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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회 조직하고 농촌계몽 앞장

대한의 청년, 윤봉길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2022.07.19(화) 13:44:06도정신문(deun127@korea.kr)

월진회기.

▲ 월진회기.


6) 월진회를 창립하다

윤봉길은 야학을 운영하면서 한편으로 농민의 경제 자립을 위하여 농민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부흥운동을 펼쳤다. 

처음에 시작한 것이 목계(沐溪)농민회로 1927년 3월에 조직되었다. 목계농민회에서는 두레 정신을 바탕으로 공생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마 재배법을 개선하고 양잠 및 부업을 권장하였으며, 부업 장려 방안의 하나로 축산을 적극 권장했다. 이때 ‘수내제도’라고 하는 특별한 방식을 이용하였다. 

수내제도란 돈이 없어 돼지를 살 수 없는 농민에게 돼지를 사주고 새끼를 낳으면 그 절반은 기른 농민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농민에게 한 마리씩 주는 제도를 말한다. 

농민회에서는 이외에도 공동구매조합을 만들어 운영하였는데 농산물을 공동으로 판매하고, 일용품이나 비료 등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목계농민회의 농민운동은 월진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윤봉길은 1929년 4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사에는 정종갑, 정종호, 고문에는 윤창의 등이 선임되었다. 

윤봉길은 월진회의 기를 제작하였는데, 흰색 바탕에 3줄의 청색을 가운데에는 무궁화 꽃을 넣어 백의민족과 삼천리 금수강산, 그리고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을 담았다.  

월진회의 주요 사업은 농촌부흥운동이었다. 

이를 위하여 목계농민회에서 실시하던 농가부업 장려와 공동판매 등의 사업을 계속하였다. 월진회에서는 저축증대 사업도 실시하였다. 월진회의 규약에 의하면 매월 14일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회원은 40여명에 달했는데, 매월 10전씩 저금을 하도록 했다. 납부한 회비는 고덕금융조합 삽교출장소에 저금하였다. 또한 강연회를 통해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는데 강연은 주로 윤봉길이 했다. 월진회에서는 회원들의 체력 향상을 위하여 수암체육회를 발족하였다. 

윤봉길은 회장이 되어 마을 청년들과 함께 수암산 기슭 냇가 근처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운동장을 만들어 축구를 비롯한 각종 운동을 하였다. 체육회는 체육 활동을 통하여 체력 향상만이 아니라 회원 간의 친선 도모와 협동심 배양, 나아가 청년의 패기와 야망을 키우는데 목표를 두었다. 

월진회는 윤봉길의 망명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재조직되어 현재 일본, 대전, 광명, 논산 등 각지에 지부를 두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농민회 조직하고 농촌계몽 앞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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