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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수덕여관, 수덕사 선 미술관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2023.04.13(목) 00:56:59경명(jsh_letter@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예산 수덕사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 이야기를 접합니다. 이제껏 수덕여관을 깊이 둘러본 적이 없던 터라 라디오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이응노 화백을 만나러 가는 수덕여관 여행을 시작합니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는 수덕여관에 머물며 삶의 흔적과 이야기를 남긴 당대의 예술가 3인(일엽스님, 나혜석, 이응노 화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수덕여관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는 일엽스님입니다. 일엽스님은 조선 최초 여자 유학생이자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문학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였습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3대 신여성(김일엽, 나혜석, 윤심덕)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날리던 도중 1933년에 모든 활동을 멈추고 수덕사에 들어와 만공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됩니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3대 신여성으로 활동하던 나혜석 화가가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던 나혜석 화가가 인생 불행기를 겪으면서 방황하던 중 일본 유학시절부터 교분이 깊던 일엽스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수덕여관에 머무는 동안 일엽스님처럼 비구스님이 되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수덕여관을 떠나게 됩니다. 

나혜석 화가가 수덕여관에 머물고 있을 때, 홍성에 살던 이응노 화백이 나혜석 화가로부터 그림을 배우기 위해 수덕여관을 찾아옵니다. 이능노 화백이 수덕여관과 첫 연을 맺게 된 순간입니다. 나혜석 작가가 수덕여관을 떠난 후에, 이응노 화백은 낡은 수덕여관을 인수하고 수리하면서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남은 평생에 걸쳐 수덕여관에 얽힌 삶의 흔적을 남깁니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수덕여관 일대를 거닙니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일엽스님이 수덕사에서 출가를 하지 않았다면 일엽스님-나혜석 화가-이응노 화백으로 이어지는 지금 수덕여관 이야기는 없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 을 하면서 이 일대에서 전해오는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속으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수덕여관에서 만난 이응노 유적지▲ 수덕여관 가는 길 

수덕여관 일대(여관-우물-암각화)가 이응노 유적지(충청남도 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어 이응노 화백과 수덕여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배울 수 있지만, 아쉽게도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빠져 있습니다. 
이응노 화백이 어떻게 해서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고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정보가 없어 마냥 아쉽습니다. 수덕여관에 오면 나혜석 유품(캔버스와 구두), 일엽스님 유품(가사와 염주, 목탁), 그리고 이응노 화백 유품(붓과 현판, 벼루)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수덕여관이 내부 수리 중이라 다음 방문을 기약해야 합니다. 여행지가 강한 생명력을 지니는 힘은 시간 위에 켜켜이 쌓여가는 이야기에 있는데, 수덕여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정보가 빈약해 방문자가 이곳에 얽힌 깊은 사연을 다 경험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빠른 시일 내에 보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12▲ 수덕여관에 남아 있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이응노 화백 유적지에 포함되어 있는 암각화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가장 먼저 찾아보고 좋아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이응노 화백이 남긴 암각화를 직접 관람하고 수덕사 선 미술관이 소개하는 암각화 이야기를 보고 듣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암각화가 우리 근현대사 아픔이 오롯이 담겨있는 현장임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근현대사 이념 논쟁으로 대한민국이 오롯이 품지 못한 인물이 여럿 있는데, 알고 보니 이응노 화백 역시 그중 한 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응노 화백이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사면된 후이곳에 머물다가 문자 추상화를 바위에 새긴 암각화 2점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후 자신이 작품활동을 했던 프랑스로 영원히 떠나게 됩니다. 이응노 화백 생전에 사람들이 이 암각화에 대해 물어보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대답 속에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흑과 백으로 무 자르듯이 편을 나눠야만 했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의 아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과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23▲ 수덕여관과 수덕사 선 미술관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암각화 이야기 


수덕사 선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고암 이응노 화백 작품을 만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수덕사 선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이응노 화백 작품 정보가 하나도 없어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에서 이응노 화백이 그린 그림을 만나는 그런 묘한 순간입니다.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이응노 화백이 어떤 작품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현재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 어떤 작품들인지 소개란이 있다면 더 깊이 교감을 나누면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마냥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사전 정보 없이 오롯이 제 느낌과 감각에 의지해 그림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저 나름대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23▲ 수덕사 선 미술관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작품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해 수덕여관-수덕사 선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고암 이응노 화백 인물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수덕여관을 계속 거닐면서 이곳에 찾아온 봄기운도 만끽하고, 오늘 느낀 여운을 저 나름대로 곱씹어보
는 시간을 갖습니다. 수덕여관 보수작업이 끝나는 대로 이곳에 흔적을 남긴 일엽스님, 나혜석 화가, 이능호 화백 유품도 관람하고, 홍성에 있는 이응노의 집도 방문하면서 고암 이응노 화백을 만나는 여행 일정을 계속 이어가 볼까 합니다. 

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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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 여행길에서 만난 고암 이응노 화백 이야기 사진▲ 고암 이응노 화백을 만날 수 있는 있는 수덕사 여행길 - 수덕여관과 수덕사 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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