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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2014.12.23(화) 09:27:49쟈스민(mee01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
12월부터 시작된 올 겨울엔 눈이 참 자주 내린다.
특히 충남지역은 맑은 날보다 눈 내린 날을 세야할 정도로 올 겨울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인데 논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명재고택을 찾아간 날에는 다행히 전날 내린 눈이 그친 상태였지만 수많은 장독들 주변이나 고택의 지붕 위에 그대로 쌓인 설경을 400년된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사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교통이 마비되기 일쑤여서 외출을 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런 아름다운 설경을 자아낼 경우에는 여행자들이나 사진애호가들에게는 한 번쯤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고택의 설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찬찬히 고택을 살펴보기로 했다.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 선생의 고택을 말한다.
뒤안의 수많은 장독들이 인상적이며 조선시대 논산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의 예를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 명재고택 앞 장방형의 연못
고택의 앞 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중앙 부분에는 샘이 대지보다 낮게 자리하고 있다.
명재고택에는 그렇다할 입구가 없으므로 이 연못이 입구나 마찬가지이며 그 입구의 중간쯤 되는 것이 연못의 배롱나무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 안채 중문(왼쪽), 사랑채(중앙), 사당(우축)
사랑채는 행랑채나 대문이 없고 전면 개방되어 있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하고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인다.
대청 누마루 고방 등의 짜임새는 간결하고 품위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 안채로 들어가는 길, 왼쪽 길옆 향나무 아래에는 300년된 우물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 안채
안채는 평면이 'П' 자형으로, 높지 않은 기단 위에 사랑마당과 바깥마당을 주변에 두었고, 안채의 남쪽에는 행랑채가 위치하고 있어, 전체구조는 'ㅁ'자형을 이룬다. 안채의 오른쪽 뒤편에 사당이 있으며, 안채의 앞에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안채의 지붕 위로 쌓인 흰 눈과 처마로 떨어지면서 얼어붙은 고드름이 나 있고 곶감이 될 단감이 곱게 말라가고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광채 처마와 안채 처마는 거의 닿을듯 말듯 붙어 있는데 광채 처마에도 고드름이 멋스럽게 늘어져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논산 명재고택의 설경을 만나다 사진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방 양식을 따르면서도 남도풍을 가미한 형태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샘, 연못과 나무에는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고 뒤안의 장독대와 울창한 숲은 우리나라 살림집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으며 조선시대 논산의 양반 가옥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논산명재고택/041-735-1215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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