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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풍경, 추사의 향기 은은한 예산 화암사

2021.02.11(목) 23:34:10유병양(dbquddid8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언택트 관광지로 떠나는 충청남도 여행지를 꼽으라면 예산 화암사를 추천하고 싶다.
 
작고 고즈넉한 절 풍경,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인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가 새겨 놓은 바윗돌의 암각 서체도 만날 수 있어서다.
  
화암사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아주는 고목의 우람한 자태.
▲화암사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아주는 고목의 우람한 자태
 
예산 오석산 아랫자락에 세워진 화암사는 입구에는 이렇게 오래된 나무가 방문객을 맞아준다.
 
이곳은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인데, 그 이유는 이 절을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한신은 영조의 사위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고,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고즈넉한 풍경, 추사의 향기 은은한 예산 화암사 사진

김정희의 암각 유적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적힌 화암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 표지도 있다.
  
작고 소박한 절 풍경. 마치 시간이 멎은 듯 고요하고 고즈넉?.
▲작고 소박한 절 풍경, 마치 시간이 멎은 듯 고요하고 고즈넉하다
  
고즈넉한 풍경, 추사의 향기 은은한 예산 화암사 사진
 
작고 아담한 절 화암사 전경이 보인다. 화암사는 가까이 가 보아도 사찰 입구에 있는 요사채 때문에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있다.
    
화암사 현판
▲화암사 현판
 
화암사 경내
▲화암사 경내
 
화암사 대웅
▲화암사 대웅전
 
종루
▲화암사 종루
 
화암사 종
▲화암사 종
 
화암사는 옛 유래에 대해 많이 알려진바가 없다. 문헌에 전래되는 것도 거의 없고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채 단지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할 뿐이다.
 
화암사의 원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한다.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 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화암사에 있는 무량수각 현판.
▲추사가 남긴 화암사에 있는 무량수각 현판
 
화암사
▲화암사 원통보전 현판도 추사의 글씨다
 
추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이 있고, 누각에는 추수루(秋水樓)라는 현판이 걸렸다. 추사를 포함해 이 집안의 바깥주인들이 공부도 하고 손님도 맞는 기능을 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중간에는 원통보전(圓通寶殿) 편액이 달렸다. 관음보살을 모셨다는 뜻이다.
  
추사의 세한도.
▲추사의 세한도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린 ‘세한도’(국보 제180호)의 모사본도 화암사에 걸려 있다.
 
세한도는 추사의 제주 유배시절 내내 그를 잊지 않고 매일 귀한 서적을 구해 보내주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추사의 나이 59세에 선물로 준 서화이다. 제주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소나무가 외롭게 제주의 바람을 맞고 있는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평도 있다. 

추사가 쓴 세한도의 발문에는, “공자가 말하길 날이 차가운(歲寒) 이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추사의
▲추사의 필적 암각문은 사찰 바로 뒤 병풍처럼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법당을 돌아 뒷마당으로 가면 바위면에 반듯하게 쓴 추사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저기 추사의 암각 서체가 씌여져 있는 큰 바위가 보인다.
▲추사의 암각서체가 씌여져 있는 큰 바위가 보인다
 
추사 암각 서체가 쓰인 병풍바위
▲추사의 암각서체가 쓰인 병풍바위
 
추사가 쓴 암각 서체
▲추사가 쓴 암각서체

바위에는 해서체로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란 구절이 새겨져 있다. 천축고선생댁의 ‘천축’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고선생’이란 부처를 옛선생이라 이른 말이다. 그러니 이는 ‘부처님이 계시는 집’이라는 뜻인데 불가에의 친근함에 추사의 재치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표현이라 보인다.
  
추사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갔다가 78세의 학자 옹방강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게 되는데 스승인 옹방강의 집 대문 양쪽에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이라는 대련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대련에서 천축고선생댁이라는 문구를 떠올려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유려한 해서체로 써서 새겨 놓은 거서이라 한다.
   
예서체의 '시경'이 씌여 있는 또 다른 바위
▲예서체의 '시경'이 씌어 있는 또 다른 바위
 
추사의 시경
▲추사의 '시경'
 
단정한 예서체의 '시경(詩境)'이라는 글귀는 '시의 경계' 또는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라는 뜻으로 '좋은 경치'를 뜻하기도 한다. 옹방강에게서 받은 것이 시경 탁본이었는데, 예서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인물인 육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어디를 가는 것도 두려운 요즘, 그래도 예산 화암사처럼 사람 많지 않고 조용하며 풍경소리 가끔 들리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사찰로 편한 여행 한 번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 바로 옆에 김정희 고택과 기념관, 화순옹주 집도 있어서 조용한 여행길로는 딱 좋으므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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