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특성, 관점에 맞는 이름들 허다
이름값 걸맞는 삶인지 때때로 살펴야

봄철 꽃대궐을 이뤘던 유명한 꽃들은 이제 거의 다 졌지만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다. 그중에 때죽나무도 있는데, 얼마 전까지 초롱 모양의 흰 꽃을 피웠던 때죽나무는 이제 가지에서 희고 향긋한 꽃을 다 떨군 듯하다. 영어 이름이 Snow Bell인 때죽나무, 공원에 피어있는 꽃이 하도 예뻐서 꽃검색까지 해서 알게 됐는데, 특이한 이름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었다. 열매의 독성 때문에 열매를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고 해서 때죽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때죽나무처럼 공원 등지의 조경수로 많이 볼 수 있는 산딸나무는 때죽나무보다 조금 늦게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초여름의 숲과 공원을 환하게 밝히는 산딸나무는 가을에 익은 붉은 열매의 모양이 산딸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금 한창 도심의 공원이나 도로변을 노랗게 물들이는 금계국도 이름에 대한 얘기가 있다. ‘여름 코스모스’로 오해받는 금계국은 우리 토종 식물이 아닌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국화과 식물인데, 한자어인 금계국이란 이름은 꽃색깔이 황금색 볏을 가진 관상용 닭 ‘금계(金鷄)’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꽃이나 식물의 이름은 생긴 모양이나 특성에 따라 붙여지곤 한다.
이름에 대한 또 다른 얘기를 해보면,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자동차나 커피, 화장품 브랜드 이름으로 클래식 음악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클래식 용어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 때문에 브랜드명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은데, 먼저 자동차 이름으로 잘 알려진 ‘소나타’가 있다. 소나타는 '연주하다(sonare)’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곡을 뜻하는데, 장르를 나타내는 소나타라는 말은 빨랐다가 느려지고, 다시 빨라지는 3악장의 음악 형식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빠르게도 달렸다가 느리게도 움직이는 게 자동차인 만큼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때마다 디자인이 바뀌어도 ‘소나타’라는 이름의 자동차 브랜드가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상품명이 된 클래식 용어로는 칸타타도 있다. 소나타와 다르게 칸타타는 성악곡을 의미하는 말인데,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가 남긴 수백 곡의 칸타타 중에는 ‘커피 칸타타’도 있다. 커피 칸타타는 18세기 유럽에서 커피를 즐기는 카페가 확산했던 풍조를 반영한 성악곡으로, 프리미엄 캔커피임을 어필하기 위해 ‘칸타타’라는 말을 제품명으로 썼다고 한다.
이외에도 악기 연주자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습곡을 뜻하는 프랑스어 ‘에뛰드’는 처음 화장을 시작하는 틴에이저들을 타깃으로 한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고, 아파트 이름에 들어가 있는 ‘샵(♯)’은 반음 올리라는 뜻의 클래식 기호로, 삶의 가치를 반올림한다는 의미가 담긴 브랜드명이라고 한다.
이름이란, 이렇게 어떤 것의 겉모습뿐 아니라 갖고 있는 특성, 지향하는 방향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진 이름이든, 일부러 지은 이름이든, 이름에는 나름의 의미와 의도가 있다. 이름은 또, 누군가에게 불리기 위해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김춘수의 시 <꽃> 중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쓸 당시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붙은 이름들이 제대로 붙여진 것인지 의문을 가졌고, 그에 대해 끈질기게 탐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춘수 시인이 끊임없이 생각했던 건 어쩌면 ‘이름값’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여러 이름을 갖고 산다. 이메일이나 SNS 아이디, 메신저 대화명, 각종 닉네임까지, 과연 지은 이의 의도와 의미에 맞게 잘 불리고 있는 걸까. 우리 모두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저마다의 이름값은 다 다르고, 그 이름으로 기억되는 모습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신록 짙은 이 계절, 푸른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여러 생명체들의 이름도 살펴보고, 가끔 내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