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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이 세우고 말년을 맞이한 성지(聖地) 개태사 답사여행

2013.12.25(수) 08:38:03관리자()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논산 사람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는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에 이른 사람이 저승으로 가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 천당으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섰을 당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듣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너는 살아 생전에 개태사의 가마솥과 관촉사의 은진미륵,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지은 말일지라도 그 속뜻이 참 재미있습니다. 이 3가지가 논산에서는 아주 유명한 관광지이고 전통문화 공부 차원이거나 혹은 우리의 명승 관광지를 돌아보는 의미에서 절대 빠트리지 말라는 조언 같습니다.
 
그중 개태사는 논산 6경에 속하는 전통의 호국 종찰입니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의 경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것을 기념하면서 세웠다지요. 왕건은 말년에 죽음도 이곳 개태사에서 맞이했다고 합니다.

보물 제 219호로 지정돼 있는 개태사지 석조삼존불 입상이 유명하며, 특히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개태사 철확(무쇠 솥단지)는 충청남도민속자료 제 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이곳은 태조 왕건이 모셔진 사실상의 성지(聖地)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왜 이곳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일대에 개태사라고 하는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찰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이 시대적 배경으로 볼때 당시에 전략적으로 요충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태조가 신검과 일전을 치렀던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좁은 길목이 있고 개태사 앞의 협로 역시 인위적으로 만든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개태사가 자리잡은 위치는 논산시 연산면으로서, 북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계룡산의 최남단 자락입니다. 남동쪽의 대둔산이 그 북단을 잇는 곳이죠.

이렇게 남북으로 잇는 험준한 산자락 아래 험로와 협곡을 중심으로써 연산지역을 오가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으며, 백제와 신라의 접경이자 전략적 길목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에 개태사 창건의 단서가 되는 후백제와 고려군의 쟁투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상 개태사의 창건과 관련한 역사적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창건기와 역사적 의미보다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함일듯 합니다.
 
거대한 품으로 뭇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부처님께 잠시나마 귀의 함으로써 그동안 속세에서 생겨났던 온갖 번잡스러움과 고뇌와 고민, 갈등과 다툼의 혼란스러움을 씻어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램에서죠.
 

일주문(시주문)

▲ 일주문(시주문)


일주문 앞의 작은 연못. 구름이 내려 앉은 아침 풍경이 참 보기 좋습니다.

▲ 일주문 앞의 작은 연못. 구름이 내려 앉은 아침 풍경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일주문(시주문) 앞 좌우에는 이렇게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연못과, 맑은 물 위에 떠 있는 하늘, 구름이 조화롭게 대비가 되어 절을 찾은 중생에게 맑은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듯 합니다.
 

개태사 5층석탑

▲ 개태사 5층석탑


개태사지 복원 당시 절에 있던 부재

▲ 개태사지 복원 당시 절터에 남아있던 부재


경내에 들어서면 맨먼저 5층석탑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화재자료 제274호로서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보통 탑은 부처님의 사리나 유품을 모시기 위하여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후에는 가람배치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것도 절에 세운 석탑의 트렌드 변화라고나 할까요.
 
이 탑은 개태사지 제일 북쪽에 있던 것을 현재 개태사 경내로 옮겨 놓은 것인데 1층의 탑신 이하와 5층의 지붕 돌 이상은 없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1층의 탑신과 기단부, 보주 등을 새롭게 만들어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극락대보전

▲ 극락대보전


그락대보전에 바라본 산자락

▲ 그락대보전에 바라본 산자락


개태사 극락대보전입니다. 개태사의 주 본채이죠.
개태사에 있던 석불입상을 모시기 위해 부석사 무량수전을 모방해 지은 건물이라는데 당시 무량수전의 평면을 그래도 재현했다고 합니다.
 

보불 제219호인 석불입상

▲ 보불 제219호인 석불입상


극락대보전 안에 모셔진 보불 제219호인 개태사 석불입상입니다. 개태사 건립(940년) 당시인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삼존석불입니다.

3존불중 거운데 아미타불상

▲ 3존불중 가운데에 계신 아미타 불상


오른쪽 아미타 불상

▲ 오른쪽 아미타 불상


왼쪽 아미타 불상

▲ 왼쪽 아미타 불상


아미타불은 극락 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이시라는데 중앙의 본존불은 신체가 원동형으로 처리되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머리는 소발에 정수리가 큼직하며, 얼굴은 둥근 역삼각형이지만 큰 눈에 비해 코와 입은 작은편입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손과 부피감있는 팔. 다소 두꺼워 보이는 옷자락 등 대체로 조각의 선이 굵고 강하여 후삼국을 통일한 초기의 굳건한 기상이 드러나 있는듯 합니다.
 

정법궁

▲ 정법궁


정법궁내 불상

▲ 정법궁내 불상


정법궁내 단군왕검 초상

▲ 정법궁내 단군왕검 초상


8각 전각

▲ 8각 전각


전각 내 작은 석불

▲ 전각 내 작은 석불


극락대보전 왼쪽 마당에서 한 단 높은 대지를 마련한 위에 정법궁(창운각)과 팔각형 법당, 우주정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법궁 안에는 불상과 우리 대한민국의 시조이신 단군왕검 초상이 모셔져 있으며, 8각전각 안에도 작은 석불이 계십니다.

우주정

▲ 우주정


500명분의 밥을 지을 크기의 거대 솥단지(철확)

▲ 우주정 안에 있는 500명분의 밥을 지을 크기의 거대 솥단지(철확)


우주정에는 앞서 밝힌 국내 최대 솥단지(철확)이 있는데 그 규모가 자그마치 500명분의 밥을 지을수 있는 크기입니다. 지름 3m, 높이 1가m, 둘레가 무려 6.4m라네요.
 

스님과 개태사 식구들이 거주하는 곳

▲ 스님과 개태사 식구들이 거주하는 곳


마당 오른쪽에는 현재의 개태사 스님과 식구들이 거주할수 있는 전각이 지어져 있습니다.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기념으로 창건된 전통 사찰이며, 보물로 지정된 삼존석불을 모시고 있는 호국종찰 개태사에 가셔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시고, 국내 최대 크기의 거대한 솥단지 구경도 해 보세요.

개태사 가는 길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1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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