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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천명 (37) 물거품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7.03.20(월) 10:49:07도정신문(deun127@korea.kr)

천명 (37) 물거품 사진


천명 (37) 물거품 사진

영조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안으로 이는 갈등을 어떻게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인 듯 했다. 
“전하, 더 두고 보실 것도 없습니다. 이 무뢰한 놈들을 당장 처형하십시오.”
형조판서 홍치중이 눈을 부릅뜬 채 아뢰자 금부도사 김도언도 가세했다.

“맞습니다. 전하. 속히 처형하소서!”  영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쉽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형틀에 비참하게 묶인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내기까지 했다. 싸늘한 바람이 의금부 담장을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영조는 입을 열었다.

“더 분란이 일기 전에 저들을 능지처참하고 효수하라!”
영조는 자리를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의금부를 떠났다. 걸음걸이가 들어 올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당당하고 위엄 있어 보이기만 하던 그 걸음걸이가 축 쳐진 채 힘이 없었다. 어쩌면 왕이라는 자리를 신분이란 제도와 맞바꾼 것에 대한 자괴감에서 그런 것일는지도 모른다. 아니, 영조는 분명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할 수 없는 제도란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더욱 자괴감을 일게 한 것이었을 것이다. 왕이란 신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뜻도, 어머니도, 외면해야만 하는 현실에 가슴이 찢어졌던 것이다. 하늘은 여전히 무심하게 푸르렀고 바람도 시리게 차기만 했다. 영조의 아픈 가슴만큼이나 민초들의 쓰린 마음만큼이나 차갑고 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려국의 꿈은 무너졌다. 물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전하, 홍주목사 권자헌의 상소를 어찌 할까요?”
묻는 말에 영조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리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천주교인들을 인정하는 것은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도 명분이 서질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신분을 두고 말들이 많은 세상이었다. 저들의 공을 외면하면 분명 자신을 불의한 군주로 낙인찍고 말 것이다.

“그 자들은 서양귀신을 믿는 자들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전하. 허나 이번 덕산현 역모사건을 진압하는데 있어 큰 공을 세웠다하니 저들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서양귀신이라 한들 부처나 도사와 다를 게 없지 않겠습니까?”
좌유선(左諭善) 권철신이 나선 것이다. 그의 눈빛이 묘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저들의 행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하니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영조는 망설였다. 그러자 권철신은 애가 타는 눈빛으로 다시 아뢰었다.

“소문에 지나지 않는 말들입니다. 염두에 두지 마십시오.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때 가서 다시 하명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찬선(贊善) 정유량(鄭羽良)이 나섰다.

“그것은 불가한 일입니다. 군주의 명은 태산과 같아야 하는데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보기도 좋지 않을뿐더러 전하께 크게 누가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유량의 간언에 권철신은 더욱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손바닥까지 비벼대며 정유량의 말을 맞받았다.

“그렇다면 저들의 공은 어찌 할 것이오? 전하를 배은망덕한 군주로 만들겠다는 것이오?”
권철신의 항변에 정유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저들이야 적당한 핑계를 대서 회유하면 될 것이오. 저들이 믿는 서양귀신의 불손함을.”
정유량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권철신이 발끈하고 나섰다.

“불손하다니요? 어찌 그리 말을 함부로 하시오.”
영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대전에 찬바람이 불어 제켰다.

“저들은 조상을 모시지도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오직 서양귀신인 천주만을 받든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이 전하는 어찌 생각할 것이며 사직은 또 염두에 두기나 하겠습니까?”
정유량의 말에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던 집의(執義) 정호(鄭澔)가 거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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