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 후 철쭉과 황매화 시즌을 지나 어느덧 장미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점점 짧아지는 봄날을 아쉬워하던 차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한동안 미뤄 뒀던 일을 감행하기 위해 공주황새바위순교성지로 향했습니다. 꽃구경이 목적은 아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영산홍 명소답게 예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공주황새바위순교성지는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황새바위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한 곳입니다. 공주 공산성 금서루(西門)에서 무령왕릉과왕릉원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충청남도공주교육지원청 맞은편에 자리해 있습니다. 3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 위쪽에 '황새바위' 표석이 세워져 있고,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예수성심상이 보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데다 이날은 방문한 목적이 따로 있었기에 예수성심상 우측에 자리한 성당을 지나쳐 위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수성심상 왼쪽으로 난 계단길을 오르다 보면 카페 몽마르트와 황새바위기념관도 있습니다. 참고로 첫 방문자나 신자인 분들은 예수성심상 우측에 있는 성당과 황새바위기념관에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 순교자 광장으로 들어가는 돌문

▲ 순교자 광장의 순교탑과 12개의 빛돌
황새바위순교성지가 방문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순교자 광장을 돌아보고 가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경건해지는 순교자 광장에는 순교탑과 열두 개의 빛돌, 무덤경당이 있습니다.
광장에 오르니, '빛 돌 12시'가 보입니다.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차고 공개 참수를 당해야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묘비석이자 십이사도를 상징합니다. 그 맞은편에는 1985년에 완공한 순교탑이 높게 서 있습니다.

▲ 순교자 광장의 무덤경당
순교자 광장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한 무덤경당은 1985년 순교탑과 함께 완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죽음과 부활을 함께 묵상하는 곳입니다. 경당 돌 문 위에는 '통고의 성모자상'이 새겨져 있으며, 방문자의 내부 출입에 특별히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덤경당 왼쪽으로는 부조의 예수님 상이 있습니다. 예수님 상 왼쪽 위의 손은 성부를, 오른쪽 위의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여 삼위일체인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 성모동산 전경

▲ 성모동산의 성모상과 기도하는 소녀상
순교자광장에서 이동한 곳은 성모동산입니다. 성모동산은 공주 황새바위순교성지에서 잠시 명상하며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꼽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슬픔보다는 따뜻함이 먼저 전해지는 곳입니다. 때맞춰 벚꽃과 철쭉 등이 예쁘게 피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대화하며 쉬어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 2025년 5월 중순까지 '2024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 주변정비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 공주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 본 공산성 금서루 일원
성모동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2024년부터 황새바위순교성지 주변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요, 공사장 한편에 서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공주 공산성 금서루(錦西樓)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일반인들이 천주교 순교자들이 공개 처형되는 장면을 공산성 올라가서 구경했다는 일화를 듣고는 '설마?'하며 믿지 못했는데, 황새바위순교성지에서 공산성 서문 일대가 또렷이 보이는 걸로 보아 나무에 가려지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듯도 합니다.

▲ 공주형무소 감시 초소(1)

▲ 공주형무소 감시 초소(2)
공사 현장 옆으로는 대나무밭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 드디어 이날의 최종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작은 창고로 보이는 시멘트 건물은 '공주형무소 감시 초소'입니다.
대나무밭 아래에는 1908년 설립된 '공주감옥'이 있었습니다. 1923년 5월부터 '공주형무소'로 불리다가 1962년 '공주교도소'로 개칭되었습니다. 1978년 9월에는 지금의 금흥동으로 이전하였고, 이후 최근 몇 년 전까지 '공주교도소'보다는 사진 예쁘게 나오는 은행나무길 명소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 공주감옥· 형무소 터 표석

▲ 공주여자중학교에서 바라본 공주형무소 감시 초소
현재 공주감옥· 형무소의 흔적은 감시 초소가 유일한 듯합니다. 터를 알리는 작은 표석이 세워져 있지만, 관심 있게 살피지 않으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공주감옥은 정문이 동쪽으로 위치했으며 청사와 기결감, 여감은 동서 방향으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남쪽에는 구치감, 병감,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주형무소 담장 밖 정문 앞에는 사무소가 있었고, 그 남쪽에는 직원 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쪽 작은 동산에는 형무소장 관사가 있었는데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한참 전에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공주형무소 감시초소를 찾은 일이 있습니다. 당시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감시초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올봄 황새바위순교성지에서 겨우 확인한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공사 후에 감시초소의 존폐를 예단할 수 없기에 '늦지 않아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 십자가의 길

▲ 사제관

▲ 공주황새바위순교성지 후문의 표석
공주형무소 감시초소를 살핀 후 십자가의 길을 따라 후문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이동한 경로를 동판에 성화와 글귀를 새겨 놓은 구역입니다.
사제관을 거쳐 공주교동초등학교가 보이는 후문까지 걸어 봤습니다. 따뜻한 봄날 찾은 공주 황새바위순교성지는 방문 때마다 느끼던 두려움을 걷어가 주었습니다. 두려움이 머물던 자리에 용기가 채워져 몇 년을 미뤄뒀던 숙제를 마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짧은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은 용기를 내어 못한 일, 안 한 일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공주 황새바위순교성지>
○위치: 충남 공주시 왕릉로 118
○개방시간: 항시 개방( 주차 무료)
○입장료: 무료
○미사: 평일 오전 11시(월요일 오전 9시 30분), 주말 오전 11시
○문의: (041)854-6321~2
* 촬영일: 2025년 4월 24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