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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현충사의 가을속에서

2023.11.16(목) 15:39:59가는정(efu021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현충사 입구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충남 아산시에 세운 사당입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충무문

1967년 현충사 경내.외를 구부하기 위해 만든 정문입니다. 사당의 외부 경역임을 알리는 외삼문이라 할 수 있지요. 경역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 시설로 본전, 구본전, 유물관, 고택, 활터, 홍살문, 정려, 이면의 묘소 등이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정려

조선 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내린 현판을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걸어 두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한 정문(旌門)입니다.  
이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이완, 4대손 이홍무, 5대손 이봉상을 비롯한 충신, 8대손 효자 이제빈 이렇게 5인의 *편액(扁額)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편액(扁額) :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홍살문

궁전, 관아, 능, 사당 등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써 그 경건성을 유지하기 위한 성역임을 나타냅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충의문

현충사 내삼문. 1932년 현충사 중건 때 세워졌다가 1967년 본전이 확장 이전하게 되면서 새로 개축하여 지어졌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현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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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지금의 현충사는 현충사 성역화 추진으로 확장 이전하여 신축된 콘크리트 한옥 건물입니다. 
현재 내걸려 있는 한글 현판은 성역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현판입니다. 제 19대 임금 숙종이 직접 사액한 현판은 구 본전에 그대로 존치되어 있습니다.(아래쪽 구 현충사 사진 참조)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이순신 영정

지금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현충사에서 내려다 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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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사당 내에 노랗게 익은 모과가 여기저기서 가을 빛을 한껏 뽐냅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충무공 고택

이순신이 살았던 조선 전기의 가옥입니다. 고택은 원래 보성 군수를 지낸 방진의 집이었습니다. 이순신이 스물한살에 방진의 무남독녀 상주방씨와 혼인하여 서른두살 무과에 급제할때까지 살았던 곳이지요. 
이순신의 본가가 된 이 곳은 이순신의 후손에게 이어졌습니다. 중수 관련 사항은 확인되지 않고 안채만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대대로 종손이 살아오다가 1960년대부터 현충사 성역화가 추진되었습니다. 더불어 경내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1969년 종손이 경외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문간채 등이 변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뒤편에는 충무공의 신위를 모신 가묘(家廟)가 있습니다. 매년 충무공 종가에서는 이순신이 전사한 날인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고택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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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충무공 고택과 충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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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정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 그리고 후손들이 1960년대까지 쓰던 우물.
현재는 탐방객들이 마시는 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이면 공 묘소

이순신의 셋째 아들인 이면은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비각에 새겨진 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비각>
선조 30년, 서기 1597년 정유년 9월 16일 명량해전 뒤에 충무공은 서해를 거슬러 칠산 바다를 거쳐 고군산도에까지 갔다가 우수영으로 돌아 내려온 것은 20여 일 뒤인 10월 초 9일 이었다. 다시 몇 날 뒤 10월 14일 새벽 충무공이 꿈에 말을 달려가다가 길 아래 넘어지자 셋째 아들 면이 와 안는 형상을 보고 깨었는데 저녁에 둘째 아들 열의 편지를 받으니 겉봉에 통 두 자를 썼고 안에는 면이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놀라운 소식이 적혀 있었다. 
면은 1577년 정축 충무공이 33세 되던 해 정월에 났는데 어려서부터 인물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지혜와 용맹을 갖추었으며 말달리고 활쏘기를 잘하므로 공은 그가 가장 자기를 닮았다 하여 가장 믿고 사랑하던 아들인데 뜻밖에도 이런 소식을 들은 것이라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분하고 애통한 마음을 하소할 길이 없었다. 이 때 왜적들은 저 유명한 명량해전에서 패전한 분풀이를 하려고 공의 고향 아산으로 올라와 마을 안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었는데 면은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집에 있다가 이 소문을 듣고 뛰쳐나가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니 애석도하다 때에 나이는 21세이었다. 충무공은 아들의 슬픈 소식을 듣던 그날의 일기에 이같이 적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옳은 이친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남달리 영특하므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천지가 캄캄하다 충무공은 밤새도록 울었다 밤마다 울었다 흰 띠를 띠고 통곡했다. 공은 10여일이 지나 그달 29일에 목포 고하도로 진을 옮기고 또 다음해 2월 17일 멀리 고금도로 옮겨 가 마지막 진을 쳤다. 
어느 날이었다 공은 어슴푸레 낮잠이 들었는데 면이 꿈에 나타나 자기를 죽인 왜적이 공의 진 속에 사로잡혀 와 있음을 알려 주어 포로들 중에서 그 놈을 찾아내어 아들의 원수를 갚아 주었거니와 면은 이같이 어린 나이로 조국을 위해 생명을 의롭게 바쳤으므로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로서 이름이 천추에 전할 것이다.
- 1970년 12월   일 노산 이 은상 글 일중 김 충현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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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이순신의 장인 장모 묘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후손 묘

충무공 이순신의 3대, 4대, 8대, 10대손의 묘입니다. 
이충무공묘는 현충사에서 9km 떨어진 음봉면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 구 현충사

1707년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명에 따라 최초로 지어진 본전이자 예전에 충무공의 영정을 모셨던 사당입니다. 숙종이 직접 사액한 친필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숙종 32년에 아산 유생들의 청원으로 지어진 구 현충사는 고종 5년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충무공 종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묘소와 위토가 경매 위기에 처했고,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통해 1932년 현충사를 세웠습니다. 1966년부터 1974년에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거쳐 현재의 현충사(본전)가 세워졌으며, 충무공 탄생일인 4월 28일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돼 매년 다례 행사가 개최됩니다   
구 현충사는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排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향연 사진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로 올해 9월부터 내년 2월말까지 휴관입니다.
기념관에 전시된 주요 유물로 난중일기, 임진장초, 서간첩, 이순신무과홍패, 이순신선무공신교서, 이순신증시교지, 장검, 옥로, 요대, 도배 등 각종 무기, 거북선 모형, 유적 사진, 해전도, 거북선도 등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강한 신념과 희생정신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의 행적은 우리에게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현충사 방문은 무척 의미 있고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아산 은행나무길과 함께 현충사에 방문하시어 역사를 탐방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현충사> 
* 주    소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 운영시간 : 하절기(3월~10월) 매일 09:00~18:00
              동절기(11월~2월) 매일 09:00~17:00
              매주 월요일 휴무
* 해설시간 : 1회 10:00 / 2회 11:00 / 3회 13:00 / 4회 14:00 / 5회 15:00 / 6회 16:00
              (1시간 정도 소요. 이해가 부족한 초등학교 저학년 및 미취학 아동은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   
* 관 람 료 : 무료
* 문의전화 : 041-53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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