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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짜내려간 씨실과 날실의 역사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07.05(화) 22:18:15도정신문(deun127@korea.kr)

‘베틀 짜는 여인’ 동상

▲ ‘베틀 짜는 여인’ 동상



죽어서 차려입는 마지막 입성이 삼베옷에 있다면, 살아있는 동안 멋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옷맵시는 모시옷에 있지 않을까. 삼베옷은 누구나 한 번은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모시옷은 살아생전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한산 세모시 한 필 가격이 백만 원을 훌쩍 넘으니 세공비용까지 친다면 여름 옷값이 무려 수백만 원이나 하기 때문이다.

한산 세모시는 곧잘 ‘잠자리날개’로 비유되곤 한다. 세모시옷을 입는 것은 우리 몸에 가볍고 투명한 잠자리날개를 두르는 일이다. 세모시옷을 입는 것은 또한 바람을 입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탁월한 통기성을 자랑한다. 세모시옷은 한여름의 습기로 눅진해진 신경세포에 포슬포슬하고 깔깔한 질감을 선물하기도 한다. 사치의 값이 거기에 다 들어 있다.

그러나 가내 수공업적 직조 공정을 알면 마냥 비싸다고만 할 수 없는 옷이 모시옷이다. 세모시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고운 실로 짜내려간 직물이다. 모시나무를 벗겨 머리카락 같은 실을 만들고, 그걸로 옷감 한 필을 짜는 데 4000 번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고 한다. ‘모시 한 필에 침이 서 되, 땀이 서 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한산 세저는 피와 고통의 서사시라 해도 결코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서천을 빠져나와 한산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모시옷을 제작하는 전 과정을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모시옷이 품은 1500년 전통의 맥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만한 이유가 시각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이곳에서 나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맛’뿐만 ‘옷’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문득 한 시인의 시집을 떠올린다.

이곳 시초면에서 나고 자란 구재기 시인의 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는 또 하나의 모시박물관이다. 화학섬유는 다 제껴 두고 온통 모시로만 지어낸 시집이니 그야말로 문자로 재현된 기념관 아니겠는가. ‘째고, 삼고, 날고, 매고, 짜기’에 ‘이골이 난’ 시인의 어머니와 누이들의 눈물이 선하다. 생의 마지막에 차려입는 삼베옷에도 눈물이 그렁거리지만 모시옷을 짜는 씨실, 날실에도 눈물이 맺혀 있다. 모시옷이 강한 속건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거기 배어 있는 눈물은 쉽게 마를 리 없다.
/윤성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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