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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번째 백의종군(白衣從軍)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2022.06.07(화) 13:56:06도정신문(scottju@korea.kr)

이순신백의종군로

▲ 이순신백의종군로



조정의 명령을 어겼다며 파직
이순신 임지로 가던 중 모친상 
칠천량해전 패전 통제사 재임명 

정유년(1597년) 1월 초에 일본군이 부산 앞바다로 침입해 올 것이라는 정보가 일본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 요시라로부터 조선 측에 전달되었다. 일본군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가 먼저 건너오니 이들만 막으면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니시와 가토가 앙숙관계임을 알고 있는 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으로 하여금 일본군의 도해를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본군의 간계임을 알고 바로 출전하지 않았다. 사실상 출전해도 당시의 해상 환경과 수군의 작전능력을 고려할 때 일본군의 대규모 도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현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출전을 강요한 것이다.

결국 일본군은 1월 13일 부산 다대포에 상륙하였고, 선조는 일본군의 도해를 막지 못한 이순신에게 책임을 물어서 통제사 직을 박탈하고 3월 4일 의금부에 투옥하였다. 선조는 이순신이 적을 치지 않아 나라를 등졌다고 하면서 사형집행을 원했으나 정탁을 비롯한 신료들의 탄원으로 석방하여 도원수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하게 하였다. 

이순신의 두 번째 백의종군은 4월 1일 출옥한 후부터 8월 3일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기까지 약 4개월 동안이었는데, 경상도 초계의 도원수부로 이동하는 기간과 도원수부에서의 활동으로 대별된다.

이순신은 이동하던 중 아산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는 간단한 장례만 치른 채 길을 떠나는 아픔을 가졌다. 연도에는 많은 관료들과 백성들이 나와 이순신의 안타까운 사정을 위로하였다. 

도원수부(현 합천 율곡면)에 도착한 후에는 주로 주요 지휘관과 소통하면서 군사자문역할을 하였으며, 둔전을 경영하는 한편 한산도의 수군 장수들과 소통하면서 수군 상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였다. 현실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미래의 직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기간 가장 슬픈 일은 7월 16일에 있었던 칠천량해전 패전 소식이었다. 사랑하던 많은 부하 장졸들이 전사하고 함께 피땀 흘려 이룩했던 전선과 군기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순신은 슬픔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도원수의 요청에 따라 수군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파직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는 다시 통제사에 임명하였다. 이순신의 두 번째 백의종군은 이순신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기간이었지만, 수군 사랑에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이 교훈으로 다가온다.
/제장명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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