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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공산성의 4대문 자세히 알아보기

백제 웅진시대의 왕성 공산성의 출입문

2020.10.14(수) 06:37:43대로(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입니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문주왕 원년인 475년에 한성에서 웅진(공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공산성은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인 538년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45년간 백제의 왕성이었지요.
 
공산성 성곽
▲공산성 성곽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었습니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되었습니다.
  
성의 길이는 총 2,660m이고 동서남북에 네 곳에 문터가 확인되었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복루는 남아 있고, 1993년에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여 각각 영동루와 금서루로 명명하였다 합니다. 
 
공산성 금서루 출입문
▲공산성 금서루 출입문
 
공산성의 현재 주 출입문은 금서루입니다. 금서루로 진입하기 전에 관광안내소와 매표소, 공산성 방문자센터 등이 성밖에 있으며, 주차장은 이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따로 있습니다.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는 4곳의 성문 중 서쪽에 설치한 문루였으나, 파손되고 터만 남아 있었는데, 이후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습니다. '공산지'에 의하면 문루의 규모는 동문과 같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층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이곳 금서루 주변에서 웅진성수문장 교대식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러 몰려듭니다. 이 주변은 야경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촬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답니다. 
 
여기서부터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성곽길을 따라 북쪽 공복루 쪽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면 먼저 아름다운 금강 뷰부터 보게 됩니다. 성곽길 남쪽 진남루 쪽으로 향하면 추정왕궁지를 먼저 만나게 됩니다. 숲길을 먼저 걸을 수도 있고 공산성 안에 있는 영은사 방향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요. 공산성 내에 길이 사방으로 퍼져 있어서 서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공산성 진남루 성곽길
▲공산성 진남루 성곽길
 
성곽길을 따라 진남루로 향합니다. 공산성의 성곽길은 무척 오르내림이 심합니다. 그만큼 스릴을 느끼며 걸을 수 있으며 제법 운동 효과도 있습니다. 성곽길에는 커다란 깃발들이 펄럭이고 오래된 나무들이 볼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또한 전망이 무척 좋아서 금강과 공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지요.
 
진남루
▲진남루
 
공주 공산성의 남문(南門)으로 시내에서 공산성으로 출입하는 정문 역할을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 건물로 두 석축기단에 걸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원래 토성(土城)이던 공산성이 지금과 같은 석축성(石築城)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초기이며 이 누각 역시 그때 세워진 것이고 조선시대 삼남의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삼남지방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합하여 이르는 말로써 이 지역 사는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올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는 것이지요.
 
1947년 큰 비가 내려 누각이 유실되었는데 2년 뒤에 공주고적보전회에서 재건하였으며, 그후 여러 차례 수축되어 온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건물은 1971년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공산성 남문 진남루를 통과하여 직진하면 공산성 내에 있는 절 영은사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 영동루는 4개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밑부분 구조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턱 옆 양쪽에서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공산지'에 2층 3칸 건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동문의 누각을 복원하였습니다. 
 
영동루 주변에는 백제시대 연회장소로 쓰였다는 임류각과 정유재란 때 도와준 명나라 장수에 대한 송덕비인 명국삼장비 등이 있습니다. 
 
홍복루
▲공복루
 
공복루는 공산성의 북문으로 선조 때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좋은 예이며,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 통로의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높은 기둥을 세워 2층의 누각을 만들었는데 위층에는 누마루를 깔고, 아래층은 통로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 문루로 대표적인 이 건물은 1663년 현종 4년에 관찰사 오정위가 중수하고 송시열이 중수기를 썼으며, 지금의 모습은 1964년에 보수한 것이라 합니다. 누의 바깥쪽에는 석성이 쌓여 있으며 창건 당시 옆에 함께 지었다는 월파당은 붕괴되어 터만 남아 있습니다.
 
홍복루와 연지
▲공복루와 연지
 
공복루의 북쪽에는 금강 건너 공주시 신시가지가 보이며, 남쪽 너른 터에는 백제 웅진시대 왕궁의 부속 건물들의 터가 펼쳐져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있는 돌로 싸인 둥근 터는 연밭이 있었던 연지라고 하는군요.
 
지금까지 공주 세계유산 공산성 안에 있는 4대문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공산성 안에는 4대문 누각 이외에도 임류각, 광복루, 만하루 등의 누각이 있으며, 인조 임금이 머물렀다는 쌍수정과 추정 왕궁지 등 볼거리가 아주 많답니다.

공산성 금서루 밖에 있는 공산성방문자센터에 미리 들러서 공산성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한 후 성곽을 따라 공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산성의 자취를 살펴본다면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성곽길을 걸으면 금강을 끼고 발달한 공주시를 한눈에 볼 수가 있습니다.

단풍이 곱게 든 공산성 숲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도 마음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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