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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천명 (23)천국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6.09.26(월) 16:41:24도정신문(deun127@korea.kr)

천명 (23)천국 사진


천명 (23)천국 사진


“행복하다니?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이 좋단 말인가?”

“아무렴요. 천주님께 마음껏 기도할 수 있어 좋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사내의 말에 이행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깊은 산속에 먹을 것도 시원찮을 테고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닐 텐데.”

“불편한 것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야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지요. 천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사내는 왼손에 쥐고 있던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려댔다. 아마도 기도를 올리는 모양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이 모두 자네와 같은 마음인가?”

“예,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굳이 이 험한 곳에 함께 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묻는 말에 판관 이행령은 자신이 무안해지고 말았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인근 내포지역의 형제자매들입니다. 배나드리에서부터 여사울, 덕산은 물론 솔뫼와 해미 그리고 멀리는 천안과 공주 땅에서도 모여들었지요.”

“서양귀신을 믿는 천주학쟁이들이 조상을 모시지 않는 것은 물론 신주까지 불태운다는 얘기를 들었네. 조정에서도, 사림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텐데.”
이행령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내가 손사래까지 쳐대며 나섰다.

“그건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하늘에는 오직 천주님만이 계시는데 어찌 다른 우상을 숭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잘못되었던 믿음을 올바르게 바꾼 것뿐입니다.”판관 이행령은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고 말았다. 너무나도 다른 생각이었다. 열변을 토하는 사내의 태도에는 정나미마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눠봤자 소용이 없을 듯 했다. 이들이 모든 것을 버린 채 이곳으로 모여든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회의적인 이행령의 중얼거림에 사내는 넌지시 설득하려 들었다.

“판관 나리께서도 마음을 달리 하십시오. 천주님을 믿으셔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다음에 천국에 드실 수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말에 이행령은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와도 같이 판관 이행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국이라?”
이행령의 허탈한 물음에는 회의와 더불어 같잖다는 의미도 다분히 뒤섞여 있었다.

“그렇습니다.”

“천국이란 곳은 대체 어떤 곳인가?”
묻는 말에 사내는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천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런 곳이지요.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며 금은보화에 산해진미 그야말로 꿈과도 같은 세상입니다.”사내의 말에 판관 이행령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닐세. 자네가 말한 대로 꿈이 아닌 진짜 천국을 말해보란 말일세.
이행령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자네가 말한 것은 자네의 말대로 꿈이 아니던가? 그런 세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꿈 말일세.”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분명 있습니다. 천주님이 계시는 천국 말입니다.”

“물론 있겠지. 허나 자네가 말한 그런 천국은 천국이 아니야. 어리석은 인간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만들어낸 가짜 세상일뿐이지.”
사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판관 이행령을 바라만 보았다.

“천국은 말일세. 그런 허황된 상상속의 세계가 아니라 깊은 잠에 빠져든 듯이 아무 생각도, 욕망도, 의식도 일지 않는 그런 세상일세.”
이행령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자네 잠을 자지 않는가?”“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자네도 매일같이 천국을 다녀온 것일세.”
판관 이행령의 말에 사내는 충격을 받은 듯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행령은 다시 찻잔을 들어 진한 가배 향을 음미했다.

“차향이 매우 독특한 매력이 있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판관 이행령은 귀를 기울였다. 공소안에서 논의되고 있을 일에 대해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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