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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미소 (53) 회유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08.06(목) 11:21:36도정신문(deun127@korea.kr)

미소 (53) 회유 사진

미소 (53) 회유 사진


붉게 물들어가는 산기슭의 단풍이 오늘 흘린 백제 싸울아비들의 고귀한 피만 같아 보였다. 흑치상지는 쓰린 가슴을 달래며 성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전투에 시달린 백제의 싸울아비들은 쉬지도 못한 채 성벽에 매달려 또 다시 돌 더미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어지고 허술했던 성벽은 가지런하고 탄탄하게 쌓여갔다. 백제를 지킬 마지막 성벽이었다. 

유인궤는 다급했다. 우위위장군 손인사가 또 다시 패하고 임존성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기 때문이다. 신라군에 큰소리를 쳤건만 첫 전투의 성과는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다. 전사자가 천여 명, 부상자가 이천에 가까웠다. 게다가 부장이 셋씩이나 전사했다.

“장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유인궤의 물음에 손인사는 대답을 못했다. 직접 겪어보니 정말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부여융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소?”유인궤의 은근한 물음에 손인사가 물었다.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으십니까?” “흑치상지를 회유시키도록 합시다.”
“회유라니요?”
“이미 백제는 망했고 남은 것은 임존성뿐입니다. 저들이 버틴다 한들 얼마나 더 버티겠습니까? 이미 흑치상지도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잘 달랜다면 넘어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손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유인궤의 전략은 모두 적중했다. 백강구 전투에서 왜의 천여 척 함선을 물리친 공도 유인궤의 작전이었고 사비부성 함락과 두량윤성 함락도 모두 그의 전략대로 되었다.

이번 임존성 공격도 신중을 기하라는 말을 가볍게 듣고 나섰다가 그만 수모를 당한 것이었다.

“묘책이십니다. 그리하시지요.”
손인사의 동의에 유인궤는 별장 두상을 불렀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두상은 득달같이 군막 안으로 들었다.

“가서 부여융을 데려오너라.”
“예, 장군.” 두상은 부리나케 달려가 부여융을 데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장군.”부여융은 공손하게 인사부터 올렸다. 갑작스런 부름에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편지를 좀 써야겠소.” “편지라니요?” 편지라는 말에 부여융은 의아한 얼굴로 좌중을 돌아보았다.

“흑치상지에게 항복을 권하시오. 태자의 편지에 임존성이 달려있소이다.”
그제야 부여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빛도 안정을 되찾았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여융은 유인궤의 막사에 앉아 붓을 들었다.

“만약 듣지 않으면 부여의자를 비롯해 당신 융과 백제의 신하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만이천의 백제 인들 모두 참수를 면치 못할 것이라 이르오.”
유인궤의 엄포에 부여융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붓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유인궤는 껄껄웃음으로 부여융을 달랬다.

“괜찮소. 모두 흑치상지를 달래기 위한 협박일 뿐이오. 뭘 그리 놀라고 그러시오.”
말을 마친 유인궤는 통쾌하다는 듯 껄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손인사도 함께 웃었다. 부여융은 치욕으로 몸이 떨렸다.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굴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음기를 머금었다. 실로 슬프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항복을 한다면 그대와 더불어 새로운 백제를 재건하는데 우리 당 군이 적극 돕겠다는 약속도 적어 넣도록 하시오.”
새로운 백제 재건이라는 말에 부여융이 놀라운 얼굴로 유인궤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백제 재건이라니요?”
부여융의 물음에 유인궤는 진지한 얼굴로 부여융을 바라보았다.

“맞소. 새로운 백제요.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대륙에서 건너온 이유가 무엇이겠소. 저 신라 놈들을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줄 아시오. 천만에요. 백제는 우리의 속국으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오.”
유인궤의 말에 부여융은 가슴이 뛰었다. 백제를 재건하다니? 새로운 희망이 보였다. 부여융은 환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인궤의 진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부여융은 정성을 다해서 편지를 썼다. 흑치상지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붓을 들었던 것이다.

반짝이는 오산천 상류가 은빛으로 눈을 찔러댔다. 갈대도 어느새 구름 같은 흰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건너편 임존성의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단풍과 성벽의 휘날리는 오방기가 더없이 처량한 가을이었다.

“두상, 가서 이 편지를 전하여라.” 유인궤는 부여융의 편지를 별장 두상에게 건넸다. 두상은 부복을 하고는 즉시 군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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