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정책/칼럼

정책/칼럼

충남넷 미디어 > 도민의 눈 > 정책/칼럼

백마강변의 시인 신동엽 생각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06.15(수) 15:52:19도정신문(scottju@korea.kr)

신동엽 시비

▲ 신동엽 시비



시인 신동엽(1930~1969)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역사의 복판을 짧지만 굵고 무겁게 살다간 사람이었다. 

1959년 등단한 이래 그가 시인으로 산 10년은 흔들림 없는 전사(戰士)의 삶이었다. 세상의 ‘껍데기’와 싸운 투사였고, 시대의 ‘쇠붙이’와 맞선 전사였다. 시인의 무기는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그 연필은 날카로웠고 그 종이는 질겼다. 

시인은 백지 위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구축했고, 도도하게 굽이치는 금강의 역사를 기록했다. ‘아니오’, ‘산에 언덕에’,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써서 세계의 어둠과 거짓에 대항했다. 그의 시들은 60년대를 치열하게 건너도록 안내하는 꺼지지 않는 전광판이었다.

수레의 두 바퀴처럼, 자신과 함께 60년대의 어둠에 독화살을 날리던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자 그는 이렇게 추모했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민족의 손실, …… 가슴 아픈 손실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그로부터 1년도 못 돼 간암을 선고받고 불과 한 달 만에 숨을 거둔 신동엽에게도 그대로 돌려져야 옳았다. 우리 문학사는 그때, 시대의 어둠을 밝히던 두 별을 고스란히 떠나보냈던 것이다. 

추모 글에서 신동엽이 했던 말, “그러나 시인 김수영은 죽지 않았다.”는 선언 역시 똑같이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시인 신동엽은 죽지 않았다.”

지금도 살고 있는 신동엽의 시비를 만나러 백마강변에 다다른다.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뒤 ‘신동엽 시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구상)를 구성하고, 문인, 동료, 제자 등 100여 명이 비용을 모아, 1970년 4월에 건립한 시비다. 반세기가 넘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보는 탓인지 시비 주변이 옹색하고 조악하다. 

그나마 주변 소나무 뒤로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감지덕지다. 시인이 얼마나 염원하던 하늘이던가. 시인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마음속 구름을 닦고 머리 덮은 쇠 항아리를 찢어야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마음속 구름을 충분히 닦고 있는가.
/윤성희(문학평론가)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