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중>
▲ 한용운 선생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중>
학창 시절 배웠고 시험에도 빠지지 않았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너무나도 잘 알려진 시입니다.
님의 침묵에서 나오는 '님'은 빼앗긴 조국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으며, 애인이나 사랑하는 어떤 것이라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 만해 한용운 생가지
3월이 오면 얼었던 땅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신비를 보듯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분들이 떠오릅니다.오늘은 다 외우지 못하지만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남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지를 찾아봅니다.
▲ 만해 문학 체험관
홍성 결성면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생가지를 방문하면, 주차장 옆으로 만해 문학 체험관을 먼저 만날 수 있네요.이곳은 선생의 애국·애족·애민 정신을 기리고자 설립되었으며, 선생의 삶을 이해하고 독립 정신과 애국정신을 체험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답니다.
▲ 한용운 생가지와 사당
만해 한용운 생가지에 들어서니, 선생의 동상과 그 뒤로 생가지가 있으며, 저 멀리 사당이 보입니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75호)
1879년에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며 9세에는 신동이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하네요.
▲ 만해 한용운 생가지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선생은 시인이자 승려이며 독립운동가로의 삶을 살았습니다.3·1만세 운동 때에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동참하였고, 독립 선언문의 마지막 공약 3장을 추가해 최종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어록비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또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후 옥중에서 집필한 옥중 독립선언서인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의 첫머리에 나온 문구를 어록비에 담았네요.
선생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열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전대법륜
선생이 말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轉大法輪(전대법륜)이라는 친필 휘호가 방문 앞에 현판으로 걸려있네요.전대법륜은 큰 바퀴가 굴러간다는 말로 '거대한 진리는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라는 의미랍니다.
이 휘호의 의미처럼 기존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강화하고 월간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답니다.
▲ 선생의 방
닫힌 방문의 살며시 열고 선생의 방 한쪽을 담아봅니다.선생의 사진과 한갑동이란 분이 남긴 선생을 '謹 頌(삼가 칭송한다)'라는 글로 보이는 액자가 옆으로 걸려있네요.
▲ 만해사
선생의 영정과 위폐가 모셔진 사당으로 향합니다.▲ 만해사
깔끔한 사당의 좌우로 배롱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배롱나무 필 때면 더 환한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영정
시인이자 승려이며 독립운동가로의 삶을 살았던 선생 앞에 잠시 고개 숙입니다.▲ 전경
▲ 민족 시비 공원
선생의 생가지 옆으로 '민족 시비 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저항했던 정한모, 이육사, 김광섭, 윤동주 등의 시비가 있음은 물론이며, 근 현대사에 길이 남을 김남주, 조태일 등의 시비를 관람할 수 있네요.▲ 풀 씨 (조태일 作)
그중에 가장 아름답고 마음에 와닿았던 시 한 편을 가져왔습니다.조태일 시인의 '풀 씨'라는 시인데, 하찮아 보이지만 풀 씨의 강인한 생명력과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는 마음으로 읽고 느껴보았답니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를 방문하여 선생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후손에게 추운 겨울을 이기고 깨어나 다시 걸음 할 수 있는 터전을 지키고 남겨주신 독립운동가분들께 고마움으로 머리 숙입니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
- 소재 :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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