흐름을 읽는 감각이 강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그라운드 안이 아니라 밖에서 팀을 이끈다면 어떨까?’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됐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2023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AD Villaviciosa de Odón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23~2024 시즌에는 카테고리 알레빈(10-11세) 팀 코치로 시작했고, 현재 2024~2025 시즌에는 벤하민(8-9세) 팀 감독과 알레빈 팀 코치를 동시에 맡고 있다.
아울러, 자격증도 단계적으로 취득해 나가고 있다. 이미 Nivel 1(UEFA B 감독 라이센스)과 Nivel 2(UEFA A 감독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현재는 Nivel 3인 UEFA Pro 심화 감독 라이센스 취득 과정 중이다. 이 자격은 유럽 내 프로팀 코치 활동까지 가능한 최고 수준의 국제 공인 라이센스다."

▲ 세계적명문 스페인 프로팀 '레알마드리트'팀 경기 감독으로 참여, 유소년들과 함께
한국과 스페인 유소년 시스템의 차이를 체감
- 스페인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특징은 뭔가?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구조적인 철저함과 경쟁의 치열함이다. 만 7~8세의 Pre-Benjamín 카테고리부터 프리시즌을 진행하고, 한 해 최소 30경기 이상을 치르며 실전 감각을 키워 나가고 있다. 리그 내 승격·강등 시스템까지 적용되어 있어서, 어린 나이부터 경쟁 속에서 목표의식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 한국 시스템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유소년 시절 리그와 대회를 통틀어 연간 30경기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경쟁보다는 경험 위주의 시스템이 중심이다. 실전 감각과 경기 적응력에서 점차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체감했다."
멘토가 되고 싶다는 권오성 감독

▲ 후배들에게 '시행착오 줄여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권오성 감독
- 앞으로의 목표는?
"최근에도 많은 어린 유소년 선수들이 스페인 유학을 꿈꾸며 도전하는 모습을 본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왔지만, 직접 겪어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고 복잡했다. 언어, 문화, 환경, 시스템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저는 단순히 기술과 전술만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스페인 유학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멘토로서 후배들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특히, 스페인 최고의 리그에 도전하고자 한다. 물론 감독으로서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또 더 적은 실책과 시행착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일이라 본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 한국의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한 제언과 함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에겐 실전의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스페인처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리그 시스템을 갖춰서 아이들이 더 많은 경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면,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맞춰가며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인생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고 싶다.
나아가, 스페인에서의 모든 경험이 저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을 상기하며, 앞으로도 한국과 스페인을 잇는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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