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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사적 제316호)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크게 융성하였고,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자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대사찰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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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내포 가야산은 백제시대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서산, 운산, 예산, 부여, 공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초입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길목의 초입지에 위치한 보원사지는 '백제 불교문화의 특구'라고 할 만큼 백제시대 불교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현존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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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보원사지 초입에는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국보 서산마애삼존불'이, 보원사지 내에는 보물인 당간지주·오층석탑·석조·법인국사 보승탑과 비가 현존하고, 박물관에 이전해 보관 중인 금동여래입상·철조여래좌상·고려철불좌상 등이 출토된 불교문화유적의 보고이자 연구에 중요한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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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인 보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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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여래좌상·경판
소박한 법당 중앙에는 석굴암 본존불과 제작 양식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네요. 이 불상은 재현되었고, 실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불상 옆에 보관된 경판은 원래 보원사에서 판각된 것으로 전해지며 총18건 421점인데, 현재 6건 200점이 보원사에 나머지는 개심사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한반도 불교전래 초입지 보원사지 사진](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1017/IM0001639829.png)
![한반도 불교전래 초입지 보원사지 사진](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1017/IM0001639830.png)
법당 주위로 나오니 가을이 한창 익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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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보물 제103호)
당간은 절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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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보물 제104호)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든 백제의 양식을 모방한 고려석탑으로, 기단부 상단에는 팔부중상이 새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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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상 조각
팔부중상은 예로부터 인도에서 전하여 내려오던 신들 가운데 여덟 신을 하나의 군으로 수용해서 불교의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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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보물 제102호)
용현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용현천의 상류 냇가에 있는데, 그릇을 닦거나 쌀을 씻을 때 사용하였답니다. 그 크기로 미루어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생활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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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보승탑·탑비(보물 제105호·106호)
고려시대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보승탑과 그의 생애 및 화엄종이 고려왕실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내용이 담긴 보승탑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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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지
절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며, 고려 초까지는 불전을 금당이라 불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네요. 특히, 금동여래입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이 금당지 서쪽 2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의 불상으로 미루어 보원사지의 창건연대를 짐작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 불교전래 초입지 보원사지 사진](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1017/IM0001639837.png)
![한반도 불교전래 초입지 보원사지 사진](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1017/IM0001639838.png)
불교 전래의 길목이자 초입이었던 보원사지는 아라메길과 내포문화숲길로 그 길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네요. 특히 내포문화숲길 중 원효깨달음길은 수덕사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공서와 함께 진행해 온 백제의 미소길을 포함한 내포가야산의 역사를 함께하는 길로의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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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오층석탑 남쪽으로 큰 맷돌의 흔적이 보이네요. 세월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그 옛날 보원사가 융성했을 때 수많은 승려들의 공양(식사)에 일조하였으리라 느끼게 만드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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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한반도 불교 전래의 길목이자 초입이었고, 내포가야산지역 불교문화의 산 증인이 되어주기를 소망하며 보원사지를 한 번 더 뒤돌아본 그곳에는 밝은 미소로 맞아 주시던 한 분 스님의 미소가 떠오르네요. 백제의 미소처럼!
보원사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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