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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미소 (59) 설득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10.02(금) 13:20:25도정신문(deun127@korea.kr)

미소 (59) 설득 사진

 

미소 (59) 설득 사진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결국 유인궤는 흑치상지에게 우무위낭장을 제수하고 백제군을 내 주었다. 그러나 흑치상지는 망설였다. 제 손으로 임존성을 허무는 것까지는 차마 양심이 허락치를 않았기 때문이다.

“장군의 배려는 익히 알겠으나 그만은 거두어주십시오. 어찌 제 손으로 부끄러운 짓을 또 하겠습니까?”
그러자 태자 융이 나섰다.

“아니오. 저들은 반역의 무리요. 백제의 태자인 내가 이곳에 있는데 어찌 저리 무엄하단 말이오. 당장 성을 나와 맞이해야하거늘 저렇게 성에 틀어박혀 시위를 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소.”
생각지 못한 태자 융의 말에 당황한 것은 흑치상지였다. 그러나 유인궤와 손인사 그리고 풍사귀의 입가에는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흑치상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여 융이 백제의 태자라는 것은 흑치상지 그대도 잘 알 것이오. 그런데 저들은 태자를 향해 칼과 창을 겨누고 있소이다. 그런 저들을 어찌 백제의 신민이라 할 수 있겠소.”
풍사귀가 나서 거들자 태자 융이 다시 거들었다.

“맞소이다. 장군은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소. 백제 재건은 임존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오. 저들을 모두 끌어안고 새로운 백제를 세우도록 합시다.”
흑치상지는 성 안에 있을 지수신과 백제의 군사들, 그리고 백성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성을 공략한다면 저들은 모두 죽음으로서 맞설 것이다. 그리고 결국 저들은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눈앞이 아득했다.

“장군의 쓰린 마음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큰 뜻을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감내해야 하는 법이오. 백제를 위해 그대의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시오. 아픔을 견뎌야 새 살을 돋게 할 수 있는 것이오.”
유인궤의 설득에 흑치상지는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저들을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유인궤는 웃었고 흑치상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려했던 일을 맡게 되자 속이 쓰렸기 때문이다.

군막을 나서자 심난한 바람이 북쪽에서 차갑게 불어왔다. 이제 가을은 막바지로 치달으며 겨울을 불러오고 있었다.

붉은 단풍이 바람에 지고 있었다. 임존성 아래로 처연하게 붉은 단풍이 찬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흑치상지는 사타상여와 함께 임존성으로 향했다. 지수신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산을 오르며 임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일들을 떠올렸다. 바로 엊그제의 일이었다. 지금의 발걸음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했다. 차라리 발길을 돌렸으면 싶었다.

눈에 익은 돌길 위에서 흑치상지는 북문 문루 위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문 문루위에 자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흑치상지는 혼란스러움으로 정신이 다 혼미했다. 그 순간 산을 무너뜨릴 듯한 호통소리가 문루 위에서 터져 나왔다.

“당나라의 개가 여긴 어쩐 일이냐? 죽음이 두렵지도 않더냐?”
호통소리에 흑치상지는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시 올려다보니 그는 지수신이었다. 흑치상지는 지난날 자신이 서 있듯이 그렇게 늠름한 모습으로 대신 문루를 지키고 있는 지수신에 모골이 다 송연해졌다. 어쩌면 부끄러운 자신은 지수신의 적수가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다 떨렸다.

“장군, 태자께서 그대를 원하고 계시오. 새로운 백제를 건설하는데 그대가 꼭 필요합니다. 제발 성을 내려와 함께 하도록 합시다.”
흑치상지는 문루에 서 있는 지수신에게 간절히 애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싸늘한 미소뿐이었다.

“돌아가라. 가서 군사를 이끌고 오너라. 나를 데려갈 길은 그것뿐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한 반응에 흑치상지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네가 알다시피 우리 군사들은 그 어떤 군사들보다도 의롭고 용맹하다. 또한 우리는 군량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지수신은 붉은 낙엽이 꽃비처럼 내리고 있는 문루 위에서 계속 소리쳐댔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살아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딱 잘라 말하는 지수신에 흑치상지는 더욱 부끄럽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지수신의 인물됨에 안타까워해야 했다. 지수신이라면 새로운 백제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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